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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Nov 11. 2020

소변기와 더러운 침대는 어떻게 예술작품이 되었나?

스토리텔링

당신이 만약 이 침대를, 굳이! 굳이 돈을 주고 산다면, 과연 얼마까지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애초에 이딴 걸 살까 말까 고민하는 자체가 말도 안 되지만.

이 지저분한 침대가 영 내키지 않는다면 좀 더 실용적인 이 제품은 어떠신지.


소변기다. 남자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그런데, 이 중 하나만 소변기다. 나머지 하나는 놀랍게도 작품이다.

예.술.작.품.


혹자는 이게 무슨 예술이냐 할지 모르지만, 내가 아무리 예술이 아니라 주장해도, 나 아닌 누군가는 예술로 본다. 커다란 캔버스 한가운데 점 하나만 쿡 찍어도 예술이고, 덕테이프로 바나나를 벽에 붙여놓기만 해도 예술이다. 심지어 그걸 먹은 행위 자체도 예술이고.



예술이 된 침대와 소변기
"억" 소리 나는 스토리의 가치




요즘은 정말 점잖아졌다고 생각하는데, 한때 온라인 기사 제목은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매우 자극적으로 쓰여졌다. 다들 기자만 욕하는데 실제로는 데스크에서 정한다지.


Q. 포털 사이트에서 다음의 제목들이 나란히 보일 때 대중적으로 클릭을 가장 많이 받는 기사는 무엇일까?


A. 아이폰12 드디어 나온다!
B. 밤마다 외출하던 부부, 얼마 후 차린 가게가…
C. 北여고생들의 가방 불시에 검사하자 나온 것은


개인 관심사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A 기사 제목은 너무 빤하지 않나. 굳이 클릭하지 않아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제목. 낚시용 미끼로서는 미흡하다. 반면 B와 C는 어떤가?

부부가 밤마다 외출한 이유가 뭐지? 그래서 무슨 가게를 차린 거지? 북한 여고생들은 대체 가방에 뭘 넣고 다니길래? 그다음 이야기가 미치도록 궁금해진다. 이야기가 가진 힘이다.


사람들은 단순 사실보다 이야기에 더 끌린다. 글을 쓰든, 강의를 하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이야기란 하나의 사실을 감정으로 포장한 것


이야기를 폭넓게 정의하자면 의사소통을 전제로 한 서사 담론의 모든 형태를 말한다. 좀더 단순하게 보면 '하나의 사실을 감정으로 포장한 것'이다.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야기에 끌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는 응당 가치가 생긴다. 이야기의 값어치. 과연 어느 정도로 매겨질까?



소변기는 어떻게 예술작품이 되었나

<R. MUTT* 1917>라는 사인에 <샘(원제 : fountain)>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

동네 철물점에서 구입해 달랑 사인 하나 했을 뿐 그 외 특별한 작업을 하지도 않았다.

*리처드 뮤트(R. MUTT)는 작가가 아니라, 욕실 용품 제조업체 이름.


미국 독립예술가협회가 연 첫 전시 '앙데팡당(Indépendant)' 전에 출품되었으나 당시 맹비난을 받으며 결국 전시품 리스트에서 빠졌다. 예술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파장은 컸다. 뉴욕 미술계는 발칵 뒤집어졌고, 세계 미술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오늘날 <샘>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이제 회화는 망했어!!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 낼 수 있겠어?
말해보게 자넨 할 수 있나?

전통 회화에서 벗어난 새로운 현대미술의 탄생을 알리는 이 말. 대량 생산된 물질주의 시대의 상품들을 오브제*로 삼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발언이다.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튜브 물감들은 제조된 생산물이자 이미 완성된 물건이다.

세상의 모든 그림들은 '도움을 받은 레디메이드'이자 아상블라주**다."

*오브제(objet) : 작품에 쓰인 일상생활용품이나 자연물.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하여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이르는 말.

**아상블라주(assemblage) : 폐품이나 일용품을 비롯하여 여러 물체를 한데 모아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기법 및 그 작품.

이 개념이 당시 미술계에 일으킨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레디메이드(Ready-made)' 작품의 일종으로 기존 개념을 뒤집고 개념미술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 시작이 바로 <샘>이라는 작품이었다. 기성 제품으로 만들어진 소변기에 예술가의 서명이 들어가자 예술작품이 된 것이다.

일상의 영역에 있던 기성품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작품에 부여한 이 이야기 덕분이다.

"뮤트씨가 이 작품을 직접 만들었는지의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소변기를 오브제로 선택했다는 데 있다.

여기에 '샘'이라는 명칭을 부여했고, 원래 가지고 있는 일상적 가치를 제거하고, 새로운 맥락의 개념과 정체성을 창조해낸 것이다."




기껏해야 몇 달러. 요즘 가치로 따져도 십만 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소변기. 여기에 예술가의 서명이라는 상징적인 행위와 이야기가 입혀지면 위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당연히 그 값어치도 달리 매겨진다. <샘>이라는 작품은 1964년 2,000달러에 첫 거래가 되었고, 이후 꾸준히 값이 치솟아 2004년엔 우리 돈으로 36억원을 넘겼다.

예술가가 사인한 소변기의 가치 : 3,600,000,000원



'내가 힘들 때, 4일을 지냈던 침대'
이 짧은 이야기에 매겨진 가치

다시 말하지만 이런 걸 돈 주고 사겠다는 발상 자체가 정상처럼 보이진 않는다. 하긴 낡아빠진 소변기도 돈 주고 사는데 그래도 침대는 낫지. 이 침대를 산 다음 말끔하게 청소해버리면 다들 어떤 반응일까?

이 쓰레ㄱ 아니, 이 작품은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터너상(Turner Prize)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고, 심지어 2014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435만1969달러(당시 환율로 약 44억원)에 거래되었다. 잠들면 곧장 가위눌릴 거 같은 이 침대가.


"가슴이 찢어지고 참담했던 1998년, 내가 4일을 지냈던 침대. 침대가 하나의 작품이고 침실은 갤러리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 마음을 추스른 뒤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나흘을 지냈던 침대가

더없이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것이 트레이시 에민의 '내 침대(My bed)'라는 작품에 담긴 이야기다.

"쨘~ 이건 내가 힘들 때 나흘을 보냈던 침대야. 난 이게 작품이 될 거란 확신이 들었어."

지저분한 침대에 담긴 사연의 가치 : 4,400,000,000원

평단은 <내 침대>라는 작품에 대해

'어지럽게 널려있는 침대보와 빈 술병, 더러운 바지, 음식 부스러기, 심지어 콘돔과 여성 피임약이 혼재된 침대가 인간의 절망과 외로움을 절묘하게 표현했다'며 극찬했다.



일단 똥을 싸! 유명해질 거야!
아, 거꾸로인가?

일단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사람들이 열광한다더니. 아! 실제 자기 똥을 판 예술가도 있었다.

이탈리아 작가, 피에로 만초니는 깡통에 자기 대변을 넣고 밀봉한 다음 <예술가의 똥>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앞서 언급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온 예술가들이 자기 지문을 팔았으면 해. 아니면 누가 제일 긴 선을 그리는지 누가 자기 똥을 담은 캔을 파는지 겨뤄보는 대회를 열든 해야지. 자기 개성을 나타낸 수단 중에서 인정받는 건 지문뿐이야. 수집가들이 예술가의 은밀한, 정말 사적인 걸 사고 싶다면 그 예술가가 싼 똥이나 사라지. 그게 진짜 그 사람 것 아니겠나."

(1961년 만초니가 친구 벤 보티에에게 보낸 편지)

30g씩 총 90개를 제작해 당시 같은 무게의 금 시세인 37달러로 가격을 책정했는데, 실제 판매한 적은 없고 대신 친구나 교류하던 다른 예술가에게 이걸 보냈다고 전해진다. 작품은 작가 사망 이후부터 본격 거래되기 시작해 금 무게 3000g에 달하는 가격까지 치솟았다. 이후 떡상에 떡상을 거듭해 2007년 소더비 경매에서는 깡통 하나에 우리 돈 1억 6400만원에, 2016년 밀라노 아트옥션에서는 3억 6400만원에 낙찰되었다.

<예술가의 숨(Fiato d'artista)>이라는 작품도 있다. 그렇다, 지금 생각하시는 딱 그거! 풍선에 숨을 불어넣어 제작했다. 통조림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예술가인 아들에게 "네 작품은 똥이야!"라고 말한 것이 이 작품을 제작한 계기라지.


개나 소나 예술한다 그러고, 뭣도 아닌 데 돈ㅈㄹ을 한다며 비아냥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누군가는 똥을 쌌고, 그걸 굳이 캔에 담았으며, 나름의 이유도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감명을 받았고, 거기에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똥이 아니라 그 똥에 담긴 이야기에 가치를 매긴 것이다.

이야기에는 가치가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끝으로 마침 이런 현상을 기가 막히게 잘 표현한 시(詩)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일찍이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를 통해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뒤샹이 변기에 이름을 붙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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