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베껴 쓰는 법
글쓰기에 관한 글을 연재하면서, 첫 시작으로 [다독/다작/다상량]에 대해 다룬 바 있다. 거의 정석처럼 여겨지는 방법이지만 무턱대고 따라 해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내용이다. 오해가 없도록 다시 강조하지만 '무턱대고 따라 하면 도움이 안 된다'라는 뜻이지 실제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것만큼 글쓰기 실력 향상에 좋은 방법은 없다.
다독/다작이 도움 되려면 '제대로' 읽고 써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정독(精讀)'이다. 문장 하나하나의 뜻을 새겨 가며 자세히 읽는다는 뜻이다. 정독을 할 줄 모르면 만 권의 책을 읽어도 변화와 성장이 더디다.
그렇다면 '쓰기'에 있어서 '정(精)'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필사(筆寫)', 즉 베껴서 써보는 것이다. 필사는 글을 한자 한자 정성껏 옮기면서 내용을 꼼꼼하게 정독하는 행위다.
글을 가장 깊이 정독하는 법 : 필사
제대로 해야 글쓰기 실력도 성장
필사를 통해 기술적인 측면으로는 맞춤법과 문장의 구조, 문단 나누는 타이밍 등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필사한 글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차츰 다양한 어휘와 표현력이 몸에 배어들기 시작한다. 또한 좋은 글을 필사하다 보면 작가가 집필할 당시 경험했던 의식의 흐름을 느껴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읽기만 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인데, 작가의 상황과 감정에 이입되면서 깊은 몰입을 체험할 수 있다.
필사 제대로 효과 보는 법
어떤 글을 어떻게 베껴 써야 할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문학 작품을 쓰고 싶다면 소설이나 시를, 논리적인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칼럼이나 사설을 베껴 써보면 된다. 다만, 성취를 위해서는 필사하려는 글 선택이 중요하다. 필사에 좋은 글을 선택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필사에 대한 오해
문장력 향상에 실제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예전에 어느 유사언론(정보에 대한 검증 없이 자극적인 소재로 클릭 유도에만 혈안인 무늬만 언론사)에서 '필사는 글쓰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라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 그 글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지만 실제 필사가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우선 정독이 아니라 단순히 베끼는 행위만 이뤄진 경우가 있겠고, 혹은 베껴 쓰는 글에 문제가 있어도 필사는 헛수고가 된다. 그 문제란, 첫째로 글의 수준이 안 맞았을 때다. 수준이 지나치게 높거나, 반대로 형편없거나. 중학생이 박사 논문을 열심히 베껴본들, 혹은 유치원생 수준의 글을 열심히 옮겨본들 의미가 없다.
둘째, 좋은 글이라 할지라도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비유는 어떨까.
TV 시청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대한민국 최고의 MC들이다. 이들 중 한 명이 이제 막 방송인을 꿈꾸는 사회 초년생이라 가정해보자. 예를 들면 유재석이 공채 시험을 준비하며 열심히 강호동 스타일을 흉내 낸다면? 또는 전현무나, 신동엽을 따라 한다면?
필사로 효과를 못 봤다는 대부분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나와 맞지 않는 스타일'의 글을 베껴 썼기 때문이다. 필사하기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물음이 난처한 이유기도 하다.
필사할 책 선택하는 방법과 주의점
편안하게 잘 읽히는 글을 손으로 직접
그렇다고 해서 내 스타일에 안 맞는 글이 반드시 해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글의 수준만 맞는다면 다른 스타일의 글도 가끔은 필사해볼 만하다. 또 다른 스타일을 익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로는 내 화법에 어울리는 글을 필사해봐야 도움이 된다.
편안하게 잘 읽히는 글이 나와 맞는 글이다. 일단 술술 잘 읽히는 글을 선택하면 된다. 중문*이나 복문**이 지나치게 많은 글이나, 문장 호흡이 긴 만연체보다는 주로 짧은 문장으로 이뤄진 간결한 글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중문(重文) 두 개의 문장이 대등한 관계로 접속하여 이루어진 문장. '겨울이 가면 / 봄이 온다.'
**복문(複文) : 절(節)을 하나의 문장성분으로 가지고 있는 문장. '철수는 영희가 예쁘다고 생각한다.'
간혹 필사할 때 키보드로 타이핑해서 옮겨 적어도 되냐는 질문을 받는데, 도움이 전혀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으나 단순한 기계적 행위로 변질될 확률이 높다. 마음에 드는 노트 한 권 사셔서, 좋아하는 펜으로 한 글자 한 글자씩 정성 들여 써나가시길 권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