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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Jul 16. 2021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숨은 이유

& 강사의 올바른 교수법

모르다


이 동사를 얼마나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한번 써보시길.


모르고, 모르니, 모르거든, 모르지만, 몰랐으니, 몰랐을…

과연 몇 가지나 나올까?


흔히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고들 한다. 본인은 잘 쓰지만 남까지 잘 쓰게 만들 자신이 없는 이들이 하는 소리다.

잘못은 아니다. 세상에는 박지성이나 손흥민처럼 본인이 잘 뛰는 선수 타입이 있는가 하면 히딩크나 박항서 감독처럼 지도자 타입도 있으니까. 다만 본인에게 감독이나 코치의 역량이 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선수들에게 '일단 뛰어!'라고 채근하진 말아야지.



남들도 글을 잘 쓰게 만들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수강생들이 글쓰기를 왜 어려워하는지, 또 어떤 부분을 힘들어하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양말 한가운데 박힌 가시 하나가 천 리 길도 접어서 달릴 선수의 발목을 잡는다. 글쓰기 강사는 수강생의 그 가시를 찾아내 빼줘야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진 않다. 꾸준한 실천을 가로막고, 자꾸 중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수강생들 스스로의 '게으름'을 탓하며 자책하지만 그렇게 글쓰기를 배우겠다며 강의까지 찾아듣는 이들이 실제 게으른 경우는 거의 없다. '가시'를 아직 못 찾았을 뿐. 하물며 가시를 찾아도 쉽사리 빠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인 '가시'
 : 초등 일기 쓰기, 저주에 가까운 최악의 교육


일기 쓰기

주변에 초등 학부모에게 물어보면 요즘도 그렇다고들 하는데, 개인적으로 초등학생에게 제발 일기 써오라는 숙제는 내주지 말았으면 한다. 물론 일기 쓰기를 권할 수는 있다. 좋은 습관이고. 다만 그걸 왜 교사가 읽고 평가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일기'란 날마다 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을 적는 개인의 기록이다. 개인의 기록을 왜 남에게 보여야 하는가. 스스로 원한 것도 아닌데.

문제는 이때부터 '내가 쓴 글은 누군가가 보게 되더라, 그리고 평가를 한다'라는 경험이 쌓이게 된다. 이 경험은 무의식 깊이 뿌리박혀 '가시'가 된다. 초등학생들에게 일기(글쓰기)란 그저 숙제일 뿐이다.

이후에도 글은 쓰기만 하면 내내 평가 대상이 된다. 대학 들어갈 때 논술로 당락이 결정되고, 학교 다니는 동안엔 내내 리포트로 학점이 매겨진다. 대학 생활의 마무리도 논문, 즉 글로 매듭지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취업하려면 일단 자기소개서부터 써야 한고, 내 지나온 삶을 압축한 그 몇 줄로 다시 당락이 결정되기도 한다. 취업하면 끝인가. 온갖 기획안부터 업무 하나하나 죄다 보고서로 귀결*된다.

*한국 생산성본부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업무 중 보고서 작성에 보내는 시간이 무려 29.7%에 달한다고 한다.


요컨대 우리에게 '글쓰기'란 언제나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하는 곤욕스러운 과제나 다름이 없다. 이 무의식 깊이 박힌 이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부터 떨쳐내게 해야 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한 궁극적인, 그리고 유일한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글쓰기 요령 몇 가지 가르치는 것보다 이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



'모르다'의 활용


동사 '모르다'는 이렇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모르네 모르데 모르지 모르더라 모르리라 모르는구나 모르잖아 모르려나 모르니 모르고 모르나 모르면 모르면서 모르거나 모르거든 모르는데 모르지만 모르더라도 모르다가도 모르기조차 모르기까지 모르기를 모르기는 모르기도 모르기만 모르기조차 모르는 모르던 모른 모른다 모른다면 모른다만 모른답시고 모르겠다 모르겠네 모르겠지 모르겠더라 모르겠구나 모르겠니 모르겠고 모르겠으나 모르겠으면 모르겠으면서 모르겠거나 모르겠거든 모르겠는데 모르겠지만 모르겠더라도 모르겠다가도 모르겠던 모르겠다면 모르겠다만 모를 모를까 모를지 모를지도 모를수록 몰라 몰라도 몰라서 몰라야 몰라요 몰라라 몰랐다 몰랐네 몰랐지 몰랐더라 몰랐으리라 몰랐구나 몰랐잖아 몰랐으려나 몰랐으니 몰랐고 몰랐으나 몰랐으면 몰랐으면서 몰랐거나 몰랐거든 몰랐는데 몰랐지만 몰랐더라도 몰랐다가도 몰랐던 몰랐다면 몰랐다만 몰랐을 몰랐을까 몰랐을지 몰랐을지도 몰랐어 몰랐어도 몰랐어야 몰랐어요 몰랐더라면 몰랐더라도 몰랐겠다 몰랐겠네 몰랐겠지 몰랐겠더라 몰랐겠구나 몰랐겠니 몰랐겠고 몰랐겠으나 몰랐겠으면 몰랐겠으면서 몰랐겠거니 몰랐겠거든 몰랐겠는데 몰랐겠지만 몰랐겠더라도 몰랐겠다가도 몰랐겠던 몰랐겠다면 몰랐겠다만 몰랐겠어 몰랐겠어도 몰랐겠어서 몰랐겠어야 몰랐겠어요 몰랐겠더라면 몰랐겠더라도 모르시네

'이래서 한국말이 어렵구나'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중에 몰랐던 단어가 있으신지? 아마 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활용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의 단어는 이미 우리 머릿속에 다 들어있다.

어렵고 고상한 단어를 잔뜩 늘어놓은 글은 일견 있어 보이긴 할지언정 좋은 글이라 보긴 어렵다. 오히려 일상적이고 쉬운 어휘들로 구성해야 대중적이고 더 쉽게 와닿는다.


학을 나왔든 안 나왔든, 지식과 경험이 많든 적든, 이미 당신에겐 자질이 충분하다. 얼마든지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그러니 이제 그만 글쓰기는 어렵다는 생각 따위 지우고, 어깨에 힘을 뺀 다음, 몸이 하고자 하는 말을 그저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발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있거들랑 찬찬히 훑어보면 된다.

어렵다 생각하니 어렵고, 모른다 생각하니 스스로가 모른다고 여겨질 뿐이다.

모르고, 모르니, 모르네, 모르데…

이 많은 활용을 일일이 머리로 기억해 낼 수 있어야만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이 많은 활용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글은 몸으로 쓴다.

그리고 당신의 몸은 이미 알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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