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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May 13. 2022

<닥터 스트레인지2> 대혼돈의 샘레이미버스

닥터 스트레인지 2:대혼돈의 멀티버스 - 이것만은 알고 보자

SF와 판타지의 세계를 넘나드는 캐릭터인 '닥터 스티븐 스트레인지'는 그 인기에 비해 솔로 무비가 별로 없었다. 스파이더맨과 어벤저스에 끼여서 나왔을 뿐. 그리고 샹치와 이터널스가 그닥 큰 재미를 못 본 터였다. 그러던 차에 <스파이더맨 : 노웨이 홈>이 멀티버스 삼스파로 대박이 나고, 그 멀티버스의 재미를 이어서 이 <닥터 스트레인지 2 :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나온다니, 도르마무에게 끝없이 죽던 불쌍한 스티븐을 보며 마음을 달래던 팬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감독이 바로 '마블 히어로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던 2002년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만든 샘 레이미가 아닌가! 샘 레이미는 현란하고 독창적인 카메라 워크로 액션과 공포와 코믹의 몰입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감독이니. 그가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의 3편을 찍다가, 제작사인 소니의 무리한 요구에 빌런들과 이야기가 너무 많이 겹쳐서 전작에 비해 실패한 영화가 되었다. 그 여파로 스파이더맨 감독에서 하차하면서, 주연이었던 토비 맥과이어도 그만둬버려서 소니는 스파이더맨 4 제작을 취소하고 어쩔 수 없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 리부트를 해야 했다. 그리고 샘 레이미는 히어로 영화에서 손을 떼게 된다.


그런 다사다난한 샘 레이미가 15년 만의 히어로 무비로 복귀한 <닥터 스트레인지>. 샘 레이미는 그전에 소니와의 불화를 생각하면서, 이번 영화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내 맘대로 할 거야!"라고 선언한 듯하다. 영화 내용도 마블의 온갖 드라마와 영화가 뒤섞여 있지만, 영화 스타일과 장르도 샘 레이미의 기존 영화의 패러디가 잔뜩 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이 영화는 아는 사람은 정말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정말 영문 모를 영화가 되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이 드라마와 영화는 필수적으로 봐야 어느 정도 재미가 있다. 아니, 보지는 않더라도 기본적인 정보는 알아야 한다.


1. 닥터 스트레인지

당연하겠지만, 이 영화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속편이므로 1편을 꼭 봐야 한다. 마블의 솔로 무비들이 그렇지만, 각 영화에는 내용으로도 스타일로도 개성이 있다. <캡틴 아메리카>는 전쟁영화에 가까운 진지함, <헐크>는 히어로도 빌런도 아닌 환영받지 못하는 괴물의 고뇌, <블랙 팬서>는 아프리카 대륙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고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에 유쾌함을 버무린 액션 영화.

스티븐의 영혼을 분리시키는 일격은, 티벳 불교에서 '포아'라고 하는 실제 의식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동양의 '마법'을 소재로 다루고 있으므로, 자아성찰과 윤회, 끝없이 이어지는 우주에 대해 표현한다. 다른 여타 히어로들은 대부분 특수한 '능력'을 우연하게 받거나 타고나거나 기계를 만들어낸 것이지만 스티븐은 성전에서 연습하고 훈련하고 깨달음을 얻어 만들어진 히어로다. 그래서 <닥터 스트레인지>에는 불교-힌두교적인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특히, 이미 1편에 스티븐이 에이션트 원에게 받는 '멀티버스 체험 장면'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제이기도 하다.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 이 물질적인 세상이 다라고? 현실이란 뭐지? 네가 아는 세상 너머엔 무엇이 존재할까? 존재의 뿌리에선 정신과 물질이 하나가 되고 생각은 현실을 창조하지. 우리 세상은 수많은 세상들 중 하나일 뿐, 영원히 존재하는 세상들... 어떤 세상은 선과 생명이 넘쳐나고 어떤 세상은 악과 굶주림으로 가득하지. 어둠 속에선 시간보다 오래된 힘이 잔뜩 굶주린 채 기다리고 있지. 이 광활한 멀티버스에서 넌 누구일까..."



2. 완다비전

<완다비전>은 <어벤저스:엔드게임> 이후에 완다 막시모프를 주연으로 하는 디즈니+에서 제작된 드라마다. 완다가 어떻게 해서 '스칼렛 위치'라는 이름의 능력자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사실상 <닥터 스트레인지 2>는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 보다는 <완다 비전>과 더 직접적으로 내용이 연결되어 있다. 이 영화는 내내 완다의 감정선과 능력이 주를 이루는데, 완다비전의 내용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면 '왜 완다가 저렇게 행동하지?'라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원래 코믹스에선 완다가 곧 스칼렛 위치였지만, 영화에서는 스칼렛 위치에 대한 판권이 소니에 있었으므로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판권이 디즈니로 오면서, 바로 스칼렛 위치로 각성시켜버렸다. 스칼렛 위치는 마블의 세계관에서, '인간'이 변화한 가장 강한 캐릭터 중 하나다. 비슷한 능력치로는 피닉스 포스를 쓰는 엑스맨 시리즈의 '진 그레이'가 있다.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마블 팬들의 오래된 떡밥이다)

이 드라마에서 스칼렛 위치로 각성하는 중에 '다크 홀드'라는 마도서가 등장하는데, 그 다크 홀드가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 2>의 주요 아이템이다.


그리고 완다는 여기서 스칼렛 위치로 각성하면서, 제4의 벽을 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4의 벽이란, 연극이 진행되는 무대와 관객 사이에 있는 벽을 말하는데, 무대를 넘어서서 현실의 관객, 시청자, 독자와 소통하는 걸 말한다. 다시 말하면 만화 캐릭터가 창조자인 작가나 독자와 소통하는 것으로써, 요새는 캐릭터의 차원을 넘나드는 능력을 표현하는 걸로 종종 쓰인다.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가 관객에게 자꾸 말을 거는 '데드풀'이다. 완다 비전은, 에피소드 중 하나 제목 자체가 <무너지는 제4의 벽>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2>에서도, 능력을 보여주면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뜬금없이 관객을 가만히 응시하다 넘어가는 장면이 있다. 마치 영화 속 캐릭터가 관객의 존재를 아는 듯이.



3. 왓 이프

<왓 이프 : What if...?>는 디즈니+에서 공개한 애니메이션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코믹스 속, 영화 속 마블의 세계관이 아니라 <만약... 이랬다면?>하는 가정을 담고 있으며 그게 곧 멀티버스의 내용이다. 주요 제목만 보자면 <만약... 캡틴 카터가 퍼스트 어벤져라면?>, <만약... 닥터 스트레인지가 손이 아닌 마음을 잃었다면?>, <만약... 좀비라면?!>, <만약... 울트론이 이겼다면?>등의 에피소드가 있다. 제목만 봐도 상상될 것 같은 이것들은 <닥터 스트레인지 2>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사실 모르고 봐도 재미있긴 한데,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4. 에이전트 오브 쉴드

에이전트 오브 쉴드는 사실 영화 <어벤저스> 때부터 나온 abc 드라마다. 쉴드(S.H.I.E.L.D.)라는 단체는 닉 퓨리를 중심으로 하는, 2차 대전 이후 만들어진 세계안전보장이사회 아래의 국제안보기관이다. 초기 창립멤버 중 하나가 아이언맨의 아버지인 하워드 스타크. 그래서 쉴드는 어벤저스만큼의 능력은 없지만, 오버 테크놀로지로 어벤저스를 관리했다. 어벤저스 영화에서 다 때려 부수면서 인류를 지킨다면 쉴드는 그 밑에서 뒤치다꺼리하는 내용이 나온다. 드라마 쉴드의 주인공은 어벤저스 1에 나왔다가 죽은 콜슨 요원.


시즌이 가면서, 점점 과거와 미래를 오가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다른 설정이 되지만, 시즌4에서는 '다크 홀드'가 주 아이템으로 등장한다. <닥터 스트레인지 2>에서는 이 책이 얼마나 위험하고 다루기 어려운지 잘 나오지 않지만, 에이전트 오브 쉴드 시즌 4에서는 제대로 나온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처럼, 읽은 사람을 어둠에 물들여 버리고 심지어 컴퓨터도 어둠에 감염되는 무시무시한 마도서다. 그런 무시무시한 책이라는 걸 알고 보면 좋다.



5. 이블데드 2 (1987)

샘 레이미 감독은 원래 유명한 호러영화 감독이었다. 이블데드는 샘 레이미의 초창기 걸작으로, B급 호러무비의 대명사다. 이블데드 2의 내용도 마도서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악령에 들린 주인공 이야기인데, 영화의 연출, 주요 아이템, 시퀀스들이 <닥터 스트레인지 2>에 굉장히 많이 들어 있다. 특히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거대한 눈알 괴물은, 이 영화가 이블데드의 오마쥬가 될 것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아예 장르 자체를 호러무비로 연출을 하는데, 그게 섬뜩하기도 하고 코믹하기도 한 재미를 준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그게 자신의 영화인 이블데드를 오마쥬 했다는 걸 모른 채 보면, 그냥 영화가 유치해 보일 수 있다. 이 재미를 살려서 미국에서는 이블데드와 닥터 스트레인지를 섞은 이런 포스터도 돌아다니고 있다.

왼쪽 이블데드 포스터, 오른쪽 닥터 스트레인지 2


영화의 장면들을 조금 소개하겠지만, <닥터 스트레인지 2>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정도이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이블데드에 등장하는 마도서
죽은 줄 알았던 시체가 되살아난다
악령 들린 시체를 처단하자 눈알이 뽑혀 날아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
악령이 들어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을 잘랐는데 이놈이 무기를 쓴다
마도서에 악마를 퇴치하는 방법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 속 주인공이 실제 주인공을 닮았다
마도서로 시공간에 균열이 생겨 과거로 여행하는 주인공
이 영화의 주인공 '애쉬'로 분했던 브루스 캠벨은 닥터 스트레인지 2에도 카메오로 등장한다. 이 턱 큰 얼굴을 기억하시라.


샘 레이미가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살린 <닥터 스트레인지 2 :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말 그대로 각종 마블 영화의 멀티버스들이 뒤섞인 영화일 뿐 아니라 샘 레이미 본인 영화도 뒤섞어버린, 그야말로 샘 레이미 버스가 되었다. 충격과 혼돈 그자체다. 거리두기도 끝났고 팝콘도 먹을 수 있으니, 충분히 즐겁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이 재미의 가장 큰 장점이단점도 바로 그 부분이다. 다른 영화들을 섭렵한 사람이 더 재미있다. 내용이 영화로 개봉도 안 하고 OTT 서비스인 디즈니+에서만 나온 <완다 비전>에서 이어지는 건 특히 굉장히 불친절한 부분이다. 이런 건 일반 관객의 진입을 좀 어렵게 만든다. 기존의 마블 영화는, 어벤저스 말고는 대체로 그 솔로 무비만 이어서 봐도 충분했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 2>는 그렇지 않다. 영화가 쌓이고 쌓이면서 다른 영화에 나왔던 캐릭터나 세계관이 겹치는 건 어느 정도 재미를 주지만, 모든 관객들이 마블의 팬은 아니다. 지금도 마블코믹스는 처음 보는 사람이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엄청나게 방대한 세계관을 자랑한다. 영화도 그런 식으로 만들 것인가? 샘 레이미가 영화를 대혼돈으로 만들어버린 건 굉장히 즐거운 부분이지만, 갈수록 마블 영화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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