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해피하고 스펙터클 하게 개작해서 논란도 있었지만 동시에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초등학생이던 내가 돈을 모아 OST를 산 것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극장에 가서 '만화영화'를 보았다. <인어공주>는 77년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던 디즈니의 새로운 성공이었다. 애니메이션도 전 세계적인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알렸고, 이후 디즈니 르네상스라 불리는 <미녀와 야수>, <알리딘>, <라이온킹>등의 성공으로 디즈니는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세계 최강자로 자리 잡았다. 디즈니는 미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표준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인어공주>는 당시를 경험한 팬들에게도, 미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로도, 영화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빨간 머리의 인어공주인 '에리얼'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즉 흑인인 할리 베일리로 캐스팅되며 실사 영화로 만들어졌다. 할리 베일리는 흑인인 것은 물론이고 외모도 일반적으로 '예쁜'얼굴이 아니어서 굉장한 논란에 휩싸였다. 물고기나 프레데터를 닮았다며 조롱하기도 하고, 또 하나의 진저(Ginger) 지우기가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비욘세 노래를 커버를 하면서 등장한 할리 베일리는 이 캐스팅에서도 비욘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디즈니는 그 모든 논란을 뒤로하고, 이것이 새로운 여성상을 대표하는 동화가 될 것이라 자부했다.
원작에서 에리얼의 가치
80년대 후반은 세계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 보수적인 시대였다. 68 혁명 이후 히피들을 위시한 진보적인 운동들이 많은 곳에서 일어났지만, 여전히 여성을 차별하고 성소수자는 에이즈의 창궐과 함께 핍박받았다. 디즈니는 전통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회사로 유명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나누고, 아이들에게 아이다움을 강조하는 동화를 만들었다. 피노키오, 피터팬, 신데렐라, 백설공주 등을 생각하면 쉽다. 이들 동화는 원작 동화보다 훨씬 부드럽고 행복한 이야기로 개작되었다.
에리얼은 북유럽 덴마크의 동화라는 점을 감안했어도, 빨간 머리인 진저가 공주로 나오는 것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진저는 유럽에서 '하얀 흑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항상 천대받고 차별받아왔다. 못생기고, 괴짜에, 말을 듣지 않는 이미지다. 빨간 머리 앤, 삐삐 롱스타킹부터 해리포터의 론 까지. 그리고 미국 코믹스에서 여캐가 빨간 머리를 한 경우들이 있는데, 대부분 진취적이거나 남성에게 절대 지지 않는, 혹은 성적인 여성을 그렇게 표현한다. 스파이더맨의 MJ, 플래시의 아이리스, 어벤저스의 블랙 위도우, 엑스맨의 피닉스 등이 그렇다. 실제로 서구권에서 빨간 머리는 '여성은 성을 밝히고 남성은 성적매력이 없는' 편견이 있으며 진저가 아일랜드인에게 많다 보니, 아일랜드인에 대한 차별과 엮여있다. 진저 차별의 역사를 잘 모르는 한국에서는 그저 '예쁜 빨간 머리 공주가 성공했네'로 보이지만, 에리얼은 진저 아이들의 희망과도 같은 존재인 셈이다.
또한 극 중 인어들의 왕인 트리튼은 영락없는 기독교의 신 모습을 하고 있는데, 굉장히 가부장적이다. 항상 딸들을 모아 딸들의 노래를 자랑하려고 음악회를 여는 것이 취미. 에리얼은 그런 가부장적 아버지와 보수적인 인어사회에 대해 반기를 드는 인물이고, 또한 자신의 몸이 갈 수 없는 세상을 동경하고 몸을 바꾸어서라도 다른 세상으로 가려한다는 점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메시지와 맞닿아있다. 실제로 트리튼과 적대하는 마녀 우르술라는 드랙퀸(여장남자)으로 유명한 '디바인'이 모티브다.
거기에 적극적으로 왕자를 구하고, 마녀와 맞서 싸우는 모습은 그동안 디즈니에서 볼 수 없었던 공주의 모습이다. 그 모습에 가부장적이던 트리튼도 딸을 이해하고, 인어와 인간의 화합을 이끌어낸다. 원작의 인어공주는 사랑하려 하나 사랑이 덧없이 끝나버리고 물거품이 되지만, 디즈니의 인어공주는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구한다. 이미 89년작의 에리얼은 이 시대에서 보더라도, 충분히 진취적인 여성이다. 또천재 애니메이터인 글렌 킨의 훌륭한 애니메이션이 에리얼의 매력에 한몫하기도 했다. 물론, 주 스토리가 '인간이 되기 위해 왕자의 키스를 이용한다'는 얘기긴 하지만.
유지할 것인가, 바꿀 것인가
그렇다면 실사 영화 <인어공주>의 문제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논란을 삼듯이 '못생긴 흑인'이 감히 디즈니 세계관에서 역대급으로 예쁜 캐릭터인 '에리얼'을 맡은 것이 문제일까. 사실 <인어공주>도 그렇지만 최근 계속되는 디즈니 실사화의 가장 큰 문제는, 애니메이션에서 무엇을 유지하고 바꿀 것인지에 대한 큰 고민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인어공주>에서는 그 모든 고민을 '어떻게 하면 흑인 인어와 사랑에 빠지는 게 자연스러울까'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우선 많은 동물들이 주인공들과 교류하고 심지어 인간처럼 말을 한다. 그것을 실사로 바꾸면 정말 아름다울까? 이전에 에이미 애덤스가 주연한 <마법에 걸린 사랑>은 디즈니 풍의 공주가 실제로는 얼마나 우습게 보이는지 그린 로맨틱 코미디 물이 있다. 여기에서 공주는 비둘기와 쥐를 불러서 애니메이션처럼 청소하는데, 솔직히 끔찍해 보인다. 동물들을 어디까지 진짜처럼 만들 것인가? 꼭 진짜 동물들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꼭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가져가야 하나? 이런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기에, 디즈니 실사영화의 동물들은 다 불쾌한 골짜기에 걸쳐져 있다.
<인어공주>도 예외는 아니다. 세바스찬의 게눈과 플라운더의 뻐끔이는 너무했다. <Under the sea>에서 나오는 해양생물들은 해산물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소름 돋을 정도로 끔찍했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에서 바닷속이 정말 환상적으로 표현되었던 걸 생각하면, 왜 저렇게 생긴 생물들을 골라서 만들었나 싶다.
또, 이야기의 큰 틀에서 '여성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들'과 '흑인 캐스팅'과 관련된 부분을 다 바꾸거나 삭제했다. 일단 이야기 초반 노래인 '트리튼의 딸들'이 없어졌다. 트리튼이 딸들을 자랑하려고 음악회를 여는 설정은 사실 요새 본다면 '뭐 저런 아빠가 다 있나'라며 기분 나쁘게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 음악회 설정 때문에 트리튼이 가부장적이라는 것, 에리얼이 가장 예쁘고 노래를 잘한다는 것, 에리얼이 아버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 세바스찬이 왕실작곡가라는 것 등 모든 설정이 한 번에 들어간 시퀀스다.
그런데 이 부분을 그냥 '에리얼을 흑인으로 캐스팅한 설정'에 타당성을 주고 싶어서인지, 각 대륙의 딸들을 불러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바뀌었다. 음악회도 없으므로 세바스찬은 그저 왕의 비서 정도로만 나온다. 이렇게 바꾸고 나니,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에리얼의 이미지는 없어지고 그냥 따듯한 아버지가 주최하는 가족모임을 까먹은 막내딸이 되었다. 또한, 알고보면 세바스찬이 왕실작곡가라는 게 인어공주 이야기에 중요한 부분인데 그 설정이 없어져서 전체적으로 심심해졌다. 아카데미 주제가상에 빛나는 <Under the sea>에서의 화려하게 모든 해양생물들이 악기가 되어 연주하고 춤추는 장면, 왕자에게 키스하라고 모든 동물들이 나서서 최면을 거는 <Kiss the girl>은 그가 트리튼의 왕실작곡가라서 할 수 있는 퍼포먼스였다. 역시 영화에서는 왕실작곡가가 아니므로 왜 그가 모든 해양생물들과 노래를 멋들어지게 하는지 이유가 별로 없다. 뭐 뮤지컬이니까 아무 때나 노래하고 춤춰도 상관없는 거겠지만, 뮤지컬을 보지 않았던 관객도 <인어공주>가 끌어들인 데에는 그런 개연성도 한몫한다. 심지어 영화에서 <Kiss the girl>은 동원된 동물이 너무 적어서 아름답기보단 초라했다.
그리고 이 감독은 <Under the sea>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노래는 바다 위로 올라가려는 에리얼에게, 세바스찬이 '바다 밑이 네 집이고, 더 예쁘고 아름답고 좋다'라며 설득하는 노래다. 그래서 노래하는 내내, 사실 에리얼은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그러다 세바스찬은 자신의 음악적 재능에 취해서 나중에 에리얼이 도망가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게 이 노래의 스토리다. 그런데 영화판에서는 에리얼이 세바스찬과 즐겁게 노래를 같이 하지 않은가? 이건 분명 조금이라도 더 할리 베일리의 노래를 넣으려는 음모가 아닐까?
그리고 트리튼은 바다의 왕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최근 바닷속 세상을 다룬 영화들, <아쿠아맨>, <블랙팬서:와칸다 포에버>, <아바타: 물의 길>에 나오는 모습을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인어공주>에 나오는 인어세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초반과 마지막에 잠깐 나오는 십 수 명의 인어들 말고는 전부 트리튼과 딸들밖에 나오지 않는다. 트리튼이 앉은 옥좌는 왜 그리도 초라해 보이던지. 애니메이션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스펙터클이 더 적다는 것이,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못 그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또한 목소리를 잃은 에리얼이 어떻게 왕자의 키스를 얻느냐고 하자 "바디 랭귀지를 해!"라는 우르술라의 말처럼, 이 이야기 전체는 에리얼의 노래도 중요하지만 에리얼의 외모도 중요하다. 단지 3일 만에, 자신이 찾는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키스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매력이 넘쳐야 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에는 트리튼의 딸들 중에서 가장 예쁘다는 설정이다. 사실 배우가 예쁘지 않다면, 예쁘게 보일만큼 연기를 잘해야 한다. 그러나 에리얼을 맡은 할리 베일리의 연기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노래에 감정을 담아서 잘 불렀다는 평이 있지만, 89년작 애니메이션 노래를 거의 그대로 커버한 것에 불과하다. 노래 중간에 자신만의 감정을 담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정말 심각할 정도로 못 불렀다. 후반부 목소리를 잃고서는 표정과 몸 연기만으로 감정전달을 해야 했는데, 그렇게 학예회 같은 연기는 뭐란 말인가.
영화 <인어공주>에서는 새롭게 두 노래가 들어갔는데, 왕자인 에릭의 솔로곡과 에리얼이 처음 인간세상에 와서 신기해하는 감정을 담은 노래다. 노래 자체의 퀄리티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노래를 과연 이렇게 밖에 못 만들었는가 싶다. 예를 들어 영화 <알라딘>에서는 새롭게 자스민의 솔로곡을 추가했는데, 그 노래가 자스민의 정체성과 고통을 단번에 느낄 수 있는, 거기에 여성서사까지 들어가서 더욱더 감동적인 곡이었다. 그런데 에릭은 '흑인 인어공주 캐스팅'때문에 본인도 졸지에 영국 왕자에서 카리브해 섬나라 흑인 왕국의 백인 입양아로 설정이 바뀌었음에도, 자신의 처지나 정체성등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저 사랑만 외치는 바보로 만들어놨다. 설정이 그렇게 바뀌었으면 더 에릭에게 재미있는 스토리를 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안 그래도 평범하게 생긴 왕자가 너무 평면적이다 보니, 매력이 정말 반감한다.
그리고 흑인 인어공주에, 배경도 카리브해에 흑인 왕국인데 어째서 에릭은 백인이어야만 했을까? 캐스팅에서 이 지점이 많이 이상하다. 본래의 '다양성'을 추구한 의도대로라면, 흑인 왕자면 이야기가 아주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에릭을 백인으로 유지하면서 설정도 복잡하게 추가되고, 백인 왕자가 흑인 원주민을 결혼으로 구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는 이전의 <늑대와 춤을>, <포카혼타스>부터 최근의 <아바타>까지 이어지는, 백인 남성이 원주민과 동화되어 그들을 구하는 백인의 구원서사와 같다. 즉, 침략과 식민지화를 물타기하는데 쓰인 이야기 구조와 같아졌다. 아마, 디즈니는 이렇게까지 생각은 못하고 그저 '공주 이야기는 여아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많이 본다' '흑인 왕자보단 백인 왕자가 인기가 더 많다'라는 논리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돈의 논리에 불과하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에리얼이 미스캐스팅이라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에릭이 미스캐스팅이다.
이 영화는 흑인 캐스팅을 위해서 기존의 스토리에서 바꿔야만 했던 부분은 싹 바꾸고, 고루한 옛 동화의 기본 틀은 그대로 가져가버렸다. 애초에 89년 작품이 촘촘하게 개연성이 짜여있는 작품이라, 이런 식으로 하면 당연히 비어 보이고 개연성이 부족해진다. 할리 베일리는 자신이 드레드락으로 나온다면서 흑인의 정체성이 어쩌구 중요하게 이야기하더니 영화에선 정작 1/4 정도만 드레드락이고 나머진 그냥 찰랑거리는 곱슬머리다. 거기에 붉은 머리는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인어공주의 이 헤어스타일은 영화를 만든 제작진들이 인어공주를 어떻게 바라보고 만들었는지를 대변한다.
디즈니가 PC를 이용하는 방식
디즈니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정치적 중립성(PC)을 적극 도입하기 시작한다. 인수한 마블에서 주요 히어로들을 흑인이나 여성으로 교체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 때도 흑인, 성소수자, 여성을 적극적으로 넣기 시작한다. 영화의 산업적인 면으로 볼 때, 그런 소수자 배우들이 활약할 기회를 얻는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위해서도, PC를 넣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디즈니는 옛날 동화를 자신들의 멋대로 '기독교적이고 보수 교육적인'동화로 만드는 데 일조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욱여넣기 식으로 PC를 넣고 있다. 원래 백인들의 동화였던 이야기에서 캐스팅만 흑인으로, 성소수자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건 <겟 아웃 - 정치적 중립성이란 무엇인가>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PC가 아니라 블랙 워싱이다. 시대에 맞게 변화된 동화를 만들려면 사실 동화의 이야기 구조가 전복되어야 하는 게 많다. 디즈니의 실사 <피노키오>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그 차이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디즈니는 <블랙 팬서>, <쉬 헐크>, <피노키오> 등에서 보듯, PC를 돈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흑인, 여성, 성소수자가 들어간다면 이야기 자체가 타당성 있게,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캐스팅을 위한 설정변경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난 이런것을 고려하지 않는 디즈니의 행태가 굉장히 무례하다고 느낀다. 이것은 소수자들에게도,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끼치는 셈이다. 또한 '진저 지우기'에 대해서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오진 않아서 인터넷 설에 불과하지만, 흑인을 백인대신 캐스팅하면 대부분 빨간 머리 캐릭터가 사라진다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는 지점이다. 앞서 말한 빨간 머리 캐릭터 중 스파이더맨의 MJ, 더 플래시의 아이리스는 이미 흑인으로 바뀌었다. 차별을 없애는 척 하면서 차별을 이용하는 걸까?
흑인이 캐스팅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잘못 만들었다. 구조적으로 촘촘한 내용에서 '누군가'의 눈에 띄는 부분을 검열하듯 블록을 빼놓고, 이야기 구조는 그대로 가져간 이 영화는 중간중간 비어있는 젠가처럼 위태롭고 허술하다. 새로운 인어공주를 보라며 자신만만해하던 디즈니. 89년작보다도 진보적인 메시지가 삭제되면 어쩌란 말인가?
디즈니는 89년, 시대에 반역하듯 메시지를 담은 새로운 공주이야기인 <인어공주>로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었고 본인들도 엄청나게 돈을 벌어들였다. 그런 상징적인 <인어공주>를 이제는, 자신들의 손으로 망가트리고 있다. 영화 <인어공주>는 최근 계속되어 온 디즈니가 만든 망가진 실사화와 영화들의 초라한 마무리 같다.
디즈니여, 어디로 가려하는가?
* 단순히 '흑인 인어공주'라서 영화를 비판한 것은 아니니, 영화 <인어공주>의 외모나 인종을 혐오, 조롱하는데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제 글을 인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제 글을 읽고 역사적, 문화적, 인문학적인 오류를 지적하거나 토론할 여지를 이야기하거나 오타를 지적하는 것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성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만, 글을 읽지않고 비방덧글을 다시는 분들은 답글달지 않겠습니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