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진을 찍는 작가가 프로인지 아마추어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하나 있다. 아마추어는 모델에게 웃으라 말하고, 프로는 웃게 만든다. 강사도 마찬가지다. 프로는 기억해라, 실천해라 굳이 말하지 않는다.
청중의 능동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강사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여기, 두 사람의 댄서가 있다.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단 감상부터ㅡ
※첫 번째 영상은 다 안 보셔도 되지만, 두 번째는 꼭 끝까지 시청하시길 권장.
※스피커 볼륨을 높이시고, 공공장소에선 이어폰을 챙기세요.
먼저 이 두 사람의 무대는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한 가지 깨달음을 준다.
"아~ 인간의 몸이 저렇게도 움직이는구나!"
춤 잘 춘단 소리다. 쟤 몸짓은 장난이 아닌데, 내 몸짓은 왜 이렇게 장난 같을까.
차이점을 묻는다면 너무 막연하고, 시간이 지났을 때 둘 중 누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까? 그리고 이유는?
“인간의 경험은 이미 이야기에 의해 각인되어 있다.
이야기 또는 은유는 이미 인간의 행위와 매개되어 있다.”
-폴 리쾨르(Paul Ricoeur), 철학자-
작년 오늘. 저녁에 뭘 드셨나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오늘이 생일인 사람.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저녁 식사에 대한 기억은 고작 일주일도 넘기기 어렵다. 오래 기억할 만큼 중요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날도 어떤 사건이 덧입혀지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첫 데이트를 한 날이라든지, 누군가를 떠나보냈다든지, 오래 준비했던 시험에 마침내 합격 소식을 들은 날이라든지…
의미가 있는 모든 사건들이 다 이야기다. 굳이 소설처럼 기승전결의 구조가 없어도 된다. 인간의 경험은 이야기를 통해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오랫동안 남는다. 이것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다.
청중과 독자의 이성적 판단을 우회하는 이야기의 힘
이야기는 상대(청중, 독자)의 의식을 넘어 무의식으로 곧장 파고든다. 이런 비위계적 접근 방식은 이성적인 접근을 통한 논리적 설득이 아닌 감성적인 접근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청중의 판단을 우회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그것을 수용하기에 앞서 판단부터 먼저 하게 된다. 믿을 만한 정보인지, 내게 필요한 정보인지, 기억해 둘 만한 가치가 있는지 등. 하지만 정보에 이야기를 입혀 전달하게 되면 이성적인 판단과 방어기제의 벽을 뛰어넘는다. 비유하자면 아이들이 먹는 쓴 약에 입힌 '딸기향'이 바로 '이야기'에 해당된다.
이야기는 산재되어 있던 정보를 통합하고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의 전환을 돕기도 한다. 학습에 매우 드라마틱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강사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이야기로 감싸는 작업을 한다. 논리적인 설득을 통해 굳이 에고의 저항에 맞설 필요 없이 청중 스스로 납득하고 이해하게끔 만들 수 있다. 단 몇 분이면 전달할 수 있는 핵심을 길게는 몇 시간씩 강의하는 이유기도 하다.
스토리텔링 실전 활용법
강의나 글에서 이야기가 갖는 힘
좋은 말이다. 법륜 스님 정도 되는 분이 전하셔야 힘을 받는 말이기도 하고.
"집착을 버려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참 좋은 말이긴 한데, 선뜻 와닿진 않는다.
'집착? 맞아, 벗어나면 좋지. 근데 그러기가 쉽나 어디. 스님 정도 되니까 저렇게 말씀하시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지 않나. 뇌에서 이성이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런 이야기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어느 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주지스님이 동자승을 마당에 불러 세웠습니다. 흙 바닥에 발로 동그란 원을 그려보라 하시더니 그 안으로 들어가랍니다.
"그 원 밖을 벗어나면 내 너를 내쫓을 것이야!"
아니,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랍니까. 내쫓다니요. 동자승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원 안에 머물자니 해는 저물고 있고, 날은 춥고, 배도 고파왔습니다. 그렇다고 원을 벗어나자니 주지스님 성격에 정말로 내쫓을 거 같더란 말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동자승은 알았다는 듯이 옅은 미소를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흙마당에 그려진 원을 발로 슥슥 지워버렸습니다.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불교에서는 번뇌라고 부릅니다. 욕심, 성냄, 어리석음 이 세 가지를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라 봅니다. 이 번뇌를 미혹함, 잠듦, 물듦, 흐름, 얽매임 등으로 달리 표현하기도 합니다. 쉽게 홀리고, 인지하기 어려우며, 휩쓸리고 얽매게 된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번뇌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얽매여 스트레스 받고 있는 일들을 돌이켜 봅시다. 내가 그렇게 온몸으로 매달려야 할 만큼, 나를 파괴해가면서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이 세상에 내 마음의 평화를 대신할 정도로 중대한 일은 과연 무엇인가요? 번뇌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는 그 생각마저도 내가 꼭 쥐고 있진 않을까요?
어쩌면 발로 슥슥 문질러버리면 쉽게 놓아버릴 수 있을지도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먼저 전하며 충분히 공감을 끌어낸 다음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덧붙이면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이 집착과 번뇌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은 이 이야기를 들으나 듣지 않으나 매한가지다. 그러나 적어도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래. 내가 너무 쓸데없는 일에 스트레스 받고 있었던 건 아닐까?'하고 생각을 달리해볼 수 있게 된다.
이야기는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
서사적 흐름이 없이 어떠한 행동도 이야기가 될 수 있다.
2009년, 빌 게이츠는 TED에서 말라리아의 피해에 관한 강연을 하기로 했다. 이런 내용의 강연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뻔히 예상할 수 있다. 각종 차트와 도표로 이뤄진 데이터를 보여주면서 '말라리아가 이렇게 위험합니다'라는 식. 하지만 빌 게이츠는 달랐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통해 전염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경험할 수 있도록 여기 몇 마리 가져왔습니다."
그리고는 강연장에 실제로 모기를 풀어버렸다.
"이 모기들이 날아다니도록 두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만 모기에 물릴까 불안에 떨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후 여러 언론에서 크게 화제가 된 빌 게이츠의 이 전략은 '기대위반 이론(expectancy violation theory)'이라고도 부른다. 기대와 예상을 깨는 은유적인 행동을 통해 청중에게 메시지를 깊이 각인시킬 수 있으며, 특히 설득의 과정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댄서가 무대를 통해 이 정도의 기억만 남겨도 대단한 경지다. 하지만 이야기를 입은 춤은 그 이름조차 낯선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의 16세 소년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은 Atai Omurzakov의 같은 춤, 다른 무대의 영상으로 끝맺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