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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Feb 12. 2021

설을 구정이라 부르면 안 되는 이유

민족의 일제, 군부독재 저항 역사가 들어있는 단어 '설'

단어 하나에도 사람에게 주는 뉘앙스가 있다.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면서 민족말살정책으로 여러 가지를 한 것 중에, 음력을 없애고 자신들이 쓰는 태양력을 강조한 것이있다. 그래서 음력설을 명절로 지내던 풍습을 없애고, 오로지 양력설만 강조했다. 양력설에는 10일간의 휴일을 주고 음력설에는 휴일도 없이 일을 시키는 식이었다.


그때부터 신정 구정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이 말을 일제가 강요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일제가 만든 단어이고 들여와 쓴 것은 맞다. 음력설을 구정(舊正)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일본에서 양력으로 바꿀 때 자신들이 만든 말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일제의 것이 '새로운 것' '좋은 것',우리가 쓰던 것을 '낡은 것' '나쁜 것'으로 인식하기 딱 좋은 단어였다. 그리고  달력이야 태양력으로 바꾸면 그만이지만, 명절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은가. 우리가 영어를 많이 쓰게 된다고 해도 한국말을 모국어로 쓰듯, 가족이 모여 명절을 지내던 설을 스스로가 아닌 일제에 의해 바꾼다는 건 민족의 정신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설을 쇠러 가는 조선인들이나 방앗간 등을 표적으로 해서 탄압했다.


여기서 정말 아이러니한 건, 이게 일제에서 끝이 나지 않았다는 거다. 해방 이후 이승만은 아예 국가 휴일 목록에서 크리스마스를 넣는 데도 불구하고 민족의 수치라며 음력설을 뺐다. 그 이후로 음력설에 대한 탄압이 있었는데, 이렇게 오래 탄압이 있었다는 건 휴일로 지정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음력설을 지키려 노력해왔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 때도 방앗간 단속을 할 정도로 음력설을 탄압했다. 왜 설을 그토록 탄압했을까. 이 탄압은 전두환 때까지 이어지다, 민주정의당의 발표 이후 1985년 음력 1월 1일 '민속의 날'로 휴일 지정되었다. 이름을 굳이 빼앗아 넣지 않으려던 것을 6월 항쟁 이후 신군부가 무너지고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 다음 정부부터 정식으로 '설'이라는 명칭과 함께 추석과 같이 3일 휴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구정'이이라는 단어가 안 좋은 의미를 줄 수 있다는 합의하에 1월 1일을 '신정'이 아닌 '새해 첫날' 음력 1월 1일을 '설'로 명칭을 공식 지정하게 되었고, 일제청산의 의미를 담았는지 IMF의 영향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김대중 정부 때 1월 1일의 휴일을 축소했다. 즉, 우리가 설을 '민족의 명절, 설'이라고 되찾고 부르게 된 것이 40년도 안되었다는 것이다.


군부독재와 일제가 그토록 한결같이 왜 '설'의 말살에 집착했을까. 그것은 모를 일이지만 '설'은 단순히 '구시대 전통에 집착하는 명절'로 이 아니라, 마치 한글처럼 일제가 말살하려 했지만 결국 말살시키지 못하고 지켜낸 우리의 문화중 하나인 셈이다. '설'이라는 말과 날짜에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저항정신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일제와 군부독재의 잔재인 '구정'이라는 단어보다는 '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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