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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Jun 21. 2021

글에 깊이를 더하기 위하여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

조선 현종 시절, 상례(喪禮) 문제를 두고 두 붕당(남인, 서인)이 대립한 사건이 있었다. 상복을 몇 년 입느냐를 두고서 벌인 이 싸움을 '예송논쟁(禮訟論爭)'이라 부르는데, 겉은 그저 예법에 대한 유치한 논쟁에 불과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건이 보다 흥미롭게 다가온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ㅡ 퀴즈 하나!


조선 17대 임금 효종이 승하하였다. 이때,

Q. 계모인 자의대비(장렬왕후)는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할까?(3점)

① 친아들도 아닌데 뭘 따지나. 본인 선택이다.

② 3일이면 충분하다. 더 이상은 힘들다.

③ 49재에 맞춘다.

④ 차남이니까 1년만 입으면 된다.

⑤ 그래도 왕이라 3년은 입어야 한다.


힌트ㅡ

서인과 남인은 각각 이렇게 주장했다.


이것이 1차 <기해예송>이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계모인 자의대비(장렬왕후)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느냐로 복장 논쟁이 벌어졌는데, 서인은 1년설, 남인은 3년설을 주장했다.

조선시대 상복 규정은 죽은 자와의 관계에 따라 기간과 종류가 나뉘었다. 어머니가 친모냐, 계모냐는 무관했으나 아들이 장남이냐 차남이냐는 차이가 있었다. 효종을 장남으로 인정한다면 어머니는 상복을 3년 입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기년(1년)만 입으면 된다.

서인은 왕과 신하를 '수평적'인 관계로, 남인은 '수직적'인 관계로 보았다. 그래서 서인은 왕권이 약화되어야 한다는 입장, 반대로 남인은 왕권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숨은 진짜 속내를 두고 겉으로는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느냐로 싸운 것이다.

1차 논쟁에선 서인이 결과적으로 이기긴 했으나 현종에게 미운 털이 박혔고, 이후 2차 예송논쟁(갑인예송) 때는 자의대비가 시어머니로서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느냐로 또다시 대립하였으나 이번에는 남인이 승리했고,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서인의 영수 송시열까지 귀양을 가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유치찬란한 논쟁이지만 오히려 이 논쟁으로 인해 이후 조선의 정치가 한단계 더 성숙해졌다는 후대의 평가도 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또 다른 예로, 네이버는 지난 2016년 'C-Rank'라는 검색 알고리즘을 새로 도입했다. 블로그에서는 기존의 포스팅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상위노출이 어렵게 되었는데, 그 결과 소위 '블로그 공장'이라 불리던 광고 대행사들이 대량 폐업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광고 대행사들은 생존을 위해 기존의 운영 방식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전략을 짰는데 그게 바로 블로그 구매 혹은 대여다.

블로그를 구매, 혹은 임대하겠다는 쪽지가 최초로 등장한 시기는 2016년 말부터다. C-Rank 도입 이후 광고 업체들이 몇 달간 달라진 알고리즘에 대한 분석 기간을 거쳐, 마침내 이런 대응책을 내놓았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이런 쪽지만 봐도 '뭔가가 달라졌구나' 정도는 눈치를 챌 수 있다. 그리고 하나씩 질문으로 파고들면 된다. '네이버 아이디 만드는 일이 뭐 그리 어렵다고 블로그를 굳이 돈 주고 산다는 걸까?'하고 말이다.

현상의 이면을 보는 시각을 기르는 훈련은 이런 사소해 보이는 일상 하나하나를 자세히 관찰하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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