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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Jul 18. 2022

<엘비스> 심장을 내어주고 사랑을 가져간 남자

대중음악 역사에는 위대한 퍼포머들이 있었다. BTS, 마이클 잭슨, 프레디 머큐리 등...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 위대한 퍼포머들의 시작이다. 영화 <엘비스>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어떻게 로큰롤의 제왕으로 위대한 퍼포머가 되었으며,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의 삶은 어땠는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노래하고 있다. 누구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이름은 들어보았겠지만, 패션이나 퍼포먼스를 코믹하게 소비한 미디어만 보고 자라서 '그게 뭐 그리 대단한가'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엘비스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영화가 재미있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또 상영시간은 2시간 반으로 얼마나 긴지.


하지만 <엘비스>는 아주 특별한 영화다. 다른 음악인 전기영화를 보면 대부분 히트곡이나 유명한 공연 위주로 만들어져서 팬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엘비스>에서도 히트곡이 나오지만 전체를 들려주기보단 중요 가사 위주고, 배경음악은 현대 가수들이 엘비스의 노래를 트리뷰트 한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전곡을 듣고 싶어하는 이들에겐 조금 아쉬울 수는 있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를 잘 모르는 젊은 층이 가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그의 삶을 따라가며 노래를 들으며 하늘로 올라가면, 분명 영화관을 나설 때는 어느덧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찾아 듣고 다리를 삐걱거리며 스텝을 밟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만든 바즈 루어만 감독은 음악과 춤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다. <로미오X줄리엣>, <물랑루즈>, <위대한 개츠비>등도 그렇지만 일단 데뷔작부터 볼룸댄서가 새로운 춤을 열망하는 영화 <댄싱히어로 (Strictly ballroom), 1992>다. 어릴 때부터 볼룸댄스 강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바즈 루어만은 스스로도 볼룸댄스를 익혀왔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대부분 음악과 춤이 함께하고, 마치 뮤지컬이나 댄스 플로어를 보는 듯 화려함이 가득하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가 최고로 사랑한 음악인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서 '엘비스 프레슬리는 이렇게 너무나 멋진 사람이야!'를 외치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톰 파커

영화는 처음부터 한 늙은이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톰 파커 대령(톰 행크스)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이 남자는 엘비스 프레슬리(오스틴 버틀러)의 매니저였다. 자신이 엘비스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치 항변하는 듯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대부분 톰 파커 대령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이 방식은 관찰되는 대상에 대한 신비함과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대표적으로 이런 시점을 가진 작품은 <셜록 홈즈>가 있다. <셜록 홈즈>는 군의관이었던 왓슨이 셜록홈즈라는 인물을 옆에서 살펴보며 묘사하는 방식으로 되어있어, 그의 추리력이나 기행들이 독특한 매력으로 보이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엘비스>에서 등장하는 톰 파커 대령은 악역이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돈을 갈취하고 무리하게 공연을 시키며, 그 돈을 도박에 탕진했다고 처음부터 대놓고 나온다. 그러나 톰 파커 대령은 그 순간에도, 엘비스 프레슬리를 죽인 것은 자기가 아니라고 계속 항변한다. 더군다나,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든 것은 바로 나라는 말과 함께. 이 영화 전체는 톰 파커 대령의 기묘한 거짓말과 기만으로 나레이션이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보이는 실제 엘비스 프레슬리와 톰 파커 대령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지 교차된다. 여기에 재미있는 점은 톰 파커 대령의 나래이션과 행동에 맞춰 엘비스 프레슬리도 나레이션을 한다. 바로 그의 노래로. 바즈 루어만 감독은 곡 전체를 넣는 대신, 곡 가사가 영화 내용과 맞아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톰 파커 대령이 나레이션을 하며 자기 항변을 하면, 엘비스 프레슬리가 노래로 응답을 한다.


이 구성은 마치 톰 파커 대령이 '음악의 신'을 구슬리는 악마로 보이게 한다. 모든 사악한 것들은 톰 파커 대령이 짊어지게 하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신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퍼포먼스

엘비스 프레슬리의 독특한 시그니쳐인 골반과 몸을 떠는 춤, 무릎을 굽히고 양 옆으로 떠는 개다리춤은 그의 노래 'Hound Dog'으로도 유명한데, 영화에선 그 부분을 엘비스의 어린 시절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 장면과 연결시켰다. 그 떨림과 동작은 신에게 계시를 받은 느낌이고, 엘비스는 공연에서 그 떨림을 재현해 관객에게 그 부흥회에서 있었던 열정과 신과 하나 되는 감격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당시에 조용하고 정적인 컨트리음악을 하던 공연에서 그런 천박한 퍼포먼스는 너무나 파격적인 것이었다.


왜 그 동작이 여성 관객들을 미치게 만들었을까. 1950년 미국은 상당히 보수적인 상태였다. 전쟁이 막 끝나기도 했고, 흑인은 인종분리정책으로 차별받던 시대였으며 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갇혀있었다. 그러던 여성들에게 잘생긴 어린 남자가 마초적인 목소리로 노래하며 골반을 흔들어대니 그 금단의 쾌락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노래도 노래지만, 영화 <엘비스>는 그의 퍼포먼스에 더 주목한다.

1973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실제 공연 영상. 영화에서도 이런 편집이 많이 나온다.

영화는 전반에 걸쳐 굉장히 화려한 CG와 카메라 워킹을 넣어 편집했는데, 그것은 그저 엘비스의 감성을 표현하고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장치인 것만은 아니다. 실제 엘비스가 데뷔하고 주로 활동했던 시기는 1950년대로, 흑백 TV 시대였다. 당연히 방송 제제도 있었으며 무대도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관객과 만나는 공연은 훨씬 화려하고 극적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먼 타국에서, 먼 미래에서 바라본 엘비스는 그저 흑백 화면 속에서 둥가 둥가 개다리춤을 추는 가수다. 하지만 바즈 루어만은 화려한 편집을 통해, 퍼포머로써 그의 무대가 실제로 얼마나 위대했었는가를 이 영화를 통해서 전해주고 있다. 공연 영상뿐 아니라, 영화 전체가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혼이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가 하늘을 날며 공연들을 구경시켜주고, 같이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즐기는 느낌을 준다. 이것이 영화 <엘비스>의 가장 특별한 점이다.


그는 생전 공연에서만 신에게 부여받은 그 능력으로 관객을 미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아직도 영혼이 남아 우리를 미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처럼.



[이하 스포일러 포함]



포레스트 검프와 엘비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같이 감상하면 좋은 영화가 있는데, 바로 <포레스트 검프>다. 뜬금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이 영화와 <포레스트 검프>의 접점은 많다. <포레스트 검프>는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로 1994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만들었으며 <펄프픽션>, <쇼생크 탈출>, <라이온 킹>과 아카데미에서 맞붙어서 6개 부분을 수상한 명작 영화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검프가 미국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과 함께 그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이야기인데, 정말 미국 역사의 온갖 곳에 포레스트 검프가 등장하는 것이 이 영화의 재미다.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민박집을 했는데, 그때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 <엘비스>에서 톰 파커 대령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공연을 보기 전이다. 정말 우습게도, 포레스트 검프가 그 유명한 엘비스의 개다리춤을 전수한 것으로 나온다. 포레스트 검프는 다리 교정기를 차고 있어서 삐걱거리며 엘비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췄는데, 그게 엘비스의 동작이 된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뒤에도 수없이 나오는 <포레스트 검프> 영화의 미국 역사 개그다.


하지만 영화 <엘비스>에서도 시대가 지나면서 중요한 미국의 사건들이 지나가는데 그 사건들은 엘비스의 멘탈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데 같은 시대를 살았던 <포레스트 검프>에는 아예 포레스트 검프가 그 사건들에 무심결에 개입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포레스트 검프는 톰 행크스가 연기했는데, 톰 행크스는 <엘비스> 영화에서는 매니저로, <포레스트 검프>를 통해서는 미국의 사건들로 그에게 영향을 주는 셈.


또한 <포레스트 검프> 역시 검프 역을 한 톰 행크스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데, 실제 미국의 역사나 그가 사랑한 제니의 슬프고 어두운 현실과 달리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말로 설명하고 그건 아이러니함을 더해 묘한 감성을 준다. 영화 <엘비스>에서 톰 파커 대령 역을 한 톰 행크스의 목소리가, 실제 엘비스의 모습과 달리 자신을 변호하려 하는 관객을 기만하는 나레이션과 대비된다. 또한 포레스트 검프는 '모든 미국 역사에 있던 사람'이라는 얘기를 스스로 하면서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을 코웃음 치게 만들지만, 톰 파커 대령 역시 자신이 '엘비스의 모든 역사에 내가 함께 했다'라고 말한다.


영화 <엘비스>는 포레스트 검프의 흑화 된 버전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두 영화의 연관성은 재미있다.



심장을 내어주고 사랑을 가져간 남자

내내 톰 파커 대령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엘비스는 그와 결별하려고 한다. 하지만 톰 파커 대령은 꼼꼼하게 기록해놓은 장부로 온갖 빚을 지게 만들어, 엘비스를 옥죄어온다. 영화가 끝나갈 때 까지도, 엘비스를 죽인 것은 톰 파커 대령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톰 파커 대령은 자신이 죽인 게 아니라고 말한다. 엘비스가 죽은 것은 팬들의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놓고 그만둘 수도 있었다. 설령 파산하더라도 엘비스 정도면 다시 밑에서부터 일어설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로큰롤의 황제로,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던 그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이 사는 것보다 팬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무대 위에서 사는 것을 택했다. 영화에서 그것을 엘비스가 선택한 것으로 보여준다. 다시 톰 파커 대령을 부르고, 인터내셔널 호텔 무대에 서며, 무수한 국내 투어를 하는 것으로. 그는 인생의 마지막을 불꽃놀이처럼 수놓았다. 실제 엘비스는 약물 과다로 인한 심장마비로 나오지만, 그것이 그저 마약과 쾌락에 취한 것이라기 보단 무대에 서기 위한 것으로 그렸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그는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고 팬들의 사랑을 가져갔다. 두 발이 없는 새가 되어, 두 번 다시 땅에 내려앉지 않을 것처럼 날았다. 모든 위대한 퍼포머들의 시작, 로큰롤의 황제, 흑인음악을 한 백인, 위대한 수식어들을 아무리 붙여봐야 그의 이름만큼 화려할 수는 없다. 영화 처음과 끝을 수놓는 그 화려한 디자인들도, 오로지 그의 이름만을 빛나게 수식하는 것이리라.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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