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신영복의 <담론>
자신의 능력이 100이라면, 능력을 얼마나 요구하는 곳에 가서 일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한 질문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 능력이 100이니까 당연히 100만큼의 능력을 요구하는 곳에서 일하면 딱 맞춤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능력이 100이라면 110, 120을 요구하는 곳에서 일해야 자기개발이 이루어지고 성과가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이 100이라면 70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가야한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책에 따르면,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가서는 안 된다. 능력이 모자라는 만큼을 함량 미달로 채우거나, 권위로 채우거나, 아니면 거짓으로 채울 수밖에 없어당연히 업무는 실패하고, 자신도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다. 하지만 70의 능력이어도 100의 자리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그 사람에게는 기회가 되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이 된다.
책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리의 권능을 자신의 능력과 착각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히말라야 높은 설산에 사는 토끼는, 평지에 사는 코끼리보다 자기가 크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부려서 하는 일을 자신의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면서.
자리와 인간의 관계론에 대해 이렇게 접근하는 책의 이름은 <담론>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으로 유명한 고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편집한 책이다.
이 책은 인간과 다른 인간이 갖는 관계에 대해 논하고, 새로운 변화와 창조를 이루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인문학 서적이다. 그런데 그 가르침을 주는 방식이 독특하다. 한 번은 고전을 통해서 말하고 다른 한 번은 감옥 이야기를 통해서 말한다.
<담론>은 저자가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한 녹취록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그래서 책의 전반부는 시, 어부, 논어, 맹자, 노장 사상, 법가 등에 대해 배우는 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후반부는 저자가 감옥에서 수형 생활을 하면서 느낀 바를 인문학적인 주제와 함께 풀어낸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이 담겨 있다. 일부 내용은 저자의 다른 유명 저서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내용과도 관련이 있다.
저자는 <강의>와 마찬가지로 고전 공부에 많은 양을 할애한다. 그에 따르면 고전 공부란 인류가 쌓아온 지적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과거의 사건을 암기하는 것은 그가 말하는 공부가 아니다. 고전 공부를 통해서 과거, 현재의 소통을 바탕으로 미래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모든 고전 공부는 세 가지를 읽어야 하는데, 텍스트를 읽고, 저자를 읽고, 마침내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 고전 <어부>의 주인공은 굴원이다. 진나라라는 초강대국을 두고 어떤 방법을 취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합종연횡의 세계에서, 진나라에 대항하는 정책을 주장한 정치가다. 그는 고고한 입장을 유지하다가 유배당하고 <어부>를 쓴다. 어부와 굴원이 만나서 대화하는 시다.
굴원은 비타협적인 원칙론자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갓의 먼지를 털어 쓰고, 몸을 씻은 사람은 옷의 먼지를 털어 입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어부는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면 된다고 응수한다. 이것은 굴원의 자문자답이다. 저자는 여기서 현실과 이상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현실을 존중하되 이룰 수 없는 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책이 특히 강조하는 고전은 <주역>이다. 주역은 변화 양상을 표현하는 괘(卦)를 중심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책이다. 그런데 주역에는 독특한 점이 많다. 서두에 말한 능력의 문제 역시 저자가 주역과 관련하여 풀이한 것이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괘는 상식에 반하지만, 서로 만나서 기운이 통하기 때문에 좋은 괘다.
또 주역은 소수자인 것을 중시하는 마이너리티 우선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주역의 마지막 괘는 미완성으로 끝난다. 이런 주역에서 저자가 배운 것은 '관계론'이다. 저자에 따르면, 주역이 말하는 최고의 관계론은 성찰, 겸손, 절제, 미완성, 변방이다.
'성찰'은 자기중심이 아닙니다. 시각을 자기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뒤에 세우며, 자기의 존재를 상대화하여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절제'는 자기를 작게 가지는 것입니다. (중략) '미완성'은 목표보다는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게 합니다. 완성이 없다면 남는 것은 과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의 덕목은 그것이 변방에 처할 때 최고가 됩니다. '변방'이 득위의 자리입니다. - 72p.
책의 후반부에 언급되는 감옥 이야기는 매우 직관적이다. 교도소는 하나의 사회학 학교다. 모두 형벌을 받고 감옥에 들어왔기 때문에 옷을 멋지게 다려 입거나 잘난 사람이라고 말해 봐야 의미가 없다. 거짓말을 하면 사람이 적어 바로 티가 나고, 몰래 보이는 진면목이 그대로 퍼져나가는 곳이다. 감옥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여름과 겨울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자에 따르면 감옥에서는 여름 징역살이가 겨울 징역살이보다 훨씬 끔찍하다고 한다. 겨울에는 꼭 필요했던 옆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 여름에는 증오스럽게 변하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에 살을 맞대고 붙어서 자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이것은 자신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증오를 받는 것이다.
'겨울 징역살이가 그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옆 사람의 체온과 이처럼 잔잔한 인정이 느껴지는 것임에 비하여 여름철은 더위와 증오에 시달립니다. 낮 동안에 감방의 벽돌 벽이 땡볕에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져서 감방은 마치 가마 속 같습니다. (중략) 이 글은 증오의 대상을 옳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더욱 괴롭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 300p
사실 옆 사람 때문이 아니라 감옥과 좁은 잠자리가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밤이 되면 옆 사람에게 증오를 불태우게 된다. 이런 증오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옆 사람의 체온이 필요한 겨울이 되어야 깨달을 수 있다. 감옥이 가르쳐주는 관계학이다.
책이 고전과 감옥의 이야기를 통틀어서 말하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공존과 관용을 넘어서 변화와 탈주를 이루고, 존재로부터 관계로 나아가는 탈근대 담론이 논의 대상이다. 저자는 이 강의가 이루어진 교실이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 없는 창조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책을 읽는 동안 변방에서 창조를 이루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저자의 마지막 글은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이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씨 과실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새봄의 새싹이 되어 훗날 나무가 되고, 숲이 될 씨 과실을 먹지 않는 것이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기다리고 키우는 것을 불편하게, 불필요하게 여기는 세상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감옥 속에서도 사색할 수 있는 그 태도를 익힐 수 있다면 새봄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