개농장은 No!
2009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7월의 어느 날.
켄트의 작은 시골 기차역에서
회색의 런던 도심에서 출발,
켄트로 향하는 1시간여 남짓 동안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와
푸른 초원 위에 점점이 찍힌 하얀 양들이 반가웠고
'안돼'
M-키우자
'안돼'
'강아지 강아지 강아지 강아지, 강아지~'
동생과 플랏 메이트들은 강아지를 키우자고
물론 나 역시 어렸을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터라
혹하는 마음이 들긴 했으나 망설였다.
(과연 엄마 아빠도 없는 런던에서 우리끼리 개를 키울 수 있을까?)
'마당도 없는데 개를 키워?'
M- 응, 집 안에서. 다들 그래.
'똥은?'
J-내가 치울게
'목욕은?'
J-내가
'산책은?'
B-나도 도울게
딱 한 사람, K양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초긍정의 의사 표명을 해왔다.
'넌 어때?'
K-무서워
'새낀데?'
개를 무서워하는 K양 제외, 끈질기게 조르는 플랏 메이트들과 동생 탓에 나도 점점 긍정의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렇게 어느새 인터넷을 뒤지며 마땅한 새끼 강아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 쪼끄만한게 방을 뽈뽈 거리며 돌아다니면 귀엽겠지? K양도 막상 만나면 달라질 거야.)
어린 시절 동네 어느 집에 족보 없는
똥개 강아지들이 태어났을 때 나와 동생이 갯값으로 5천 원을 주고 데려왔고
부모님은 개를 무척 자유로운 영혼으로(누구보다 귀가 시간이 자유로웠음) 키웠었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어디서 누구의 어떤 개를 데려와야 할지 몰라서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다.
<INFO>
The Kennel Club
독 쇼, 아질리티, 혈통 등록 등 개와 관련한 여러 일들을 주관하는 영국의 공식 기관. 좋은 혈통을 지닌 순종 견들을 이곳에 등록된 브리더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서 입양 가능.Dog Show 혹은 아질리티에서 좋은 성과를 가진 혈통들인 경우가 많아 입양비용이 매우 비쌀 수 있다.
Battersea Dogs & Cats
1860년부터 유기견과 유기묘를 보호하며 새로운 가족을 찾아 주는 곳. 약 160파운드 정도를 지불해야 하고 입양자가 갖춰야 할 조건이 까다롭다. 그 밖에도 영국의 유기견을 입양할 수 있는 곳은 Blue Cross, RSPCA 등이 있음.
사설 사이트들 - Freeads, Pets4 homes, Gumtree, Preloved, Epupz 등 다양한 견종들의 광고 사진을 미리 볼 수 있고 입양비용이 저렴한 경우도 있다. 단, Puppy farm의 광고 혹은 무책임한 브리더들의 광고가 있으니 조심해야 함.
여기저기서 습득한 정보들을 총동원해 사설 사이트를 뒤져 강아지 농장인지 아닌지를 열심히 가려내고,
KC에 등록된 브리더들에게도 연락했다.
(Dog Show 우승 혈통으로 데려와서 출전해볼까?
우수 혈통으로 새끼를 낳게 하면 비싼 값에 팔리려나?)
저런 철없고 무시무시한 생각까지...
그러던 중, 한 사이트의 광고 글이 눈에 들어왔다.
'Westie, 5 generation pedigree, Now available'
-5대째 순수혈통의 웨스트 하일랜드 화이트 테리어, 지금 가능.-
보통 광고는 강아지가 태어나기 전에 올라온다.
'출산일 0월 0일, 당신은 그로부터 8주 후 데려갈 수 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그럼 출산 전에 입양 여부가 이미 결정되거나 또는 갓 태어난 새끼들이 일찌감치 선택되어져 색깔 다른 리본을 달고 있다가 어미와 떨어질 수 있는 8주가 되면 새로운 집으로 떠나게 된다. 때문에 광고는 사이트에서 곧 사라지거나 연락해 보면 입양 가능한 아이가 없곤 하다.
그런데 한 광고가 몇 주째 올라왔고,
심지어 이미 태어난 지 8주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생후 8주 동안,
아직도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다음 주에도, 또 그다음 주에도... 이제 10주가 다
되어가고 있는데도 광고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왜 였을까,
그렇게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고민하며 서치의 서치를 반복하던 내가 갑자기 선뜻 전화를 걸었다.
위치는 켄트였다.
#Puppy Farm
일명 개 농장.
개들의 상태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임신과 출산을 시켜 새끼를 상품처럼 팔아 이익을 챙기는 상업적이고 비인간적인 곳. 영국 정부는 이런 개농장을 근절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Puppy farm의 강아지들은 열악하고 지저분한 환경과 관리 소홀로 인해 각종 기생충과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되어 대체로 병들고 몸이 약함. 대표적이고 흔한 증상으로 Kennel cough(일종의 감기)가 있음.
*새끼 강아지의 입양비용이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개 농장을 이용하지 않아야 이런 행태의 농장들이 근절되어 불행한 개들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녀석의 실체는 다음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