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중순, 41년을 한국에 살면서 처음으로 제주도에 가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저가항공이 나온 이후에 그렇게 비싸지도 않은 여행지였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미루고 가지 않았을까. 면허가 없어서?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 다 핑계다. 그저 나 혼자 스스로 같이 갈 이유를 만들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래서 다녀왔고, 기회가 되는대로 여기저기 가 볼 생각이지만 제주도에도 종종 가 볼 생각이다. 제주도는 생각보다 너무 커서, 애월에 있던 숙소 근처에만 돌아다니긴 했지만 지내는 동안 한라산을 한 번도 못 봤다. 가서는 사진보단 영상을 위주로 찍었고, 갔다 온 여정을 짤막하게 영상으로 만들었다. (주의: 신났음)
일부러 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골랐다. 침대에 앉아서 바닷소리를 듣고, 푸른 바다를 보고 있으니 마음도 잔잔해지는 기분이었다. 쉬려고 왔기 때문에 차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돌아다닌 곳은 가까이에 있던 아르떼 뮤지엄과 알파카 농장, 이호테우 해변이었다.
아르떼 뮤지엄은 예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였던 디스트릭트에서 만든 곳인데, 그때 회사의 정체성을 웹 에이전시에서 미디어 파사드로 바꾸고 있더니 결국 그 분야 최고가 된 것 같다. 당연히 회사 사람들은 만날 수 없었지만 나름 반갑고 또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알파카 농장에는 알파카 말고도 재미있는 동물들이 많았다. 양, 흑염소, 닭, 말 등등. 농장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알파카끼리 침 뱉으며 싸우는 것도 구경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먹은 음식들을 보니, 대부분 흑돼지. 너무 달거나 살찌는 건 먹고 싶지 않아서 고르다 보니 흑돼지를 골랐는데, 먹다 보니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되었다. 특히 숙소 옆에 있던 '흑돼지가 노는 집'은 돼지도 반찬도 나물도 참 맛있는 곳이었다.
애월 해수욕장도 바다가 좋았지만, 나는 비 오는 마지막 날 갔던 이호테우 해변이 좋았다. 해변 모래가, 그냥 모래가 아니라 검은 모래가 섞여 있는 게 '과연 제주도의 바다구나'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없는 비 온 뒤 바다를 걸어가며 사진을 찍고 감상에 젖으려고 했는데 제주도의 바닷바람은 무서웠다. 쌩쌩 불어대는 바람에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겨우겨우 모래를 뒤로 하고 카페에 들어와 파르페를 먹으며 한숨 돌렸다. 그런데 집에 오는 날, 해가 쨍쨍 나더라...
앞으로는 날이 좀 좋을 때 가야겠다. 면허가 없어서 차로만 다니려니 조금 귀찮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자주 가다 보면 재미있는 곳을 여기저기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그럼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