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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May 18. 2021

블로그/온라인에 소설을 연재하지 않는 이유

콘텐츠 저작권과 양심

나는 문학도 출신으로 한때 꽤나 열심히 소설을 썼다.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며 한 달 넘게 하루 15시간 이상 글만 써보기도 했으니까. 후회 없다. 진짜 뼈가 삭도록 써봤으니까.

소설가로서의 자질까진 모르겠으나 계간지 <한국문학>에 내 소설이 소개되기도 했고, 몇 안 되지만 학창 시절엔 나름 팬도 있었다. 대학원에 가고 싶었으나 형편이 어려워 취업이 급했고, 내 풋내기 소설가로서의 짧은 이력은 졸업과 동시에 끝이 났다.

졸업 후 일 년 동안 영업을 하면서 술 없이는 잠을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학창 시절 내내 읽고, 쓰기만 반복하던 우물 안 철부지가 사회에 나와 곧장 적응하는 것도 신기한 일 아닌가. 돌이켜 보면 일이 어려워서라기 보다 소설을 쓰지 않는 상태가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올해 초 대단히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읽었다.

인생이 표절이라는 어느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타인의 소설을 도용해 공모전에서 수상까지 했다고 한다.




피의자 손씨는 김민정 작가의 <뿌리>라는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베껴 무려 다섯개*의 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제 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 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 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

손씨는 일부 문장이나 단락도 아닌 전체를 도용했고, 원 저작자 말에 따르면 손씨가 상상력을 발휘한 부분은 '병원'을 '포천병원'으로 바꾼 것이 전부다. 뿐만 아니라 손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공기관 서포터즈, 기자단 활용 내역과 각종 공모전 수상 소식과 더불어 수료증, 위촉장, 감사패, 상장 등을 게시했는데 검증 결과 상당수가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도용을 통해 얻은 결과물로 밝혀졌다.

대표적으로 디카시 공모전 수상작도 가수 유영석이 1994년 발표한 'W.H.I.T.E'라는 곡의 가사 후렴구를 도용한 것으로 의심된다. 이로 인해 당선 취소 소식을 들은 손씨는 "글은 5행 이내 시적 문장이라 나와있고, 본인이 창작한 글이어야 한다고 되어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적반하장으로 디카시연구소 사무국장과 주최 측을 상대로 민사 소송까지 걸었다고. '본인 창작물이어야 한다'라는 내용이 없었다? 참 대단한 논리인데, 심지어 사진도 도용을 의심받고 있다.

한편 지난해 10월 수상한 <2020 혁신아이디어 공모전> 특허청장상도 도용으로 확인돼 수상이 취소됐고 11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이 주최한 <정보통신 공공데이터 활용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마이 스트리트 듀얼리티'라는 작품 또한 도용이 확인되어 포상을 회수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외에도 각종 표어, 포스터 공모전에 제출한 작품들도 도용을 의심받고 있으며 주요 대학과 대학원 출신이라는 학력, 해병대를 전역한 뒤 장교로 복무했다는 군 경력에도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도둑들에게 양심을 바랄 수는 없으나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분 대상은 서울예대 문창과 2학년인 박주현 작가가 쓴 <팔월의 첫째 주>라는 작품에 돌아갔다. 어떻게 기억하냐고? 블로그에 연재하려던 내 소설 <빈자리>가 이 작품에 밀려 아깝게(그냥 그렇다고 치자. 제발)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민정 작가님처럼 각종 공모전을 휩쓸 만큼 대단한 작품도 아니지만 그래도 창작 수업에서만큼은 A+를 놓쳐본 적이 없기에 문창과 학생들이 탐낼 만한 내용이긴 하다. 최소한 낙제점 받지 않을 수준은 된다. 게다가 학교 수업 시간에 출력물로 제출한 자작 소설은 인터넷에 기록되지도 않아 표절 유무를 알기도 어렵고.

그래서 블로그에 연재를 하다 말았다. 블로그에 시, 소설을 연재했다가 도둑질을 당한 후배들의 만류에 의해서. 심지어는 우클릭을 막아놓으니 '학교에 과제로 제출할 건데 소설 파일 좀 보내달라'라는 쪽지도 받았다고 한다.

학도를 꿈꾸든 아니든 지금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는, 혹은 소설 창작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고한다. 양심 팔아서 학점을 얻진 말자. 손씨처럼 소송을 당하고 어쩌고 하며 일이 커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남들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은 알지 않나. 훔쳐 왔다는 사실을. 그 기억은 아마 당신을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그 무게가 크든 작든, 평생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을 돌덩어리를 만들지 마시라.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이상, 그런 부정적인 기억은 평생 무의식 깊숙한 곳에 남아 앞으로의 삶에 계속, 계속, 계속 영향을 끼칠 것이다.

선배로서 조언 딱 하나만 하겠으니 진지하게 듣기 바란다. 남의 거 훔치지 마라. 차라리 F 학점을 택하시라. 대학 다니면서 F 하나 받아보는 것도 지나보면 좋은 추억일 수 있다. 하지만 도둑질은 절대 추억이 되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다. 괜찮은 사람이 안 괜찮은 짓 하지 말고, 괜찮은 짓을 해라. 그래야 앞으로도 괜찮은 사람이 된다.

지금까지의 당신은 (비록 나름의 흑역사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도둑질은 해본 적 없는 괜찮은 사람이다. 앞으로도 계속, 평생, 쭈욱 괜찮은 사람이길 바란다. 위인전에 나올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죽기 전에 'XX, 그래도 괜찮은 인생이었다' 이 한마디는 할 수 있어야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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