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시모프 Mar 27. 2021

창작의 자유라는 이름을 경계하라

조선구마사폐지 논란

우리나라의 창작자들은, 군사독재정권의 심한 검열과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김영, 김대중으로 이어진 문민정부가 지나서야 조금씩 창작의 자유를 얻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자유로운 창작'에 대한 정의감 같은 게 남다른 것 같다.


이번 '조선구마사'폐지에서도, 아마 그 내용들을 잘 보지 않았을 법하지만.. '시청자가 들고일어나서 판타지 창작물에 검열을 했다'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일단 이런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무슨 일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분노하는지 정확히 판단해야 하고, '자유'와 '책임'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프로 창작자는 그냥 담벼락에 혼자 소리치는 사람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감상하게 되는, 또 그러한 힘이 있는 창작자일수록 책임이 크다는 걸 알아야 한다. 미디어는 힘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군사독재 시절 갖고 싶어 했던 창작의 자유는 비단 정권에 대한 비판뿐 아니다. 좀 더 자극적인, 좀 더 엇나간, 좀 더 창의적인 생각들이 포함되어있다. 검열이 심했던 시대에는 어떻게 그 검열을 피할지 눈치싸움이 심했다. 그래서 더 삐딱하게 나가기도 하고, 만화가들은 아예 만화라는 미디어 자체가 '청소년 불온서적'이었으므로 어린이날 만화를 모아 불태우며 만화가들에게 '이런 만화를 그리지 않겠다'는 구호를 외치도록 시켰다. 대중가요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고, 영화나 드라마에선 사투리나 욕도 쓸 수 없었다. 정말 창작자에겐 끔찍한 환경이었다.

이런 말도안되는 검열도 많았다. <[출처: 중앙일보] "여자가 남자한테 물 뿌려?" 검열 이유도 가지가지>

그러나, 지금 벌어진 '조선구마사'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와 검열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과 창작자들은 착각하지 마라. 이것은 시민들이나 소위 '국뽕'들이 당신들을 올바르지 않다고 무리하게 '검열'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본인들의 역사의식을 다시 생각해 보거나 현재 국제시사에도 눈을 돌리기 바란다.


모든 역사극이 다 완벽한 고증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아예 완벽하려면 조선 사극은 말부터 대한민국 초기 말투가 아니라 조선시대 중세 한국어를 써야지. 패션, 캐릭터, 사건 등 당연히 창작이 많이 들어간다. 특히 이병훈 PD의 사극들은 <허준>부터 파스텔톤의 한복을 입혔는데 당시엔 이것도 고증 오류라며 퓨전사극이라고 엄청 까였다. <불멸의 이순신>은 원균 미화 논란과 역사적 사실 오류 등이 많이 지적되었지만 그래도 이런 드라마들 모두 어느 정도 창작의 영역에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역사 덕후들이나 그거보고 '이건 좀 아니지'라고 해도, 큰 틀에서는 틀리지 않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역사적 인물의 야사와도 같은 이야기는 즐겁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미디어는 너무 큰 힘을 갖고 있다. 히틀러는 그 점을 잘 알아서 엄청난 연설 영상을 찍어 배포했고, 독재 정권일 수록 미디어의 그런 면을 이용하고 검열하고 제한하려 했다. 사실 국뽕 콘텐츠는 드라마보다도 다큐멘터리와 예능에서 심각하게 나타난다. 한민족의 후예가 멕시코인이라거나, 외국에서 식당을 했더니 우연히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와서 따봉을 날리는 식의 연출이 그런 것이다. 이런 근본 없는 국뽕 콘텐츠들은 일본을 참고해라. 일본이 그런 걸 자꾸 만들다가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떻게 갈라파고스화 되어갔는지.

'조선구마사'같은 경우에는, 요 몇 년 더 크고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연장선이다. 투자에 중국자본이 크게 들어와 있고, 작가는 '한글은 한자를 잘 읽기 위해 한자에서 따와 만든 것'이라는 강의나 하는 사람이었으며, 이전 작품인 철인왕후도 판타지를 넘어서서 역사왜곡으로 논란이 심했던 작가다. 역사에서 '왕은 이랬어야 한다' '이 인물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와 같은 맥락으로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반감을 가지는 게 아니라, 중국이 주장하듯 '한복도 김치도 우리 것,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라는 것과 같은 개념이 정말 노골적으로 꼼꼼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분노하고 들고일어난 것이다. 자세한 컨텐츠 비교는 여기서 하나하나 하지않겠다. 본인이 직접 찾아보고 비교해라. '구마'라는 자극적인 소재안에 얼마나 꼼꼼하게 조선을 비하하고 중국의 주장하는 바를 갖다놓았는 지. 시민들이 단순히 국뽕에 차있고 반중이라서 이러는게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드라마를 캡처한 짤이 돌더라. 중국식 칼에 중국식 헤어스타일을 한 조선인들. 동북공정과 맥을 같이해도 판타지가 아니냐고? 그건 판타지가 아니다. 바로 창작자의 자유를 부르짖던 시대에서 지배자의 입맛에 맞게 대중을 교화하기 위해 만든 프로파간다 미디어랑 같은 맥락인 것이다. 여기서의 지배자는 우리나라의 문화를 탐내는 중국과 일본이다. 즉 주변강대국의 프로파간다 미디어를 돈받고 우리가 만드는 셈이다. 미친짓이지. 즉 창작자의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이라면 사실 더 분노해야 한다.


지금 새롭게 논란이 되는 jtbc의 '설강화'는, 한국 근대 민주화운동이 일던 시기에 운동권 내부에 간첩이 있고, 안기부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정말 많이 간첩누명을 쓰고 고문당하고 죽었다. 그리고 아직도 일베 등 친일 극우세력은 그게 진실이라며 왜곡을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운동권에 간첩이 있다는 내용의 드라마가 나온다? 그리고 그게 재미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얘기가 일부 사실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게 미디어의 힘이고 책임이다.


역사적으로 없는 것, 혹은 가정의 역사를 통해 재미있는 창작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창작에도 정도가 있다. 몇 년 전, 초등학생을 강간하고 싶다는 내용의 인터넷 만화가 크게 욕을 먹은 적이 있다. 그것이 창작의 자유인가? 창작자들은 종종 자유와 방종을 혼동한다. 내 방 안에서 내 담벼락에 쓰고 그리는 건 맘대로 해도 돼. 하지만 사람들에게 보여줄 거라면 그 작품에 책임을 져야지. 어떤 영향을 줄지.

이런 것도 창작자의 자유를 논할 수 있는가? 이것은 창작자의 폭력이다.

예를 들어 어떤 유명 감독이 '위안부는 섹스를 즐기던 성중독 창녀들이었다'라는 주제로 창작의 자유를 말하며 굉장히 웰메이드로 일본 자본을 들여와 영화를 찍고 국내 개봉은 물론 해외 개봉도 한다고 하자. 그건 그 감독의 알량한 '창작의 자유'가 아니다. 그건 피해자 희생자들에 대한 가해이며 모독이고, 일본이 말하는 '자신들은 가해자가 아니다'라는 거짓 프레임을 단단히 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며 돈으로 역사를 팔아먹는 행위다. 그건 '창작자의 폭력'이다.


창작자는 사회와 정치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철인왕후 때, 우리 한국 시청자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는지 짐작이 갔다. 그 정도의 동북공정 역사왜곡을 해도 재미만 있으면 본진에서 만들어도 좋아하는구나 -라고 여겼겠지. 그러니 '조선구마사'같은 말도 안 되는 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던거고. 그러나 우리 시청자들, 아니 시민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단번에 들고 일어서서 2회 만에 방송 폐지를 이끌어냈다. 이걸 창작자 자유에 대한 검열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이것은 일반 시민이, 자본과 창작자의 폭력에 대항해 이겨낸 승리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미디어의 힘을 알고, 그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사건이 '창작자의 자유를 억압한 사건'이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창작자의 자유와 폭력을 혼동하는 사람이다. 무책임은 자유가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을 하지 않는다. 아이를 갖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