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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Jul 20. 2022

<큐어 Cure> 칼을 들고 치료하라

철컥. 화르륵. 뚝. 뚝. 덜컹.

의미를 알 수 없는 반복되는 질문과 빛, 소리. 일상에서 벗어난 기묘한 상황에서 사람의 인식은 비틀어지기 시작한다. 최면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 CURE, 1997>는 일상에서의 기묘한 비틀림을 주고 거기에서 오는 불쾌감을 관객에게 준다. 이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 호러, 추리 등 다양하게 담으려 하지만 정작 감독은 '괴물'영화라 칭하고 있다. 그만큼 특별한 장르로 규정하기 힘든 영화다. 하지만 영화가 가진 독특한 연출로 인해, 영화의 주제를 영화 외적으로까지 영향을 끼치는 굉장히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인지 박찬욱이나 봉준호 같은 국내 거장 감독들의 찬사를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철컥. 화르륵. 뚝. 뚝. 덜컹.

영화는 일반적인 스릴러물과는 다르게, 와이드 샷으로 잡은 화면을 롱테이크로 자주 보여준다. 특히 시작하자마자 경쾌한 음악과 함께 벌어지는 사건은 관객을 당황하게 한다. 이런 장면을 이렇게 보여줘도 되는 걸까? 특히 영화에서 음악은, 관객의 감정을 특별한 곳으로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왜 그런 장면에 그런 음악을 썼을까. 그 장면에 그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 걸까. 영화는 내내 그런 식으로 평범한 일상을 파고든다.


철컥. 화르륵. 뚝. 뚝. 덜컹.




[아래 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면술

화르륵. 뚝.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속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이 살인을 연쇄살인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살해 수법이 똑같아서가 아니라, 시신의 목에 X자 자상이 똑같이 그어져 있어서다. 형사 타카베 켄이치(야쿠쇼 코지)아무런 연결점이 없는 사람들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것에 주목하고, 최면술에 다다른다.


화르륵. 뚝.

사실 이 영화에 나오는 최면술 자체는 신기한 소재는 아니다. 최면술은 80~90년에 염력. 오컬트와 함께 당시 유행하던 소재였다. 다양한 최면술 서적이 인기였고, 우리 집에도 몇 권 있어서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심지어 90년대 초에 나온 이현세의 만화 <블루엔젤>에는 최면술로 타인에게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해 '순간최면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었다. <큐어>에서는 살인 용의자로 지목받는 마미야 쿠니히코 (하기와라 마사토)가 그 기원부터 찾아간다.


화르륵. 뚝.

형사 타카베가 찾아간 마미야의 집에는 다양한 심리학 최면술 서적들이 있었다. 그는 의대생이었고 동물최면치료에 심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 프란츠 안톤 메스머라는 인물의 책이 보인다. 메스머는 최면술을 창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메스머가 뭔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그의 주장이나 의료행위들은 당시 유행했던 뉴튼의 과학이론을 빗댄 유사과학에 불과했다. 몸에 철가루를 탄 물을 마시게 하고 자석을 갖다 대어 치료하는 식이었다. 메스머는 당대에 사기꾼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에게 관심을 가졌던 다른 학자들에 의해 최면술과 플라시보등 으로 연결되었다.



화르륵. 뚝.

최면술은 흔히 펜던트를 진자 운동으로 왔다 갔다 하게 하거나, 불빛을 깜빡인다거나, 특별한 파장의 소리를 지속적으로 들려주어서 최면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암시에 잘 걸리는 타입이라면 그런 번거로운 일은 필요가 없다. 순간최면법이라고 하는데, 일상적인 대화나 동작 등이 아닌 아주 자그마한 틀어짐을 순간적으로 주면 몸은 반사적으로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반응한다. 이때 순간적으로 의식이 무의식 상태가 되는데, 그 찰나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어두운 곳에서 불빛을 보면 순간적으로 동공이 작아진다. 바로 그 순간이 최면에 걸리는 순간이다. 그리고 마미야가 기억을 잃어버린 것처럼 계속해서 반복하는 질문도, 같은 대답을 반복하게 해서 최면상태로 유도하려는 방법이다. 영화에선 마미야가 최면을 거는 방법이 점점 다양하고 자세하게 그려지며 관객을 최면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화르륵. 뚝.

<큐어>가 독특한 점은, 이것이 단순히 영화 내의 사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내용이 '평범한 사람도 최면에 걸리면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인데, 영화는 소리와 빛을, 마미야의 반복적인 대사, 서브리미널 메시지 등을 이용해 관객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 물론 그것이 진짜 최면은 아니다. 하지만 소리의 상태나 컷 편집, 빛의 노출, 스토리의 얽힘 등을 점점 일상과 위화감을 주는 방향으로 이끌어, 최면이나 히스테리, 혹은 정신병에 걸려있는 상태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 경험이 일반 스릴러물 하고 다르게 영화 외적으로 관객에게 영향을 준다.


화르륵. 뚝.

마미야는 처음 상대방을 만나고 대화하기 시작하면, 이 사람이 암시에 잘 걸리는 타입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처음 마미야가 등장하는 바닷가 장면에서, 그는 앉아있는 남자에게 '여기가 어디지?''나는 누구지?'라며 계속해서 반복되는 질문을 한다. 그 둘 사이의 거리와 긴장감이 좁혔다 벌어졌다 하는 사이, 순간적으로 영화는 살짝 밝아졌다 다시 어두워진다. 마미야가 그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의미다. 마미야는 그 정도로 천재적으로 최면과 심리에 대해 꿰뚫어 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안에 있던 것이 다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화르륵. 뚝.

하지만 형사 타카베는 어쩐 일인지 그의 방법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마미야의 무력해 보이는 행동에 안심하고 최면에 걸려든 것이기도 하고 타카베는 용의자로서 경계심을 갖고 있어서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타카베는 특별한 사람이다. 이상행동을 하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부인을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선 그녀의 병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마치 치매나 다중인격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길을 잊어버리고 이상한 행동을 반복한다. 특히 빈 세탁기를 계속해서 탈수시키는 소리는 타카베마저 힘들게 한다. 타카베 켄이치(高部賢一)라는 이름의 켄이치(賢一)는 '어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그런 상태를 참아가며 부인을 돌본다.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타카베에게 마미야의 그런 행동들은 이미 익숙한 행동이었다. 최면에 걸릴 여지가 생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인을 떠올리게 해 화를 돋웠다. 이미 최면에 걸린 사람은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 이미 미친 사람은 미치지 않는다. 그러기에, 마미야는 타카베에게 대단하다는 칭찬을 한 것이다.



X모양의 자상

끼익.

살해당한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목에 X자 형태의 자상을 입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점은, X자의 자상이 살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들 무언가로 먼저 두드려 맞던지 해서 기절하거나 절명한 상태였고, 거기서 목을 그어 출혈을 시켰다. 마치 X자를 긋기 위해 사람을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끼익.

메스머리즘을 일본으로 들여와 사교 수준으로 만든 사람은 외딴 정신병원에 있던 하쿠라쿠 토지오다. 하쿠라쿠 토지오가 행했던 초기 최면 비디오를 타카베와 그의 정신과 의사 친구 사쿠마 마코토가 구해와서 보게 된다. 아주 짧은 영상이었지만 분명 손가락으로 X자를 그리는 행위를 보였다. 그리고 화면 속의 그녀는 아들을 죽이고 목에 십자형태의 상처를 냈다고 했다.


끼이익.

여기서 주목할 점은, 초기 사교의 최면술로 행해진 살인의 결과는 십자형태라고 서술하고 있는 점이다. 우리는 보이는 상처가 X로 보여서 X라고 생각했지만, 의학적으로 보면 그것은 십자 절개(cruciate incision)의 모양이다. 십자 절개는 수술을 할 때 다양한 절개 방법 중 하나로, 주로 속 안에 이물질을 제거할 때 쓰인다. 외과술을 한의학에 도입한 치종비방에서도 십자 절개로 종기를 치료하는 것은 큰 혁신이었다. 이 십자 절개의 방식은 후에 하쿠라쿠 토지오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칼을 들고 치료하라'라는 목소리와 연결된다. 치료받는 상대의 속에 있는 악한 영혼을 꺼내는 것으로 치료하라고.


끼익.

X라는 표시는 십자 절개 치료의 의미도 있지만 그 하쿠라쿠 토지오가 있던 최면술 사교의 표식이기도 하다. 이 살인이 사교에 의해 행해졌다는 표식이다. 그러나 그런 표식을 남긴다는 것, 마미야가 스스로 범죄자라는 인식이 없는 것 등 이 연쇄살인에는 완벽한 범죄로 보기에는 허술한 지점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완성되어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전도하며 완성된다

덜컹덜컹.

이 세상의 많은 사상들은 후세대로 전도되며 완성되어간다. 예수와 그 제자들이 만든 종교는 사실 그렇게 널리 퍼지지 않았다. 예수를 만난 적도 없던 후세대인 바울이 그 사상을 전도받고 체계적인 교리를 만들었고, 다시 바울이 만든 사상을 로마가 공식적으로 국교로 삼은 후에야 지금과 같은 크리스트교가 만들어졌다. 불교가 전파된 방식도 굉장히 유사하다. 예수든 붓다든, 살아있을 당시에는 그저 꽤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사이비였을 뿐이다. 그러다 그들이 죽고, 제자에 의해 신격화되고, 종국에는 그들을 만난 적도 없는 제3세대에 가서 완전한 신이 된다. 지금 교주들이 살아있는 사이비 종교들도, 100년 20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덜컹덜컹.

하쿠라쿠 토지오도, 마미야 쿠니히코도 메스머에게서 비롯된 최면술과 심리학을 이용한 사교의 전도사였지만 기본은 의사였다. 범죄 자체에 대해선 초보자나 다름없었다. 마미야가 잡히지 않았던 이유는 그냥 그가 살인이 벌어지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고, 자신을 잊은 채 떠돌았기 때문이다. 우연하게 경찰한테 맡겨져 병원에 왔다가 용의자가 되었지만, 딱히 도망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덜컹덜컹.

하쿠라쿠 토지오의 오래된 폐허 병동에서 마주한 타카베와 마미야. 총을 맞고 누워있는 마미야는 마지막으로 십자를 긋는다. 하지만 그거는 여전히 타카베에게 최면으로 통하지 않는다. 타카베는 총으로 마미야를 쏴 죽인다. 그러나 마미야의 손과 타카베의 총이 교차된 그 컷은, 마치 마미야가 타카베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처럼 보인다. 가톨릭에서는 성체성사를 할 때, 손에 크리스마 성유를 묻혀 이마에 삽자를 그린다. 타카베는 진실을 알러 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자신이 마미야의 세례를 받고 사교의 전도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덜컹덜컹.

십자의 형태가 다음 세대로 이어가며 X로 바뀌는 것은 역사 속에도 나온다. 서기 800년 경 유럽을 통일한 샤를마뉴 대제다. 샤를마뉴 대제는, 큰 업적을 많이 남긴 왕임에도 불구하고 문맹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는 서명할 때 이름을 쓸 수가 없어서 십자를 그었다고 한다. 그것이 변형되어, 지금도 유럽에서는 X 표시를 하면 서명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또한 예수의 제자 중 하나인 안드레아는 십자가형에 처해졌지만 예수와 같은 십자가에 묶일 수 없다며 그리스도의 첫 글자인 X자 형태의 틀에 묶여 숨졌다. 이처럼 시대가 지나며 십자는 X가 되었고, 최면술은 사교가 되었다.


덜컹덜컹.

타카베는 언제부터 그렇게 살인을 교사하는 전도사가 될 수 있었을까? 이 부분은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뭔가 찝찝한 구석은 있다. 바로 뒤에 부인을 정신병원에 맡길 때, 의사가 타카베를 보고 '당신이 더 병자 같아요'라고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세탁소에 갔는데, 맡긴 세탁물이 없다고 한다. 그때 불현듯 스치는 생각은, 앞서 나왔던 세탁소 장면에서도 타카베가 무언가를 실제로 맡기긴 했었나?이다. 그리고 집안에서 계속해서 돌아가던 세탁기. 처음에는 부인이 빈 세탁기를 끝도 없이 돌리고 타카베는 끈다. 그런데 이 행동이, 아무렇지 않은 생활을 하는 부인을 보고 자살한 환각을 보는 것부터 이상했다. 사실은 부인이 제대로 빨래를 돌리고 있고 타카베가 계속 끄는 건 아닐까? 부인의 증세가 생각만큼 심하지 않았고 타카베는 부인을 돌보다 이미 반쯤 미쳐있던 건 아닐까? 이미 최면에 걸린 사람은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 이미 미친 사람은 미치지 않는다.


덜컹덜컹.

타카베가 마미야의 유산을 물려받는 부분에 대한 은유는 사실 영화 처음부터 나온다. 첫 장면에서 정신병을 앓고 있는 타카베의 부인이 읽고 있던 동화 <푸른 수염>. 그녀는 그 끝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푸른 수염이 죽는다고. <푸른 수염>의 내용은 이렇다. 푸른 수염을 한 엄청난 부자 남작이 부인을 맞이했는데 모든 방 문 열쇠를 주며 단 하나의 방은 열지 말라고 한다. 부인은 푸른 수염이 외출한 틈을 타 그 방을 열어보는데, 거기엔 전 부인들로 보이는 여자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푸른 수염은 돌아와 부인을 죽이려고 했지만, 부인은 마침 쳐들어온 오빠들과 함께 푸른 수염을 죽이고 그의 모든 재산을 가진다. 즉 부인은 그를 죽임으로써 푸른 수염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타카베가 마미야를 죽이고 그 전도사가 될 수 있는 유산들을 물려받은 것처럼. 그리고 영화 시작 부근에서 마미야가 처음 등장할 때, 바닷가에서 버버리 코트를 입은 채 등장한다. 그런데 그 모습은 영화 내내 등장하는 타카베의 모습과 굉장히 유사하다. 타카베와 마미야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그의 유산을 물려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덜컹덜컹.

마미야의 최면술을 타카베 형사가 전도받자, 그것은 완성된 형태의 범죄가 되어버린다. 타카베는 범죄의 전문가다. 어떻게 하면 잡히지 않고 할 수 있을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마지막 레스토랑에서 멀쩡하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그는 전도를 받고 나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가 처음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 부인을 살해한 방식을 보라. 이전 피해자들은 피의자로부터 악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죽이고 목을 그었을 뿐이다. 하지만 부인은 의자에 묶인 채 목이 그어져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마치 살아 있을 때 목이 그어진 것처럼 보인다. 고통받다가 죽은 것이고, 그 살해 방식엔 그녀를 향한, 악의가 느껴진다.


세상을 치료하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진 타카베. 그리고 범죄를 은닉할 수 있는 자. 쿵.

나는 마미야의 행보보다, 쿵. 앞으로 시작될 타카베의 행보가 더욱 섬뜩했다. 쿵.




이미 최면에 걸린, 혹은 그런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영화가 전혀 충격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서 그것은 또 한차례 다른 차원으로 진화한 큐어CURE, 치료를 행하는 사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무런 결론도 내려주지 않는 풍경으로 끝나는 엔딩은, 이것이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스며들어갈 지 모르는 공포를 안겨다 준다. 하지만,



철컥. 화르륵. 뚝. 뚝.


다시 한번 하쿠라쿠 토지오의 축음기 속 목소리를 되뇌어 보자.

"병든 자는 악하여 고칠 수 없으니 칼로써 치료하라"

X


덜컹.






* 이 글은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글입니다.

영화 리뷰와 인문학을 접목한 재미있는 글들이 많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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