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 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섭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처음으로 나를 울렸던 작품, 백석의 <여승>. 그때가 고 3 때였나.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기형도, <비가 2> 부분.
기형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너무 어둡고 무거워서 누구에게도 쉽게 권하지 못하겠다.
'밤새워 호루라기 부는 세상 어느 위치에선가 용감한 꿈 꾸며 살아 있을 그대'*에게 '잘 가거라' 인사나 건넬 뿐.
*<비가 2. 붉은 달> 중에서
짧게, 더 짧게
짧은 시를 더, 더, 더 압축한 단시(短詩)의 정수는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하이쿠(haiku, 俳句)'란 특정한 달이나 계절의 자연에 대한 인상을 묘사하는 서정시다.
각 행이 5, 7, 5음의 3구, 그래서 총 17음절이고,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인 '키고(季語)'와 구의 매듭을 짓는 말인 '키레지(切れ字)'로 구성되어 있다.
도둑이
들창에 걸린 달은
두고 갔구나
-료칸
서리 밟으며
절룩거릴 때까지
배웅했어라
-바쇼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걸
-소세키
문학을 따로 전공하지 않은 이상 생소한 장르인데, 해학적이면서도 응축된 어휘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국내 번역된 하이쿠 시집은 그리 많지 않고, 서점에 찾아보면 그나마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의 선집이 눈에 띄는 정도.
그 외 여러 하이진(俳人, 하이쿠 작가를 일컫는 말)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한 줄도 너무 길다>라는 책이 가볍게 접근할 만하다. 무겁게 접근, 아니 우리나라 시조와 비교하며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싶다면 이어령 교수의 <하이쿠의 시학 : 하이쿠와 시조로 본 한일문학>이라는 책이 있다.
언어의 정수
고도로 압축된 이야기가 뿜어내는 에너지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아기 신발 팝니다! 한 번도 신지 않음.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썼다고 알려진 6단어 소설이다.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아기의 죽음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부터 슬픈 감정까지, 단 6단어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무림 고수가 손가락 하나로 상대를 제압하듯이, 문학에서의 내공은 언어의 경제성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분량이 극히 짧은 단편 소설을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 우리 말로는 나뭇잎에도 담아낼 수 있을 정도로 짧다고 해서 '엽편(葉篇) 소설'이라 부른다.
인식과 행동을 바꾸는 데에는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성공한 카피 사례야 책 한권으로 엮어도 부족하지만 광고 카피하면 거의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례가 하나 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탤런트 박상원의 이 한 마디로 에이스 침대는 '독보적'인 수준을 넘어, 업계에서 '넘사벽'의 입지를 굳혔다.
Impossible is nothing.
아디다스는 한때 유명인들의 리얼 스토리와 함께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카피를 내세우기도 했다.
카피를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공식이 있다. 타깃을 한정하거나, 질문을 던져본다든지, 대상을 압축하거나, 대비시키거나. 혹은 과장하기도 하고, 기존 상식을 뒤집어 보는 등.
근본적으로는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키워드를 잘 선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 고무줄 글쓰기 훈련법이 도움이 된다. 카피라이터가 아니더라도 대상을 간결하게 압축해서 표현하는 훈련은 글쓰기 실력 향상에도 큰 도움을 준다.
본격적으로 배우려면 카피라이팅 관련 책도 좋지만, 한편으로 시집도 많이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고도로 압축된 말의 맛을 먼저 알아야 카피에 깊은 울림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