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기막힌 인물묘사가 일품인 윤흥길 장편소설 <완장>
완장이 없는 시대는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완장의 시대를 사는 이들이 꼭 한 번은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윤흥길 작가의 소설 <완장>이다. 완장을 얻게 된 인간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1980년대에 나온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참 기가 막히는 인물 묘사가 일품이다.
주인공 임종술은 시골에 사는 건달이다. 혼자서 종술을 키워온 어머니 운암댁, 바람난 전처의 딸과 셋이서 살고 있다. 젊어서 도시에 나가 돈을 벌 생각을 했지만 결국 빈털터리 신세로 마을에 돌아왔다.
생계를 위한 일은 하지 않고, 술 마시고 마을 사람들에게 행패부리기를 좋아한다. 마을 사람들은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며 종술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은 없지만 자존심만은 대단해서 다른 사람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다.
이런 종술에게 어느 날 마을 유지 익삼씨가 접근한다. 익삼씨의 친척 아저씨는 인근 저수지에서 양어장을 하고 있는데,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친척인 익삼씨는 사람을 채용해서 저수지 감시원으로 두고 낚시를 단속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적은 돈으로 일 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보니 말 안 듣는 종술에게 일자리 제의가 온 것이다.
이렇게 종술은 푼돈에 저수지 감시원으로 일하게 된다. 술집에서도 비웃음받을 정도고, 적은 월급인 것을 종술 본인도 알지만 종술은 대만족한다. 갑자기 일에 만족하는 자식 때문에 가족들도 놀란다. 종술이 이렇게 변한 것은 바로 팔에 차는 감독 완장 때문이다.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로 새긴 '감독'의 완장. 종술은 저수지 인근에서 낚시를 단속할 때가 아니어도 항상 완장을 차고 다닌다.
종술은 단순히 완장을 차기만 한 것이 아니라, 번질번질하게 칠을 해서 빛나는 완장을 팔에 차고 마을에 나가 남을 무시한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이 없어 한다. 종술은 버스에서도 거들먹거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으스대기를 멈추지 않는다.
"임씨, 임씨가 맡은 그 감독이 뭣이다요?" 종술은 얼른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 만한 얼굴이었다. 소재지에서 이발관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직도 소식이 깡통인 그에게 종술은 대뜸 눈알을 허옇게 부라렸다. "여보쇼 장씨, 당신 말버릇 조깨 세탁혀야 쓰겄어! 내가 장씨 친구여 뭐여? 어따 대고 함부로 임씨, 임씨여?" 그러자 이발관 사장 또한 단박에 침 먹은 지네요 댓진 먹은 배암이 되었다. (중략)
종술은 버스 속에서의 체험을 통하여 매우 중대한 두 가지 사실을 비로소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 첫째는 스스로 얼마만큼 권위를 세우느냐에 따라서 선생님 소리도 듣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이고, 그 둘째는 완장의 위력이 비단 판금 저수지 일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기가 하려고만 든다면 저수지 밖에서도 얼마든지 유리하게 통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40~41p.
종술은 저수지 감시원으로서 낚시를 단속하는 자신의 완장 뒤에는 법이 있다는 것을 안다. 바로 저수지에 관한 '공유 수면 관리법'이다. 그는 공유 수면 관리법이 무슨 법인지 잘 외우진 못해도 어쨌든 자신에게 법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저수지 주변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려도 용인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원래 폭력적인 종술이 완장까지 찼으니 마을 사람들에겐 증오의 대상이다.
그는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동창이나 친구도 용서하지 않는다. 먹고 살기가 어려워 양어장 물고기를 잡는 동창을 잡아 혹독하게 팬다. 같이 온 동창의 아들까지 종술에게 맞아 귀청이 상한다. 동창은 결국 자신의 은사에게 찾아가서 돈을 빌려 아들을 치료한다. 하지만 종술은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 자신의 저수지는 왕국이나 다름없고, 침입자는 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의 아들에게도 가차없다.
종술은 계속해서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여행 온 남녀 커플 두 쌍을 잡아서 남자에게 원산 폭격을 시킨다. 동네 친구의 텐트를 빼앗고 자신이 마음대로 쓴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을 데려와 자신의 권위와 영역을 보인다.
그는 완장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완장을 한 번 차면, 동네 사람 종술, 동창 임종술은 없다. 자신이 인정받는 권력의 근원이 그에게는 전부이다. 그에게는 오직 완장뿐이다. 우연히 자신의 손에 들어온 완장을 기회로 삼아 그는 권력의 화신으로 변해버렸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건넜다. 저수지를 자신의 왕국으로 삼고 하나의 왕이 된 그는 영역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종술은 희화화된 캐릭터지만, 사회에도 종술처럼 자신의 완장을 정체성으로 삼는 이들은 많다. 자신의 직무에서 나오는 권력을, 자신의 개인적인 강함을 착각하는 이들이다. 완장의 힘을 쓰다 보면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변하지만 완장이 두려워 말하지 못한다. 결국 완장의 힘에도 한계가 있고, 이런 행동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본인만 모르게 된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행동은 부적절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결말에서, 천하에 적이 없을 것 같던 종술의 권력도 허망하게 끝이 난다. 날이 가물자 저수지의 물을 농업 용수로 쓰기로 한 것이다. 저수지 물을 빼고 고기를 치우면서 양어장 관리가 필요 없게 되자 종술의 왕국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는 미친 듯이 난리를 치고 사람을 폭행한다. 결국 마을 사람들의 분노와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을 뒤로하고 결국 야반도주한다.
바람처럼 고샅길을 질주하는 거친 고함 소리만이 실신해버린 듯한 마음을 간간히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노름판에서 나이롱뽕 허다가 개평으로 뜯은 완장인지 아냐아!" 운암댁의 귀에도 그 소리는 어김없이 들려왔다. 아들의 울부짖음이 들릴 때마다 그니의 가슴은 천만 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하늘이 무너내리는 때가 온 것이다. 아들이 감시원 완장을 손에 넣고 겁 없이 날뛰던 첫순간부터 이미 예감한 바 있는 불행이었다. -296P
종술의 아버지는 완장을 차고 사람을 살해한 뒤 도주했다. 종술이 새롭게 찬 완장은 그에게 정체성을 주었고 무너지지 않을 듯한 왕국을 주었지만 종술의 인생을 파멸로 끌고 갔다. 어떤 완장도 영원한 완장은 없었던 것이다.
완장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완장의 맛에 취해버리면 목불인견이 되고 만다. 하지만 본인은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마침내 완장이 떨어져 나가면 발가벗겨진 듯한 고통이 남는다. 소설은 이러한 진리를 구수한 사투리와 농촌의 인물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책은 해학과 풍자를 통해서 권력의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책이 나온 지 30년이 흘렀지만, 완장의 시대를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은 듯하다. 완장이 가진 힘을 자신의 힘으로 착각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만 했다면 완장은 성실의 상징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완장이 성실한 직무의 표시로 남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