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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Jan 04. 2022

스물한 살 어느 문학도의 질문

글 써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나요


글 써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나요?


문예창작학과 재학 당시 교수님을 찾아다니며 했던 질문이다. 뭐라고 답해주셨는지 생각 안 나는 거 보면 그리 와닿진 않았던 모양이지.

그저 글쓰기가 좋았고, 문창과 아니면 대학에 진학할 마음조차 없었던 나였지만 솔직히 글로 먹고 살 자신은 없었다. <대한민국 작가 평균 연봉 100만 원>이라는 기사 제목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 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일'과 '직업'에는 명확한 선이 그어져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도 많다. 다만 나는 자신이 없었을 뿐. 세상이 원래 그런지, 아니면 유독 내 주변만 그랬는지 몰라도 천재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들은 재능이 넘쳤고, 그래서인지 자기 일도 즐기는 듯 보였다.

남들 눈에는 나 또한 창작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루 서너 시간씩만 자면서 온종일 글에만 매달렸으니까. 하지만 서글프게도 나는 약간의 열정 외에는 온통 질투심만으로 똘똘 뭉친 열등감 덩어리에 불과했다.


서정주 시인을 스물세 해 동안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한다. 나를 키운 건 질투심이다. 스물세 해가 아니라 아마 서른세 해쯤 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작품을 읽을 때면 '나는 왜 이렇게 못 쓰지?'하고 화가 치밀었다. 단편 소설 한 편 읽는 데 일주일씩 걸리기도 했다. 한 페이지 읽다 부아가 치밀어 책을 집어던지곤 했으니까.

*서정주, <자화상>




내 지난 대학 생활은 단 두 개의 동사로 요약된다. 읽고, 쓰고의 반복.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글 쓰고, 밥 먹고 글 쓰고, 담배 한 대 피우고 글 쓰고, 커피 한잔 마시고 글 쓰고, 잘 쓴 남의 글을 읽다 그만 질투가 나서 집어던지고 머리 쥐어뜯다가 다시 앉아 글 쓰고… 그냥 그렇게 글만 쓰며 살았다. 읽고, 쓰고 했던 일 외에는 대학 생활에서 건질 만한 기억이 딱히 많지 않다. 미약하던 열정에 불을 지핀 건 질투심이었다. 질투는 나를 미친 듯이 쓰게 만들었다.


졸업하고는 고향에서 체질에도 안 맞는 영업을 했다. '사람 만나는 일을 해보자'라는 호기는 고작 몇 달도 안 가 술 없이는 잠 한숨 잘 수 없게 만들었다. 일 년 후 무작정 상경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어느 작은 출판사에 잠시 몸담아 책을 만들었다. 이후엔 마케팅을 배워 10년 넘게 홍보 일로 밥벌이를 했다. 글 밥 먹고 살 자신이 없어서다. 나는 딱히 도드라진 재능이 없다고 여겼다. 글로는 먹고 살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서정주의 아버지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고. 나의 아버지는 밤을 지새우며 종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내 대학 등록금까지만 겨우 마련하고는 IMF 직격탄을 맞았다. 작게 운영하던 공장은 문을 닫았고, 그 괄괄하고 굽힐 줄 모르는 성격으로 생전 처음 남 밑에서 일을 하다 대장암을 얻었다. 어머니의 머리는 순식간에 '파뿌리같이 늙'으셨고, 불 꺼진 거실에서 밤새 한숨 쉬는 일이 잦았다. 어머니도 서정주의 어매처럼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으셨는지 모르겠다.


대학 시절 내내 형광등 밑에 손톱이 까맣게 되도록 글만 썼다. 글로 밥 벌어먹고 살 자신은 없었지만, 당시에 글이라도 안 쓰면 견딜 수가 없었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시인 서정주의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섞여 있'었다. 그를 스물세 해 동안 키운 건 팔 할의 바람이었다.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 마냥 헐떡거리며' 그는 주어진 생을 묵묵히 살아냈다. 그렇게 살아보니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란다. 어떤 이는 서정주의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입에서 천지를 읽고 간다.


사람들은 내 눈에서, 또 내 입에서 무엇을 읽고 가려나.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은 채, 무엇을 뉘우쳐야 할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병든 수캐 마냥 헐떡거리며 새해를 맞았다.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은 요즘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서정주 <자화상>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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