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이야기
오늘로부터 나를 괴롭히던 너에게 해방되었다. 그토록 바라고 기다렸던 이별이었는데.
우리의 마지막을 누구보다 원했던 나였는데. 꽤 오랫동안 예상했던 결말인데도 가슴이 아프다.
돌아오지 않는 내 답장을 기다리는 너를 보며 괜스레 미안해진다. 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너는 그렇게 사라졌다. 아니, 내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너와 이별을 시작하는 그날을 기점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내가 입 밖으로 내는 소리는 울음소리였다.
너는 나에게 무척 싱그러운 존재였다.
노란색과 분홍색이 섞여 있는 너의 존재가, 무채색인 나에게로 오면서 세상에 단 하나의 색처럼 피었다.
너에게 뜬금없는 연락이 올 때마다, 낡아서 버티고 있는 내 하루하루의 끝자락에 잊고 지내고 있었던 계절의 향을 피워냈다.
너와 연락이 닿기 전에는 배터리가 다되어 아등바등하고 있는 흔히 말하는 '낡은이'였다.
반복된 삶에, 무겁고 쓸데없기만 한 책임감으로 가득한 회사 일에 내 몸은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너는 점차 나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었다. 나에게 미래가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미래를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좋은 말을 해줄 때마다 감정의 이상이 생긴다. 그럼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는가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어떤 답을 주어야 할지 모른다. 그에게 항상 고맙지만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슬펐다.
내가 자존감이 떨어질때마다 채워준다는 그 순수한 말..
그 사람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순진한 건가, 바보 같은 건가. 너에게 물어봐도 확실하지만, 나에게는 애매모호한 답변만 나올 뿐이었다 왜 이런 날 챙겨주는지 몰랐다.
매일 아침 잘 일어났나, 매일 밤에 잘 자라고, 내가 보고 있지 않을 때는 장문의 연락을,
처음 받아보는 관심과 애정이라 덜컥 겁이 났다
하루의 마무리를 '나'로 하니 푹 잘 수 있다던 그.
오늘 하루의 끝이 나의 연락이라서 좋았던 그.
오늘도 그는 나와의 연락으로 하루를 마무리해서 좋다고 했다.
나도 화답으로 그렇게 대답을 하였다.
이 사람은 나에게 맞는 사람일까? 나를 만나면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과분한 것을 받는 게 미안했다.
나의 차가운 글자 속에서도 나에게 따뜻한 감정을 보내주던 너.
너에게 고마움보단 미안함이 나에게 다가온다.
이 사람이 나를 만나면서 실망하게 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를 조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너를 미워도 해봤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
그 속에서도 웃던 너, 가끔 다정하던 너, 아주 짧았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이 문득문득 떠올라.
그래서일까. 날 괴롭혔던 너인데도 나는 아직,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
끝내 네가 남긴 말들에 잠 못 들던 밤들도, 사랑했기에 아팠고, 사랑했기에 미련이 남았지만.
지금 아픈 게 배부른 슬픔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너를 위해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너에게 멀어지려 한다. 하지만 너와 함께 있던 시간에는 나에게 과분한 따뜻함이었기에 곁에 있고 싶어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을 일부러 안 하기 시작하였다. 나를 기다리는 것이 뻔히 보이지만 그래도 철저하게 무시했다.
갑자기 울음이 났다. 내가 맞는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괜찮을 거라며 나는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끝까지... 마음에서 내려놓진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내가 아프냐고 했다. 아프지만 어디가 아픈지 몰랐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너를 버렸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자존심도 함께.
그에게 모든 게 미안했다. 나를 만났던 사실조차도
그와 함께했던 인연의 실을 끊어낸 채, 눈앞에 펼쳐진 무거운 현실이 나를 짓누른다.
슬퍼할 틈조차 없이, 이 순간 나를 덮친 현실은 차갑고 아프게 스며든다.
정해진 시간대로 누군가에 의해 켜지는 가로등처럼 현실의 늪에 자동으로 꺼지거나 켜진 내 모습을 보며 모순적이라고 느꼈다.
내가 부순 감정들은 짙게 흩어졌고 그 파편들은 너무 작고 날카로워 다시 손에 쥐는 일조차 무서웠고 두려워졌다.
며칠이 지나고 너의 부재를 받아들였다.
어쩌면 네가 나의 핸드폰에 연락이 오는 날은 영영 없을 것이란 사실을.
다시 연락을 하라고 한들, 내가 너를 차가운 곳에 혼자 내버려 두었는데 아직도 날 좋아할지 하는 의문에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핸드폰을 내려둘 때마다 우여곡절 끝에 차곡차곡 쌓인 감정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럼 다시 아무것도 없는 벽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기다린 이별이었는데, 하루의 순간마다 울리던 핸드폰을 볼 때마다 내 가슴엔 말 못 할 통증으로 번진다.
그를 떠나보낸 지, 새해의 같은 계절을 만나보았다.
여전히 아픈지, 나로 인해 울고 있지는 않았는지,
여전히 다정해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는지,
나를 만나면서 함께했던 모든 시간은 너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나를 만났던 그 시간들은 행복했었는지. 나와 헤어지고도 행복한지.
잘 지내? 너의 스물여섯은 어떤지
이별을 향해 걸어온 발걸음 뒤엔 무심코 흘린 기억들, 지워지지 않는 말들,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던 마음들이
조용히 따라오고 있었더라.
너를 통해 배웠어. 사랑은 따뜻하다는 것을.
사랑은 미래를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미래가 기대되게 할 수 있는지를 배웠어.
우리의 추억이 언젠가는 따뜻하게 기억되길,
그동안 고마웠어. 행복하길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