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평균 독서량은 처참한 수준이다. 2020년 기준 연간 7.5권에 불과한데, 그나마 전년 대비 0.2권 늘어난 수치다. 월에 한 권도 안 읽는다는 뜻. 심지어 13세 이상이 대상이며 이는 참고서는 물론 잡지, 만화책까지 다 포함한 통계다. 독자보다 저자가 훨씬 많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는다.
그렇다곤 해도 '한 달에 책을 몇 권이나 읽느냐'는 질문은 어리석다. 세상에는 다양한 독서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책을 반드시 완독해야 한다는 오해가 올바른 독서를 방해한다. 어떤 책을 80% 정도만 읽었다면 이는 한 권을 다 읽은 것인가, 아니면 아예 읽지 않은 것인가? 위와 같은 통계를 낼 때 1권으로 잡아야 하나 아니면 0권으로 잡아야 하나.
왜 책을 안 읽을까
허기가 지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그래도 밥을 안 먹으면 기운이 빠지고,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진다. 음식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는 뭔가를 먹어야 살 수 있다.
하지만 독서는 그렇지 않다. 뇌가 고파져도 신체적으로는 딱히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뇌는 평생 안 채워줘도 생존에는 큰 지장이 없다. 독서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책 말고도 뇌에 자극을 줄만한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세상도 독서량 저하의 원인이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무료하지 않다. 게임뿐만 아니라 유튜브 앱 하나만으로도 시간은 잘 간다.
왜 책을 읽어야 할까
딱히 독서를 권하진 않는다.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면. 굳이 책을 읽어 뭐 하겠나. 가뜩이나 흥미도 못 느낀다는데. 다만,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싶다면 독서가 필요하다.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만한 참 스승을 언제,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그 스승, 서점에 가면 널리고 널렸다. 최소 십수 년 이상 연구한 온갖 자료와 노하우를 담은 것이 책 아니던가. 밤이고 새벽이고, 언제든 배움을 청할 수도 있다. 이만한 스승이 또 없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
문학 평론가 故 이어령 선생께서는 굳이 '의무감으로 책을 읽진 않았다'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재미없는 데는 뛰어넘고, 눈에 띄고 재미있는 곳만 찾아 읽는다고. 독서를 나비가 꿀을 따는 데 비유하기도 했다. 나비는 1번, 2번 순서대로 돌지 않는다. 목장에서 소가 풀을 뜯는 것도 마찬가지.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는다. 책을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필요 없다는 소리다.
잘못된 독서법
1. 모든 내용을 다 읽는다.
2. 책을 순서대로 읽는다.
3.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하려 애쓴다.
4. 질문하지 않는다.(맹목적인 습득)
5. 되팔 생각으로 깨끗하게 읽는다.
6. 한 번에 한 권의 책만 읽는다.
7. 무조건 많은 책을 읽는다.
책에서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검색을 통해 끝까지 파고들 수도 있겠으나, 소화할 능력이 없다면 넘겨도 괜찮다. 모든 책을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순서가 중요한 책은 따로 있지 않나. 소설 같은. 책에 나온 모든 정보를 다 기억할 수도 없다. 이를테면 통계 같은 숫자를 일일이 다 기억하기란 어렵다. 어떤 수치가 높다, 낮다, 그래서 위기다, 이 정도의 맥락만 읽어도 된다.
또한 모든 책의 가르침이 옳은 것도 아니다. 경제 서적의 경우 어떤 저자는 '주식은 위험하다, 부동산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어떤 저자는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갔다. 주식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 묻는다면 댓글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것이다. 맹목적인 습득이 아니라 생각하고 질문하며 읽어야 한다. 그래야 텍스트가 온전히 내 지식으로 자리 잡는다.
다산 정약용과 故 신영복 선생의 독서법
다산 정약용의 초서 독서법
1. 읽기 전 책에 대해 간단히 살피고 자기 생각 정리하기.
2. 책을 읽으며 책 속 내용과 뜻을 찾기.
3. 자기 생각과 책 속 뜻을 비교하며 취할 것만 취하라.
4. 취한 내용과 자기 생각을 함께 기록하라.
故 신영복 선생의 삼독(三讀) 독서법
1. 먼저 책의 내용을 읽는다.
2. 두 번째 읽을 때는 텍스트 밖에 있는 저자를 읽는다. 그의 문제의식이 뭔지, 그의 시련, 책을 쓰게 된 배경 등.
3. 마지막으로 그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읽는다.
나를 돌아보고 반성한다. 자기 객관화. 나와 이 책은 무슨 연관이 있나, 어떻게 실천하고 있나, 내 삶을 성찰하는 것.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초병렬 독서법
이곳저곳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고 한꺼번에 조금씩 읽는 방식이다. 서로 연결 고리가 없는 책이 좋은데 시집, 과학, 철학, 자기계발, 잡지 등의 묶음이다. 이는 뇌를 효율적으로 자극해 주고 창의력을 일깨워주며 통합적 사고가 가능케 한다.
여러 권을 동시에 읽으면 내용이 머리에 들어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이 방법이 효과가 없다면 학교 수업 방식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월요일 국어, 화요일 수학, 수요일 영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초병렬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1교시 국어, 2교시 수학, 3교시 영어, 4교시 과학. 이러한 패턴 자체가 사고를 자극해 준다는 뜻이다.
이어령 선생께서는 책을 무조건 많이 읽고 쓴다고 해서 크리에이티브가 나오진 않는다고 말한다. 제 머리로 읽고 써야 한다. 친구 사귈 때 이 사람 저 사람 두루 사귀 듯이. 오래 사귄 친구라고 그의 풀스토리를 다 알진 못한다. 하물며 평생 함께 산 아내도 모르는데 말이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도 모른다.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는 조우성 변호사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독서란 절대적 무지(無知)에서 상대적 무지로 가는 길이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도 몰랐던 상태에서 비로소 무엇을 모르는지, 그래서 뭘 배워야 하는지를 아는 상태. 그것만으로도 독서는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