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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Aug 05. 2022

<외계+인 1부> 무심한 파괴자의 무서움

'인간의 몸에 외계인의 죄수를 가둔다'라는 설정은 플라톤이 말한 '몸은 영혼의 감옥이다'의 이원론적 개념과, 불교의 윤회사상이 섞인 이야기다. 이 두 개념이 외계인으로 연결되는 건 2008년에 나온 책 <외계인과의 인터뷰:Alien Interview>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은 1947년, 불시착한 외계인을 극비리에 만나서 텔레파시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간호장교 마틸다 맥클로이가 죽으면서 남긴 외계인과의 인터뷰다. 당시 소설가에게 주고 소설 형식으로 출간해달라 했으나 인터뷰 전문을 보고 충격받은 작가는 인터뷰를 그대로 출간했다고 한다. 그 내용에 따르면, 당시 번개를 맞고 추락한 외계인은 눈만 있고 코 귀 입이 없고, 인형 같은 몸이라고 했다. 그래서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으나, 오직 마틸다하고만 텔레파시로 이야기를 나눴고, 나중에 외계인은 영어를 익히게 되어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외계인이 말하는 지구의 역사와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와 문명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이즈비(IS-BE)라는 영혼의 개념과, 지구가 그들 제국의 감옥이라는 개념이다. 영혼은 불멸하며 사라지지 않고 현실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 조작을 통해 죄수들을 지구라는 곳에 기억을 지워버린 채 가둔다고 했다. 죽으면 탈출할 수 있지만, 전자적인 기억상실망이 있어 기억이 지워지고 다시 지구로 돌려보내진다고 한다. 이것은 윤회를 설명하는 것이고, 완벽한 탈출방법은 붓다가 제시했다고 말한다.


보통 다른 외계인 음모론이 기독교를 외계인과 묶어 설명하려는 것에 비해, 이 <외계인과의 인터뷰>는 불교와 윤회를 외계인과 엮어 이야기함으로써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 개념의 많은 부분이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에 녹아들어가 있다. 음모론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종교와 철학 과학을 겉핥기로만 알고 엮는 게 특징이긴 하지만 그게 그리 중요하진 않다. 소비하는 입장에선 흥미롭고 재미있으면 그만이니까.


<외계+인 1부>는 거액을 들인 대작에 1,2부로 나누어 개봉할 정도로 방대한 스토리지만 안타깝게도 흥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과연, 보지 않은 채로 평가절하될 만한 수준의 영화인가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 A(세계관 설명, 고려와 한국)-B(A의 고려+10년)-C(A의 한국+10년)-B-C-B-C-B-C 의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이 배치되어 있어, 조금 빠른 장면 전환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어렵지 않지만 일반 관객에겐 조금 복잡하다 느낄 수는 있다. 처음부터 로봇이 과거 고려의 아이를 현대로 데려가 키워서, C에 등장하는 아이가 과연 B에 등장하는 누구인가에 대해 궁금하게 만든다. 또, B에서 주인공인 기억을 잊어버린 도사 무륵이 점점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의도하지 않은 파괴자들

흔히 할리우드의 외계인 영화라고 하면,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는 게 주를 이룬다. 그건 백인들이 제국주의 시절 저지른 그들의 업보다. 자신들이 다른 세계를 짓밟았던 기억이 있는 만큼, 자신들도 기술이 뛰어난 누군가가 침략할 것이라는 두려움. 하지만 <외계+인 1부>에서의 외계인은 지구를 침략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침략한다기보단, 잘 보존되고 있는 태평양의 외딴섬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죄수를 귀양 보내고, 그곳의 자연은 보호하는 식. 물론 그 방식이 지구인을 자기들과 대등한 존재라는 선에 놓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만, 일단 쓰레기는 눈에 보이지 않게 저 멀리 버리는 행태는 인간하고 다를 게 없다.


애초에 그들에게 지구는 침략할 가치조차 없는 곳이다. <외계+인 1부>에서 외계인에게 인간은 그저 버러지다. 하지만, 감옥으로써 기능을 다하고 생태계를 해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위해 가드(김우빈)썬더(김대명/김우빈)가 지구에 파견되어, 가끔 탈옥해 난동을 부리는 죄수들을 관리한다.


지금 우리 지구의 현대인들은 어떤가? 헌 옷들을 제3세계에 기부한다면서 입지도 못할 쓰레기 옷들을 마구 보내고, 그곳에서는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 버려져 처리하지 못해 소들이 뜯어먹고 있다. 원조와 개발을 한다면서 개발도상국의 환경을 마구 파괴하고 있다. 별로 그런 의도도 하지 않았고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지구에서 선진국과 최빈국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선진국은 최빈국을 의도치 않게 파괴하고 있다.


<외계+인 1부>에서는 외계인들이 지구인에게 악의를 가지거나 지구를 차지하려거나 해서 지구인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지구인에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들의 살길만 찾는 사이, 지구인들이 무참히 죽게 된다는 현실이 무서운 것이다.



AI와 인간

사실 SF영화에서는 로봇이나 AI가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느냐가 그 영화의 수준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외계+인 1부>에서 나오는 가드와 썬더는, 스타워즈의 C3PO와 R2D2의 관계와 닮았고, 그것의 진화형처럼 보인다.

인간형 로봇인 C3PO와 쓰레기통형(?) 로봇인 R2D2. 둘은 <외계+인 1부>의 가드 & 썬더와 달리 전투능력은 거의 없다.

가드는 전투형 로봇이고 썬더는 계산형 로봇이다. 둘은 서로 대화하고 회의하며 적절한 문제 해결방법을 찾아간다. 특히 썬더는 이길 확률을 계산해내는데, 이전의 AI에게선 별로 보지 못한 모습이다. 아마 알파고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알파고가 딥러닝으로 승리 예측을 통해 두는 수가 인간을 이겼으니까. 썬더의 딥러닝을 활용한 모습은 여러 군데에서 보여주는데, 가드의 인간형 모습일 때(김우빈 배우의 모습)로 변신할 때다. 가드는 시종일관 군인 같은 냉철한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썬더는 인간의 모습을 많이 보고 익힌 탓인지 인간을 더 인간답게 흉내 내는 방법을 안다. 썬더가 변신한 가드의 모습은 조금 과장된 성격이 프로그래밍되어있다.   


인간의 인격이나 성격, 혹은 자아가 과연 영혼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AI처럼 프로그래밍된 것인가. 이전 SF에서는 그것에 대해 아직까지도 진부하게 논하고 로봇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것 역시 식민지 지배에 대한 흑인 인종차별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흑인은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같은 영혼을 지닌 존재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혐오하고 배척했다. 그것이 그대로 로봇에게 투영된 것이다. 하지만 <외계+인 1부>에 등장하는 이안(최유리/김태리)은 그런 의문이나 혐오는 아예 가지지 않는다. 그것보다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에 집중한다.


덕분에 썬더는 여러 성격과 인격을 가진 가드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가 있다. 이 부분에서 재미있는 점은, 각자의 가드가 서로 개인화된 개체로써 서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 썬더는 하나인데,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AI의 입장에서는 인격이란 하나의 프로그래밍과 같은 것이고, 프로그램을 분리해서 값을 달리해 여러 개 실행시키면 그만이다. 마치 컴퓨터에서 한 번에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실행하듯. 아주 잠깐 나오는 장면이지만, 이 지점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자아'에 대한 개념을 말해준다. 또 그건 외계인이 지구인의 몸속에 갇히게 되는 것, 누가 진짜 자아를 가지게 되는지에 대한 것과도 연결된다.



무협과 SF의 대결

유치하다고 여길 수 있는 이 부분은 이미 미국의 코믹스에서 비슷하게 수도 없이 시도된 것들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만 해도 마법과 티베트 불교와 멀티버스를 섞고, <토르>도 북유럽 신화와 과학이 섞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 판타지인 무협과 SF가 결합한다고 해서 딱히 유치하다는 선입견을 가지면 안된다. 애초에 SF에 서양인들이 나오면 개연성이 있고, 동양인이 나오면 뭐든 유치하고 말이안되는걸로 생각되던 때가 오래지 않았다. 지금은 그걸 벗어나, 동양만의 재미를 점점 시도하고 넣고 있는 단계다. <외계+인 1부>는 전우치보다도 더 그런 매력을 잘 발산했다.


<외계+인 1부>에는 실제 도사들도 등장하지만, 외계인이 갇혀있는 인간들이 쓰는 힘들도 있다. 그 모습을 '요괴'라고 표현하면서 동양 요괴 설화와 도술, 외계인을 합친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도술이야말로 동양의 마법인데, 그것이 컨텐츠 적으로 SF와 결합되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최동훈 감독은 여기서 발랄한 개그와 유치한 개그, 때로는 심각한 장면을 쉴 새 없이 섞어가며 재미를 준다. 어차피 SF도 엄밀한 과학적 검증을 거쳐 영화에 소재로 쓰이기보단, 재미의 소재로만 차용하고 나머지는 상상이니까.


특히 영화의 연출상 고려시대와 현재가 계속 교차 편집되며 긴장을 고조시킨다. 고려시대에서 점점 강한 적과 한꺼번에 싸우게 되는데, 현대에서도 가드와 썬더가 우주선과 시가전을 하며 액션이 한꺼번에 절정을 달해 간다. 고려시대 무협이 절정에 달하는 것은 무협의 신비로운 도구들이 등장할 때다. 그것들은 쿵후 허슬이나 서유기를 보듯, SF가 아닌 도술 이어서만 가능한 재미를 보여준다.



에너지의 원천인 신검

<외계+인 1부>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단연 신검이다. 신검이라는 이름은 고려 시대 사람들이 붙인 이름으로, 검의 모양을 하고 있고 실제로 찔리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이 물건은 사실 가드와 썬더가 외계인을 잡아 가두고 시공간을 이동할 때 필요한 에너지다. 마블 시리즈로 생각하면 '인피니티 스톤'과 비슷한 물건. 하지만 여기에서도 동양적 사상이 돋보인다.


인피니티 스톤은 그 모양 자체로 보석의 형상을 하고 있거나 에너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자체가 중요한 물건처럼, 또 어떤 장식품처럼. 그러나 신검을 처음 찾은 고려인들은 거기에 박힌 보석을 빼내려 하다가 신검을 날리게 된다. 그 보석은 그저 신검의 일부 장식일 뿐인데. 실제로 빛나는 검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칼이라는 것은 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남을 해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불교에서도 칼에 대한 비유가 있는데 살인도 활인검(殺人刀 活人劍)이라는 이야기다. 칼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비유에서 온 말이다. 여기서도 신검은 큰 에너지를 지녔지만, 어째서인지 그것에 찔린 사람은 병든 몸이 낫는 기적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을 이동하며 탈옥한 외계인을 잡아 가두는데도 쓰이므로, 에너지- 즉 힘은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비유를 형상화한 것이 바로 칼이다. 이 영화에서는 신비의 에너지를 칼의 형태로 만들어, 그런 불교의 지혜를 담고 있다.




[이하 스포일러]


미처 전하지 못한 것들

현대 서울의 외계인과의 싸움에서, 승산이 없어진 가드는 딸 이안을 대피시키려 한다. 썬더는 이안을 데리고 피하는데, 이미 가드는 생명에너지가 없어서 썬더가 딥러닝을 통해 계산을 해도 이길 확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차 건널목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이안은 가서 구하자고 한다. 그때 이 대사가 등장한다. "인간의 감정은 놀랍구나"


하지만 이 대사는 이전의 SF에서 나온, '이길 확률이 없는데도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드는' 인간의 감정에 대해 로봇이 놀랍다고 말하는 장면이 아니다. 썬더는 이미 자신을 만든 '외계인'들을 잘 알고,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낼 만큼 감정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이 작은 아이가 이기려는 감정을 가지고 승부에 개입한 순간, 이길 확률이 4%, 7%, 10% 계속 올라가는 것을 보고 놀란 것이다. 마치 알파고가 이세돌의 '신의 한 수'에 이세돌이 이길 확률이 갑자기 확 올라가던 것처럼, 인간의 예측 못한 수에 승률이 달라지는 것을 본 것이다. 썬더는 계속해서 미래를 예측한다. 가드는 여기서 왜 승률이 올라가는지 묻는다. 썬더는, 탈옥자들과의 싸움에서 이안이 승리할 것이라는 미래를 예측한다.


그러나 <외계+인 1부>에 아쉬운 점이 없던 것은 아니다. 거의 완벽해 보이는 CG 중에서도 도시 상공 등 배경으로 비행물체가 내려오는 장면이나, 외계인이 착지하는 장면은 다른 장면에 비해 좀 조악해 보였다. 그리고 일부 대사들이 듣기 좋도록 발음하거나 편집한 건 좋지만, 여전히 대사나 단어를 듣기 힘든 점이 있었다. 캐릭터들이나 장소가 나올 때 자막을 띄워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내가 가장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 스토리나 편집이 아니라, 외계인의 컨셉이다. <외계+인 1부>에서 선한 가드 역을 맡고 있는 김우빈은 파란색의 올곧은 자세의 모습이고, 악한 역을 하고 있는 로봇은 붉은색에 구부정한 몸과 얼굴이다. 악한 역할이 기괴한 몸을 한 모습은 기존 미디어에서 보여주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이미지를 답습하고 있다. 그래서 요새는 할리우드에서도 악역 로봇이나 외계인이라 해도 멋있게 생긴 모습을 한 경우가 많다. <외계+인 1부>는 그런 지점이 조금 시대에 뒤떨어져 보였다.






<외계+인 1부>는 아직 절반만 보여준 상태다. 여기에서는 '무륵'이라는 캐릭터의 비밀과 각성에 중점을 잡았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이안과 무륵은 어떻게 될 것인지, 현재 서울에 있는 외계 우주선은 어떻게 될 것인지, 왜 밀본은 이안을 데리고 오기 전에도 존재했는지, 이 중대한 상황을 알게 될 외계인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지 더 보고 싶다. 도사들이 외계인과 어디까지 싸울 수 있는지 보고 싶다. 최동훈 감독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보고 싶다. <외계+인 2부>가 그 상상력에서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길 바란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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