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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May 20. 2021

그의 작품에는 그의 혼이 깃들었다

역사와 신화와 폭력 그리고 구원 <미우라 켄타로 - 베르세르크>

5월 6일,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켄타로 선생님께서 작고하셨다. 향년 54세. 1988년 대학 때 단편 <베르세르크>를 그렸다. 여타 다른 단편과 작품도 했지만 <베르세르크>는 그의 다른 극우 마초적 성향이 짙은 작품과는 달리, 폭력성은 짙었지만 실제 역사와 판타지를 잘 아우르는 스토리와 세계관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나 악과 폭력을 표현하기 위한 그의 섬세한 작화는 '혼을 갈아 넣은 작품'으로 회자될 정도로 엄청났었는데, 결국 주인공 가츠처럼, 그는 그의 작품에 혼이 먹혀버리고 끝내 이겨내지 못하셨다.


일본 만화가 처음부터 폭력적인 건 아니었다. 그러나 <마징가 Z>로도 유명한 나가이 고 이후, 일본 만화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축이 생겨났다. 나가이 고의 작품들은 <데빌맨>, <마징가 Z>, <바이올런스 잭>등 이 있는데, 하나같이 음울하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다. 내용도 잘 나가다가 폭주해서 등장인물을 전부 잔인하게 죽여버리는 등, 만화가 가질 수 있는 잔혹함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있게 해 준 사람이다. 나가이 고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성적 자유분방함과 폭력성이 짙은 작품 계보가 그려졌고, <베르세르크>는 처음부터 폭력과 선정성의 끝판왕 격인 나가이 고의 작품이나 <북두의 권>, H.R. 기거 등을 거의 오마쥬 하다시피 한 작화로 탄생했다. 애초에 그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알지만, 역사왜곡과 폭력성이 짙기로 유명한 스토리 작가 브론손의 글을 단편으로 만든 게 많다. 브론손은 <북두의 권>의 스토리 작가이며, 최근에는 또 다른 극화체의 거장인 이케가미 료이치와 함께 완전 극우 만화인 <비긴>이라는 만화도 맡았었다. 그렇게 때문에 <베르세르크>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선정성을 싫어하는 독자들도 많다.

베르세르크(좌)와 바이올런스 잭(우). 바이올런스 잭은 지금도 서양에서 금지되었을 정도로 잔혹한 묘사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세르크>가 전 세계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던 이유는, 그 잔혹함에 대한 이유가 작품 내에 반영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츠라는 주인공이 가지는 현실의 참담함, 잔혹함,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와 현실 등이 그 세심한 작화로 그려진 폭력이 고스란히 떨림으로 다가온다. 선한 것, 착한 것은 보이지 않게 상상하도록 하면 더욱 신비한 것이 되지만, 악한 것, 나쁜 것은 더 정확하고 세세하게 그려야 잘 느껴진다. 공포만화들의 작화가 훨씬 섬세하게 선이 많이 들어간 것처럼.


소설가, 문예평론가인 이시카와 준은 <만화의 시간>이라는 만화 평론에서, <베르세르크>를 '아직 신인이지만 현실적인 힘이 있는 만화'로 소개했다. 당시에는 아직 베르세르크의 '황금시대'초창기 연재분이었을 때라 그랬겠지만. <베르세르크>는 이 만화가 단순한 선정적 폭력적인 만화가 아니라는 걸 바로 그 '황금시대' 연재분으로 증명했다. 주인공이 왜 저렇게 크고 무거운 철 덩어리 같은 칼을 들고 싸우는지, 왜 악마와 원수지간이 되었는지, 왜 팔이 잘리고 눈이 애꾸가 되면서도 싸우고 있는지. 그 모든 이유와 가혹한 삶이, 실제 영국 프랑스의 100년 전쟁을 모티브로 한 미들랜드와 튜더 공국의 전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디테일한 심리묘사, 전쟁-정치전략, 인간관계 표현 등은 이시카와 준의 말대로 아이들이 보는 판타지에 불과한 만화를, 어른까지도 끌어들일 힘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무기와 칼을 들고 싸우는 만화는 많지만, 그 검에 실제 무게를 느껴지게 하는 만화는 많지 않다. 대부분 엄청나게 거대한 검을 휘둘러도 그냥 나뭇가지 휘두르듯 싸우기 때문에, 그 검이 얼마나 무섭고, 무겁고, 거기에 실린 죽음의 무게가 어떤지 알기 힘들다. 하지만 미우라 겐타로는 엄청난 연출로, 그 누구도 하기 힘들었던 '검의 무게'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검의 무게는 바로 가츠의 인생의 무게와도 직접적으로 닿아있어, 보는 사람마다 그 거대한 검 - 드래곤 슬레이어를 보고 생각하는 대사는 그건 곧 가츠라는 캐릭터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건 검이라 하기엔 너무나 컸다.

엄청나게 크고 두껍고 무거운, 그리고 조잡했다.

그건 말 그대로 철퇴였다."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이 만화와 후지타 카츠히로의 <요괴소년 호야>를 접하고, 나의 인생관이나 작품관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뒤로 갈수록 가츠보다는 주변 인물, 여성과 소년, 또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를 그려내며 작품이 품는 세계관이 넓어지기도 했다. 초창기 팬들은 뒤에 나오는 마녀와 여자 캐릭터 중심으로 나오는 부분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난 그 부분이 있어서 더욱 대작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안 그래도 그의 엄청난 작화와, 결혼도 안 하고 쉬지 않고 일만 한다는 작가의 코멘트로 인해 만화가 완결되기 전에 작가가 먼저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팬들 사이에서 이미 돌고 있었다. 갈수록 연재는 더뎌지고, 이야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도 했고, 특히 요새 일본 만화는 명작임에도 불구하고 끝을 전혀 맺지 않은 채 연재 중단해버린 사례와, 마지막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팬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로로 쓰러졌다는 말과 휴재 중에도 전투 장면의 병사들을 그리고 있다는 작가의 코멘트는 '제발 좀 쉬시고 건강 좀 챙기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으니까.

만화 안에 가츠는 실제 악마와도 싸우지만, 그러는 동안 자신의 악마성과도 계속해서 싸운다. 처음엔 악령들이 제물로 바쳐진 가츠의 몸속에 들어가 빙의하는 것과 싸우지만 나중에는 그 자신의 피로 물든 영혼을 형상화하는 광전사의 갑옷(버서커의 갑옷)을 입고서 더욱 처절하게 싸운다. 광전사의 갑옷을 입고 광전사로 변신하는 모습은, 자신의 악마성에 먹혀버리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츠는 혼을 팔아 악마와 싸우고 전진하고 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모습이다. 그런데 그 모습은 곧 미우라 켄타로의 모습 그 자체였다. 결국 가츠는 그리피스에게 닿지 못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모든 추억에는 이별이 있다. 작품이 완결되지 못했다고 슬퍼하는 게 아니다.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선생님께서 조금 더 건강하셨으면 했다. 조금 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셨으면 했다.


선생님, 이제 그 거대하고 무거운 펜을 놓으시고 부디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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