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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Feb 13. 2023

작가 지망생들의 기숙사, 브런치

학교도 없이 기숙사만 있는 기숙사가 있다. 그런데 기숙사에 입소하려면 시험을 쳐야 한다. 그곳에서는 서로를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밖에서 볼 때, 이미 기숙사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무언가 해낸 것 같아 동경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건물 디자인도 좋고, 인기 작가들도 나온다. 유명인도 몇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곳의 이름은 '작가 지망생 기숙사', 브런치.


그런데 사실 기숙사에 들어가 보면 가끔 '작가님~'하며 들려오는 안내 방송과, 몇 달에 한번씩 복도 게시판에 붙는 공모전 소식이 전부다. 각자 하얗게 칠해진 정갈한 방 안에 앉아, 옆 방에 누가 무슨 글을 쓰는지 크게 관심 가지지 않고 자신의 글을 쓰기 바쁘다. 자기 방 문 앞에 글을 걸어두면, 누군가 와서 읽는다고 한다. 빼꼼 문 밖을 보면 글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라이킷 도장이 콩콩 몇 개 찍혀있곤 한다. 처음에는 그 몇 안 되는 도장이 고마워서 그 이름을 찾아 글을 읽고 그 사람의 글에도 도장을 찍어준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어떤 이들은 본인의 글에 도장을 많이 받기 위해 글도 읽지 않고 마구 복도를 뛰어다니며 도장을 찍고 있음을. 사실 그마저도, 이제 막 입학한 신입 입소자에겐 대형 플랫폼 블로그에 비하면 초라한 도장이라 실망의 나날이 길어진다. 실제 독자들과 팬이 많이 생기기 까지는 시간도 운도 필요하다.


가끔 복도에 출판사 관계자가 모른 척 글들을 읽고 간다더라, 그냥 블로그보다 픽업되어 갈 확률이 높다더라, 라는 소문을 듣고 그래도 희망을 가져본다. 그곳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으면 블로거가 아니라 벌써부터 작가가 된 기분이니까. 또한 기숙사 생도들에게 제일 큰 연례행사인 <브런치북 공모전>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어오면 모두가 들뜬다. 하지만 이내, 몇천 권의 브런치북이 응모되는 걸 보면 '내 책을 제대로 읽어주기나 할까'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사실 소설이 아닌 비문학, 에세이 공모전으로는 제일 큰 규모이기도 해서, 그 방면으로 책을 쓰고 싶은 '이름이 없는 작가'입장에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이 브런치 기숙사는 생도들에게 작가님이라 부르지만, 사실 여긴 브런치북 공모전을 준비하는 거대한 작가지망생 기숙사나 다름이 없다. 공모전에서 떨어지면 글을 모아 스스로 투고하는 수밖에 없다. 브런치북 공모전에 당선된 사람들이 있듯이, 이곳에서 글을 써서 투고로 출간에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실패한 대다수의 생도들이 조회수나 덧글이 정말 나오지 않는 이 기숙사에서 조그만 희망을 가지고 죽치고 앉아있다는 걸 어느 날 느끼면, 그 하얗고 정갈한 방들과 복도에 늘어선 글들이 그렇게 슬프게 다가올 수가 없다. 의욕을 가지고 꽤나 멋진 글을 쓰던 옆방에서는, 언젠가부터 타자 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어떤 코칭이나 매칭도 없다. 학교도 없다. 1년에 한 번 몇 명을 위해서 열리는 시장에 안 팔리면 각자도생인 기숙사. 그렇다고 나름 정갈하게 모아놓은 글들로 수익을 얻을 방법도 없다. 광고도 못 붙이고, 유료 연재도 못하기 때문이다. 시험까지 쳐서 글쓰는 사람들을 몇만명이나 입소시켜놓고, 수익창출을 못하고 있으니 기숙사 건물주 카카오도 기숙사 운영을 소홀히 하게 되지. 기숙사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와서 '여느 곳보다 양질의 다양한' 글을 볼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아닌가? 아니. 기숙사 운영자는 자신의 기숙사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보여주기 바쁘다. 그러다 가끔, 운이 좋으면 운영자가 돌아다니며 몇 글을 골라 기숙사 건물주가 운영하는 신문 지면 귀퉁이에 잠깐 실어준다. 조회수가 폭발하면, 내 글이 좋다는 착각에 빠진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폭락하는 그래프를 보면 다시 고개를 떨구게 되지만. 솔직히 입소생들을 신경써준다면, 브런치북 공모전에서 떨어진 사람들에게 '왜 선택되지 않았는지' 짤막한 한줄이라도 말해주면 좋겠다. 그거 한 줄 써줄 시간도 없다면, 내 브런치북도 신경써서 안읽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 같다. 몇천명에게 하는 뭉뚱그린 칭찬 심사평은 허울좋은 토닥거림 이상의 뭔가는 없으니까.


기숙사에 들어오며 얻은 것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나마 글을 꾸준히 써서 올리게 되는 것, 나와 같은 작가지망생이 넘치고 넘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리고 꽤 유용하게 쓰고 있는 맞춤법 봇이다.


오늘도 하얀 브런치 기숙사 복도에는 힘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경쟁자이자 동지인 기숙사 생도들의 한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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