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는 변신로봇이 크게 인기였다. <트랜스포머>는 일본 완구회사 타카라에서 만들었던 '자동차가 로봇이 되는' 다이아클론과 카로봇 장난감 시리즈를 미국회사 헤즈브로가 판권을 가져가면서, 장난감을 팔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것이 시초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캐릭터들은 다 완구로도 발매가 되고, 애니메이션과 비슷하게 변신이 되는 로봇들이다. 애니메이션 팬들의 충성도가 높아서, 마이클베이가 2007년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실제로 애니와 장난감에서 보여주던 큰 덩어리가 열리고 닫히며 변신하는 모습이 아니라, 조각조각난 작은 부품들이 재조립되는 모습처럼 보여서 실망한 팬들도 있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인기 캐릭터인 옵티머스 프라임의 성우를 그대로 썼고, 변신 후 디자인이라던가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액션연출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 이후, 트랜스포머 실사 영화 시리즈는 5편이나 나왔지만 평가는 바닥을 쳤다. 나도 2편을 보고 재미가 없어서 그 이후로는 안 봤으니까. 하지만 트랜스포머는 원래 애니메이션 때부터 시리즈마다 멀티버스식 시나리오를 가져가는 것으로 유명했고, 영화도 <범블비>를 기점으로 리부트해 새로운 내용으로 만들었다. 게다가이번에 개봉한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은 극장판 애니메이션 <트랜스포머: 더 무비>의 무시무시한 메인빌런 '유니크론'이 등장한다 해서 관심이 더 가게 되었다.
<트랜스포머: 더 무비>는 한국인인 넬슨 신이 감독한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데,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입되기도 한 작품이다. 행성을 잡아먹는, 행성처럼 생긴 거대 로봇 유니크론. 특히 유니크론이 로봇으로 변신하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트랜스포머 실사영화 시리즈에서도 이전에 잠깐 나온 적이 있다는 건 들었지만, 그 캐릭터를 못 살리고 이상한 설정만 주고 끝났다는 얘기에 실망했었으니까. 결국,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을 본 이유는 유니크론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생각보다 무거운 메시지를 담은 영화였다.
모든 맏이들이 짊어진 것
전역 군인에 히스패닉 계열의 미국인으로, 일을 구하지 못하고 아픈 동생을 돌봐야 하는 형 노아 디아즈(앤서니 라모스). 그는 동생에게 항상 괜찮다고 말하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산다. 결국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하다 오토봇과 조우하게 된다. 그는 겁은 많지만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옵티머스 프라임을 중심으로 하는 트랜스포머인 오토봇은 자신들의 행성 사이버트론의 내전에서 많은 동료들을 잃고 지구에 와 있다. 옵티머스 프리임은 특히 인간들과 교류가 많지 않았던 모양으로, 남은 오토봇을 지키기 위해 인간을 매우 불신하고 고향인 사이버트론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는 로봇이다.
동물의 모습으로 변신한 맥시멀들은 정글행성에서 유니크론의 부하들의 공격을 받고 많은 동료를 잃고 지구로 피신해 왔다. 그 리더인 옵티머스 프라이멀은 그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고대의 인간들과 협력했으며, 옵티머스 프라임의 리더십을 전해 듣고 이름을 바꿀 정도로 존경해 자신도 그렇게 되려고 하는 로봇이다.
영화를 끌어가는 이 세 캐릭터의 공통점은 대장, 리더, 맏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새로운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어깨에 짊어진 짐을 무겁다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다. 또한, 자신들의 뒤에 있는 동료와 가족을 위해서 이기적인 결정을 하거나 나쁜 일을 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바로 맏이들이 어떤 짐을 짊어지고 살고 있는지, 왜 맏이들은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어떻게 맏이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 이상으로 힘과 용기를 내서 싸울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나 타고난 리더, 맏이가 되는 건 아니다. 돌봐야 하고 지킬 것이 있을 때, 그것들을 위해 강하고 단단해져야 한다. 그런 고충을 잘 모른다면, 동생의 입장에서 볼 때 맏이는 잔소리꾼에 꼰대로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듣더라도 묵묵히 감수한다. 어떤 무리의 대장, 리더, 맏이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옵티머스 프라임도 자신의 행성 사이버트론을 구하기 위해, 오토봇들을 지키기 위해 인간들을 배척한다. 옵티머스 프라이멀은 소수의 인간과 유대관계를 맺었지만, 역시 전설이나 신화 뒤에 숨어서 워프를 할 수 있는 도구인 '트랜스워프 키'를 유니크론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수천 년간 위장해 왔다. 노아 디아즈는 자신의 동생이 속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트랜스포머들에게 나쁜 결정을 내리려 한다. 각기 다른 맏이들이 모였을 때 원팀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가 지킬 것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맏이가 대단한 건 아니다. 법원에서 접근금지 명령이라도 받고 싶을 정도로 가족 중에 진상인 맏이들이 꽤 있으니까.
이 영화는 그런 맏이들이 서로 하나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위기에서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게 다는 아니지", "모두 하나가 될 때까지"와 같은 이전 원작 애니메이션의 명대사와 주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모두 하나가 될 때까지(Till all are one)"는 애니메이션 <트랜스포머: 더 무비>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의 명대사이기도 하다.
권력이 세계를 지배하는 모습
이 영화에서는 인간세계 안에서 권력의 관계, 트랜스포머들의 권력관계를 꽤 시간을 들여서 다룬다. 히스패닉계열의 노아 디아즈가 면접을 보려는 곳들의 높은 직책의 사람들은 모두 백인 남성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노아를 무시하고, 편협한 정보로 그를 판단해버리고 만다. 또 트랜스워프 키를 발견하게 되는 박물관 직원 엘레나 윌리스(도미니크 피시백)는 상사가 백인 여성인데, 그녀를 부려먹는 상사로 나온다. 영화 배경인 90년대라면 더 당연하지만, 영화 내에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유색인종이다. 미국 사회에서 왜 유색인종들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범죄자가 되는 악순환에 빠지는지, 이 영화는 미국 사회의 모순을 잘 그려낸다.
유니크론은 테러콘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다루고 있는데, 그중 보스 격인 스커지는 종교적인 이야기를 종종 내뱉는다. 그는 유니크론을 신처럼 대하고, 영혼이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말한다. 오토봇들과 싸울 때는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자 이번엔 자신들이 신인 것처럼 대사를 내뱉는다. 왜 로봇들이 신 이야기를 하지? 사실 유니크론은 행성을 빨아들여 먹는 파괴신이다. 트랜스포머 세계관에는 이들을 최초로 창조한 The One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가 유니크론과 프라이머스를 창조했으며 프라이머스가 13명의 트랜스포머를 창조하면서 그다음 오토봇 등등이 만들어졌다고 되어있다. 유니크론은 수많은 트랜스포머의 멀티버스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로, 모든 멀티버스 세계관에 등장하는 유니크론은 다 같은 유니크론이라는 설정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니크론과 프라이머스는 파괴신, 창조신이다.
그만큼 강력한 신인 유니크론이기에, 자신들의 피조물들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고통을 주는 것으로 관리한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자신의 말을 들으면 더 좋은 몸체를 주기도 하지만 영화에선 그런 설정이 없고 오로지 고통과 공포로 지배한다.
세계는 권력자들이 지배하고 약자들을 부려먹고 있다. 모든 허드렛일들은 아랫것들이 목숨을 바쳐 담당한다. 그 위에는 절대 올라갈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 그것이 종교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문화적인 것이든. 권력자는 그 보이지 않는 선을 지키는 것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에, 아랫것들을 하등하고 열등하게 다루게 된다. 과연 이 시리즈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트랜스포머: 더 무비>를 따라간다면 유니크론, 즉 신과 권력에 대항하는 약자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모두 하나가 되어 그들이 정한 선을 넘어서, 지배를 벗어나는 일이다. 로봇 세계에서 거대한 지배세력이 유니크론이라면, 영화에서 인간들의 지배세력은 미국 백인들이다.
인종차별을 다루면서도 로봇을 차별하는 장면, "너희는 로봇인데 인종차별이라고 해야 돼?"라는 장면들은 꽤 많은 것을 시사한다. 또한 백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으면서 '잘생긴 남주''섹시한 여주'와 같은 기존 클리셰를 파괴하기도 했는데, 때문에 불필요한 로맨스가 없기도 해서 영화에 들어간 PC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진부하거나 익숙하거나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시작>은 그런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데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주제를 따라가고 있고, 액션이나 로봇 변신 디자인들도 리부트 되기 이전에 망가진 트랜스포머를 잘 되돌렸다고 볼 수 있다. 스토리라인도 깔끔해서 액션을 보는데 지장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다.
우선, 원작을 따라가 가려다 보니 일반관객들은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많은 관객들은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옵티머스 프라임의 이상할 정도로 꽉만힌 모습이나, 자신의 목표만 생각하는 모습에서 의아해 할 수도 있는데 사실 옵티머스 프라임의 초창기 캐릭터 콘셉트는 지금에 더 가깝다. 이기기 위해서 악역들보다 더 교활하고 잔인하며 입담도 거칠다. 마치 영화 아이언맨이 초창기엔 이기적이었으나 나중에 동료를 위한 인물로 탈바꿈하듯 '타 종족을 생각하고 지키고 희생하는 멋진 리더' 옵티머스 프라임은 후대에 만들어진 모습이다. 애니메이션 <트랜스포머: 더 무비>에서는 그런 멋진 옵티머스 프라임의 명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이 영화 시리즈의 메인 빌런이 유니크론이라면 아마 그 모습을 위해 빌드업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영화만 본 관객들에겐 옵티머스 프라임답지 않다며 이상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달라진 옵티머스 프라임의 디자인도 <트랜스포머: 더 무비>의 디자인과 유사하다.
그리고 노아 디아즈가 후반 로봇슈트를 입게 되는데, 그 장면이 아이언맨과 흡사해 실소를 자아낼 수도 있다. 이것은 원작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인간이 오토봇들과 같이 활동하기 위해 등장하는 인체 강화슈트인 엑소슈트를 오마주한 장면인데, 당연히 일반 영화 관객들은 그것을 알 리가 없고 아이언맨 같다며 혹평한다. 또 <트랜스포머: 더 무비>에 등장하는 인간 부자의 모습이 영화에 등장하는 노아와 동생의 모습과 흡사하기도 하다.
이 영화는 실제로 애니메이션 <트랜스포머: 더 무비>에 대한 오마주가 많이 들어가 있는데, 내용을 보니 뒤에 유니크론을 죽일 수도 있는 절대 에너지인 '리더십의 매트릭스'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매트릭스라는 단어가 이미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리더십의 매트릭스
또 영화의 내용과 장면이 다른 영화와 매우 흡사한 부분이 많다.
초반 박물관에서 거미같이 생긴 로봇들을 피해 숨거나 도망가는 장면은 쥬라기 공원을 연상케 한다. 또한, 클라이맥스의 내용구조는 완전히 반지의 제왕과 하나하나 대응시키며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 구조가 같다.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래서 골룸은 어디 갔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오마주인가, 표절인가, 안일한 클리셰인가? 익숙함 속에 진부함이 들어가 있어서 약간 당황스럽다.
그리고 이 영화는 어떤 나이대의 관객을 타깃으로 한 건지 명확하지가 않다.
변신로봇물은 확실히 10살 전후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인 90년대나, 배경음악인 90년대 힙합이나, 마크 월버그(마키 마크)를 언급하는 배우 개그, 각종 영화의 오마주 등은 40대 정도의 관객이 좋아할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40대가 보고 즐기기에는 스토리가 지나치게 단순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기엔 로봇의 머리를 뽑는데 척추가 딸려 나온다던지 하는 조금 잔인한 장면도 있다. 40대와 10대. 어느 쪽에 맞춰져 있는가? 약간 애매하다.
마이클 베이의 1편과 비교하는 분들이 많지만,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난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는 '액션은 좋지만 변신로봇의 재미는 반감시킨'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역시 생각보다 흥행이 저조한 편이지만, 이 영화는 키덜트의 감성을 가지고 트랜스포머나 변신 로봇물을 좋아했던 어른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전 트랜스포머에 실망했던 원작팬이라면 조금 더 만족스러울 수 있다. 심지어 이전 리부트작인 <범블비>를 안 봤어도 볼 수 있을 만큼 진입장벽이 낮다.
마침 세상 일이 갑갑하고 일상이 지루하던 때, 팝콘을 먹으며 부시고 터지는 걸 구경하기엔 걸맞은 영화다. 세상 일도 마음에 안 드는 것들 그렇게 다 때려 부숴버렸으면.
*쿠키영상에 등장하는 그 조직은, 영화만 아는 관객들은 조금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마블이나 DC의 세계관처럼 원래 애니메이션에선 종종 트랜스포머와 같이 세계관이 겹치던 조직이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