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시작한다는 것
알고도 힘든 '시작'이라는 무게
섣달그믐 저녁부터 지금까지, 일어나 밥 먹고 다시 잠들고를 계속 반복했다. 뭐에 지쳤는지 몸은 피곤했고 하지 않던 루틴의 운동을 해서인지 군데군데 알도 배겼으며 마침 일도 좀 없는 상태였다. 명절이라 쉰다고 돌아다닐 정신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잠이라도 푹 자서 몸에 기운을 충전했으면 다행인 일이다. 지친 슬리퍼를 발에 꿰고, 걸음을 옮겨 겨우 나가 먹을 것을 손에 들고 돌아와 먹고 고단함에 다시 눕고. 설은 그렇게 흘러갔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 무언가를 쫒고 쫓기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꿈이었는데, 그 상황상황들에서 기분이 좋았다. 특히 강원도 쪽에 갔다가 시간에 맞추기 위해 패러글라이딩으로 약속 장소에 가는 꿈은, 실제로 그런 건 무서워서 탈 엄두도 못 내면서 재미있게 활강을 했다. 수학여행 같은 단체여행에 뒤쳐져서 쫓아가는 내용이었는데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쓰고 보니,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다. 재수할 때, 나도 학교 준비하려고 학원을 간간히 나가고 있었지만 학원 MT를 같이 가려다가 할머니의 제지로 같이 가는 승합차에서 끌어내려진 적 있었다. 돈도 없는데 네가 거길 왜 가냐는 할머니의 성화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집에 돌아온 나는 내내 삐져있었고 할머니는 미안해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다시 갈 수 있으면 가라고 하시면서 차비를 주셨다. 나는 학원에서 어디로 갔는지 알지도 못한 채 쫓아가기로 했다. 뒤쳐진 단체여행을 혼자 즐겁게 쫓아간 것은 그때였던 것 같다.
삐삐도 거의 쓰지 않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연락할 방도도 없어서, 원장님 댁에 전화를 걸어서 겨우 강원도 바닷가 어느 해수욕장으로 간다는 것만 듣고 무작정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슬리퍼를 끌며 버스를 탔다.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 해수욕장에 일행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해 해수욕장을 죽 가로지르며 찾아다니다, 결국 옆에 항구에 해 질 녘까지 걸어갔다. 숙소비용도 없이 갈 차비만 들고 간 상태라, 나는 '못 찾으면 여름이니까 바닷가에서 자면 되겠지'같은 심정으로 계속 걸어 다녔다.
그러다 항구 부둣가 끝에서, 낚시하고 있는 학원 강사님과 원장님의 실루엣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렇게 들어와서 민박집에서 친구와 후배들을 만났을 때 새삼 얼마나 기뻤는지. 이렇게 무작정 찾아가서 결국 찾아낸 내가 대견하고 뿌듯하기도 해서 그날 술을 엄청 마셨다. 그러면서 느낀 게, 무엇이든 일단 하면 뭐든 된다는 것이다.
시작하면 뭐든 된다는 걸 알지만.. 요새는 새로운 것을 하는데에 망설임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일단 생각한 것들을 느리더라도, 게으르더라도, 조금씩 해보자고 다시 마음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