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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seinate Jul 17. 2017

나라는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말라

[서평] 임덕화 편역 <소금, 쇠, 술>

혹자는 정치를 종합 예술이라고 한다. 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얽히고, 각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른 프레임이 있다. 이를 언론이 보도하고, 사람들은 여론을 통해서 의견을 표명한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입지에 따라서 자신과 당에 유리한 의견을 제시하고, 시민단체와 이익단체 역시 노선과 방향에 따라 압력을 가한다. 

계파 간 갈등이 폭발하고 공천을 염두에 둔 포석이 놓인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로 나아간다. 후일 밝혀진 정치 비사를 보면 세상에 우연이란 없고 모두 교묘한 짜맞추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치 못지않은 종합 예술이 더 있다. 바로 정책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 역시 하나의 예술이다. 각 부처의 관료 집단이 정책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고, 의원이 의견을 수렴해 발의하는 경우도 있다. 

공무원이 미리 준비한 안건을 자신의 것처럼 형식만 맞춰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정책 자체가 특정 이익 단체나 시민단체의 제안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글을 잘 써서 좋은 정책을 냈다고 끝이 아니다. 원내대표단의 협상 결과에 따라 정책의 근본이 변형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관료와 의원은 정책 결정에 개입하여 영향을 미친다.

안타까운 점은 모든 정책이 제대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출산이 문제라는 공감은 널리 퍼져있지만 2000년대 이후의 저출산 대비 정책들은 좋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최악의 경우로, 국민의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정책임에도 졸속으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 얼렁뚱땅 넘어간 정책들은 두고두고 논란이 되곤 한다. 정책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와 정책에 대한 찬반 의견에 놓인 정치 철학을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과거 중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책으로 남은 것이 있다. <소금, 쇠, 술>은 과거에 있었던 경제 정책에 대한 논의이다.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책에 대해서 고위 관료와 신진 개혁 세력이 맞붙은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정책은 전매 제도의 철폐 문제다. 전매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신진 세력에 해당하는 현량과 문학들이 기성 세력에 해당하는 대부와 어사에 맞서서 치열한 논쟁을 펼쳤다. 환관이라는 사람이 그 논쟁을 정리하여 <염철론>이라는 이름으로 기록한 것을 편역했다. 

과거 중국 한나라 시기에는 소금과 쇠, 술을 전매(專賣)했다. 국가가 재정 수입을 위하여 특정한 물품을 독점 경영하는 것을 전매라고 한다. 한국에도 전매 품목이 있었는데, 주로 담배와 홍삼이 그 대상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담배와 홍삼의 전매를 담당하는 전매청이 있었으나 1989년 담배인삼공사의 발족 이후 폐지된 바 있다. 담배인삼공사는 KT&G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기호품에 속하는 담배와 홍삼에 비해서, 소금과 철은 쓰임이 일상적인 것들이다. 소금은 그 자체로도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고, 철이 없으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을 공급할 수 없다. 대장간의 장인이나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필요한 도구는 철로 만든 것이다. 한나라는 이 중요한 품목들을 나라에서 독점했다. 흉노와의 전쟁에 필요한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소금과 철을 만들던 사람들은 기존엔 민간인들이었다. 하지만 전매 이후에는 그들이 관리가 되어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소금과 철이 생산되는 곳에는 철관과 염관을 두고, 민간인들은 국가 시설을 이용하여 소금이나 철을 생산하도록 했다. 제품의 판매는 국가가 전매했다. 이로 인해 기존에 소금과 철을 만들다가 경영권을 빼앗긴 이들은 순식간에 몰락하게 되었다. 

전매 제도의 존치를 주장하는 쪽은 대부와 어사들이었다. 이들은 기존 정치 세력을 대변하며, 고위 관직에 있는 이들이거나 그들의 편인 사람들이었다. 지위도 낮고 돈도 권위도 미약한 이들이 감히 윗사람 비판하는 줄만 안다며 폐지론자들을 비판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들은 법가를 숭상했고, 유교와 공자를 비판했으며 흉노와의 전쟁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가 말했다. 소금이나 철의 이익으로 백성들이 시급한 때에 도와주어도 군대의 비용은 충분했으며, 비축에 힘쓰고 궁핍을 대비하여 넉넉히 모아둔 것이 매우 많아 비축 분을 국가의 예산으로 써도 백성들은 걱정하는 바가 없었다.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웠으며, 문학은 무엇을 걱정하는가?' - 59p.

반면 전매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비교적 젊은 신진 세력들이었다. 이들은 유교를 익히고 공자의 언행을 따랐다. 이들은 지위 자체는 높지 않았지만 유교의 이론을 익혀 이론 투쟁에 쓸 줄 알았다. 유교를 배웠기에 상앙으로 대표되는 법가 사상에 비판적이었고, 인의와 도덕을 강조했으며 내치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중요하게 보았다.

'현량이 말했다. 지난날 백성들이 세금을 내고 쇠를 불리고 소금을 달여 만들 때에는 소금이나 오곡의 가격이 동일했고, 농기구는 조화되고 예리해 사용하는데 알맞았습니다. 지금의 관청에서 제작하는 철기는 잘못 만들어지고 가격은 비싸며, 소금을 만드는 일꾼들의 잦은 교체로 그들은 힘써 소금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습니다.' - 248p.

그래서 이들의 토론은 단순한 정책에 대한 가부를 따지는 토론이 아니었다. 정책을 둘러싼 신랄하고 구체적인 비판에서 시작된 토론은 국가를 다스리는 요체가 무엇이고 어떤 철학을 통해 사회를 이끌어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로 나아간다. 현량과 문학을 위주로 하는 신진 세력들은 유교에 기반한 통치를 주장했다.

'튼튼하고 좋은 말을 몰며 기병들을 줄 세워 행렬을 이루는 권력자들은 등에 짐을 지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가난한 것에 따르는 수고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군자는 인仁으로 너그럽게 하고 의義로써 헤아려 좋아하고 미워하는 바를 천하와 함께 하고, 불인한 것을 베풀지 않는 것입니다.' - 273p.

현량과 문학의 계속되는 비판에 대부는 얼굴을 붉힌다. 결국에는 현량과 문학의 논변이 대부를 꺾고야 만다. 그리하여 폐지를 주장하는 자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게 되나 소금과 철에 대한 전반적인 전매 폐지에는 다다르지 못했고 술의 전매 제도만 폐지되면서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이 책은 고위 관료 집단과 신진 선비 집단의 정책을 둘러싼 이론 투쟁을 보여준다. 날선 비판과 고전에 기반한 이론 전개 역시 흥미롭지만 한 나라의 정책을 두고 이렇게까지 두 집단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깊다. 

지금처럼 수직적인 문화가 과거에 비해 타파된 시대에도 이런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2000여 년 전 고대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일에 이렇게 날카로운 논변을 주고받고 서로의 생각을 모두 꺼내두며 토론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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