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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Jul 06. 2021

메시지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드는 법

구조화 글쓰기

작년 7월 9일, 당신은 점심 식사로 무엇을 드셨습니까?


아마 거의 대부분은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소소한 내용까지 기억하기에는 뇌의 용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일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지 비결이 있다. 그 방법은 의외로 쉽고 단순하며, 글쓰기는 물론 강의에도 응용할 수 있다.




오래 기억되는 글의 비밀
구조화된 이야기 활용법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419716939937510582097494459230781640628620899862803482534211706798214808651328230664709384460955058223172535940812848111745028410270193852110555964462294895493038196442881097566593344612847564823378678316527120190914564856692346034861045432664821339360726024914127372458


3.14… 원주율이다. 어떤 패턴도 찾아볼 수 없는 이 긴 숫자를 기억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숫자를 이미지로 각인하는 방법

3.14…를 숫자가 아니라 이미지로 인식하는 방법이다. 마치 사진을 찍듯 숫자가 적힌 종이를 있는 그대로 뇌에 찰칵! 하고 찍어서 기억한다. 천재의 영역이지만 어쨌든 가능하긴 하다. 실제 이렇게 기억하는 (극소수의) 사람도 있고.


둘째. 텍스트에 대입해서 외우는 방법


How I want a drink, alcoholic of course after the heavy lectures involving quantum mechanics!
 : 양자역학을 포함한 어려운 강의 후에는 얼마나 한 잔이 하고 싶은지!

각 단어 철자 수에 주목하면 원주율을 소수점 아래 열네 자리까지 암기할 수 있다.

위 문장의 철자 수를 배열해보면 3.14159 26535 8979가 된다.


How = 3

I = 1

want = 4

이런 식이다. 다만 한계는 있다. 열네 자리까지만이다.

오르(A. C. Or)라는 사람이 쓴 시를 통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암기할 수 있다.


Now I, even I, would celebrate
In rhymes unapt, the great
Immortal Syracusan, rivaled nevermore,
Who in his wondrous lore,
Passed on before,
Left men his guidance
How to circles mensurate...

심지어 나 같은 이라도, 서툰 운율로라도,
더 이상 견줄 사람 없을
영원불멸의 시라쿠사인을 찬양하리다.
우리에게 전승되었던
훌륭한 이야기 속에
사람들에게 방법을 남겨 주었지
어떻게 측정을 원하는지를...


한글 버전도 있는데 '과학쟁이'라는 과학잡지에서 소개된 문장이다.

돌고래가 모직 남방 만들며 아침 산책 도는 동안 럭비나 봐라.

이 문장에서 초성만 숫자로 바꾸는 식이다.


돌고래 = ㄷㄱㄹ = 314


셋째. 이야기에 대입해서 외우는 방법

마지막이 그나마 천재 아닌 범인들에겐 현실적인 방법이다. 각 숫자에 단어를 대입시켜 이야기로 만들어 기억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철수 / 3=영희 / 4=만나다

여기에 '314'를 대입시켜 보면 '영희가 철수를 만났다'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각 숫자마다 몇 개의 명사와 동사, 형용사 등을 대입시키면 아무리 긴 숫자도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단순한 숫자 나열보다는 훨씬 외우기 수월하다.

매우 극단적인 예를 들긴 했는데, 일상적으로 강의나 글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에 이야기를 입히면 전달력이 훨씬 높아진다.



메시지를 감싸 무의식으로 전달해 주는 이야기

빙그레에서 나온 <닥터 캡슐>은 캡슐로 유산균을 보호해 장까지 안전하게 보내준다는 컨셉의 요구르트 제품이다. 청중이나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유산균'이라면 '이야기'는 '캡슐' 역할을 한다.

이야기는 청중이나 독자가 화자의 말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쉽게 받아들이게 만들고 오래 기억되게끔 돕는다. 이것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다.


이를 강의나 글쓰기에 활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훌륭한 예를 김창옥 교수님이 어느 방송에서 했던 강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려한 카지노에 없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시계, 거울, 창문. 왜일까요? 바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물건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벽에 붙어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살다 보면 벽에 막힌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내 마음의 창문, 시계, 거울을 찾아보세요. 위기는 위험하지만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강의의 핵심만 간추린 이 내용을 다시 구조적으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카지노에 없는 세 가지'라는 이야기로 시작한 다음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로 말을 이어간다. '내가 힘들 때 내 마음의 시계 등을 찾아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위기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잘 극복한다면) 얼마든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그 핵심을 잘 실천했을 때 얻는 혜택이나 변화다.


[Story - Point - Benefit]의 순서이고 각각의 이니셜을 따서 SPB라 부른다. SPB 공식을 잘만 활용하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기 쉽고 또 오래 기억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고 역할이다.


7월 9일. 남들에겐 평범한 날이지만 내게는 특별한 날이다. 생일이기 때문이다. 반려자와 조용히 보내긴 하지만 이날 어디를 갔고, 무엇을 먹었는지 정도는 기억한다. '내가 태어난 날'이라는 짧고 단순한 이야기조차 내가 이날 뭘 했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꽤 오래 기억하게 만들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어떠한 정보를 오랫동안 기억하는 비밀, 바로 '이야기'다.

[함께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caru/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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