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에 선사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많다. 전곡은 동두천에서도 몇십 분을 더 차로 달려야 도착하는 곳으로, 가게 되면 전곡에 들어서면서부터 '선사시대' '돌도끼'의 상징과 모형, 구조물들이 즐비한 것에 깜짝 놀라게 된다. 전곡 선사박물관을 보면 우주선처럼 정말 멋지게 지어놓았다. 우리가 아는 흔한 선사시대 주먹도끼가 아닌가?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길래 사람들이 가기도 힘든 전곡에 그렇게 멋진 박물관을 지어놓았나.
1978년 한국인 여자 친구와 한탄강 주변을 걷다가 주먹도끼를 발견한 미군 그렉 보웬. 평소에도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지난 2005년 27년 만에 그렉 보웬이 부인과 함께 방한했다. 옆에는 당시 여자 친구였던 그렉의 부인. (출처:한겨레)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당시의 모든 기술의 집약체로, 상당히 세밀하게 가공되어있는 도구다. 그 세밀함은 당시의 기술로보면 지금의 스마트폰과 비견될 정도. 보기에는 '그냥 돌인데?'라고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만들어 보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한국일보)
사실 아슐리안 뗀석기라고도 불리는 이 주먹도끼는 유럽,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발견되었었다. 그래서 모비우스라는 학자는 '구석기 문화 이원론'을 주장했다.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나누어 인류가 동아시아와 유럽 진출 시기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학설은 1978년 전곡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며, 학계를 완전히 뒤집어놓고 모비우스 학설은 폐기되었다. 즉 전곡은 동아시아의 선사시대 역사를 바꾼 중요한 유물이 처음 나온 곳이다. 그래서 언젠가 박물관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여러 자료를 봐야 할 일이 생겨서 지난 5월 가보게 되었다. 관람료는 무료다.
선사박물관 입구에는 구석기인이 주차 차단기 앞에서 인사하고 있다. 귀여운 모습을 뒤로하고 지나가면 바닥에는 다양한 그라비티 작품이 그려진 길이 보이고, 곧 저 멀리 미래에서 막 도착한 듯 우주선 모양을 한 박물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꼭 스타트렉 시리즈의 엔터프라이즈 호 같다.
입구에는 도구의 변화를 한 번에 흐름으로 나타낸 전시물이 있다. 돌도끼에서 활촉, 나중엔 드릴까지 이어진다. 단순히 주먹도끼를 보여준다기보다 재미를 주려고 한 흔적이 엿보인다.
박물관 내부는 더욱 미래적인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선사시대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인데, 그런 디자인의 대비가 더 선사시대 유물을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인류의 진화과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모형들이 전시되어있다. 발굴된 화석을 기초로 해서 만들었을 텐데,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법하게 생긴 '사람'같은 모습도 있다. 모형 중에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오드아이로 되어있어서 의문을 품었는데, 관장님 말씀으로는 한쪽에서만 조명이 비쳐서 색이 바랜 것이라고 하셨다.
이곳엔 유난히 체험형 공간이 많았다. 돌도끼를 직접 만들어보는 곳도 있었지만 (관장님이 직접 시연도 하신다고..) 가장 좋았던 것은 세계에 흩어져있는 선사시대 동굴벽화를 한 군데에 재현해놓은 곳이었다. 항상 그림으로만 보던 동굴벽화를 재현이라고는 하나 직접 보니, 어떤 방식으로 어느 위치에 그렸는지 알 수 있어서 그들의 생활상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유명한 소 그림도 있고, 현대미술이라 해도 손색없을 그림들도 보였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면 박물관 자체의 역사를 담은 공간과, 돌도끼 이외에 다른 유물, 생활상을 전시한 공간이 있다. (9월까지 '오! 구석기'라는 전시를 하는 중이다) 실을 직접 꿰어볼 수도 있고, 생활상을 '영플레이모빌'로 구현한 곳도 아기자기하게 예뻤다. 북도 전시되어있었는데, 두들겨보게 되어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전시는 꼼꼼한 구성이라 느껴졌는데, 구석기인들의 화석을 놓고 어떻게 죽었는지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중 두개골에 짐승이 물어서 뚫린 자국이 있어 잡아먹혀 죽은 사람 두개골이 있었는데, 그걸 설명하기 위해 동물의 상악골을 가져다 물린 모양으로 놓고 전시되어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화석이 만들어지진 않았겠지만,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구성이었다.
시간이 되면 뒤쪽에 있는 발굴 현장도 가보고 했겠지만 5월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더운 날이어서 다 가보진 못했다. 더군다나 차가 없이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시간대를 잡기 힘들어 차 시간에 맞춰 얼른 나오게 되었다. 박물관은 참 잘 만들어져 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배려가 있으면 어떨까 싶었다. 박물관 앞에 정류장이 있다던지. 그래도 재미있던 선사시대로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