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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Mar 18. 2021

과학영재반의 추억

누구 맘대로영재래

중학교를 들어가며 반배치고사를 쳤고, 나는 우연치않게 전교 1등을 했다. (아직도 미스테리) 당시 학교에서는 전교 1등부터 20등까지를 골라 특별활동을 '과학영재반'에 강제로 넣었다. 난 당연히 미술반일 줄 알았는데... 하며 CA시간마다 과학실로 향했다.

원래도 과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중학교에서 처음 가 본 과학실은 신비의 공간이었다. 어디선가 알코올 냄새나 약품 냄새가 나기도 하고, 신기한 비커와 플라스크 유리관 등이 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각종 곤충과 동물 표본들도 좋았고, 과학실 특유의 나무 스툴도 좋았다. 그중 제일 재미있는 건 성냥으로 알코올램프를 켜고 끄는 것이었는데 그 팔각형의 성냥갑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친척형이 가르쳐 준 위헌천만 한 장난인 '성냥불 입 안에 넣어서 끄기'를 친구들 앞에서 보여주고 가르쳐주다가, 나중에는 성냥불 3개를 한 번에 입안에 넣고 끄는 것 까지 성공했다. 과학영재반 아이들은 나한테 몹쓸 장난을 배워서 성냥을 입으로 끄는 장난을 자주 했다. 한 번은 영어 선생님이 내 입에서 탄내가 나자 '너 담배 피냐'라고 물었고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꿀밤을 맞았다.

나는 만화를 잘 그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공부는 만화를 그리기 위한 자료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대부분의 시간은 만화를 그렸다. 하지만 거기는 과학, 수학경시대회를 준비하거나 과학고, 외고를 준비하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특별활동이었던 거였다. 뭔가 재미있는 실험하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문제집 선행 학습하는 거. 당연히 나는 재미도 없고 그냥저냥이 됐다. 솔직히 방과 후에도 공부하고 예습 복습하는 아이들과, 수업시간에도 만화 그리는데 열중인 내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과학에 대해 흥미 있는 실험이나 연구를 하는 특별활동이었으면 좋았을 걸.

1학년 말에 한번 더 전교 1등을 하긴 했지만, 모의고사 등 학업 성취도가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2학년에도 자연스레 과학영재반일 줄 알고 과학실로 들어가자 출석에 내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안 부르셨다고 하자, 선생님은 머뭇거리시더니 내가 더 이상 영재반이 아니라 했다. 자기들 멋대로 영재라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아니래. 난 뭔가 창피하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한 마음으로 빠르게 과학실을 나섰다. 그리고 내 자리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미술반으로.


그리고 나는 미술부 부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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