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시모프 Jun 23. 2022

<탑건:매버릭> 아날로그에 바치는 전상서

한계를 넘는 위대한 도전

아날로그를 디지털이 전부 대체할 수 있을까? AI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순간부터 인간 고유의 영역은 빠르게 무너져가고 있다.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겼던 언어와 예술분야도 훨씬 빠르게 AI가 대체해 나가고 있다. 아직 초보단계이긴 하지만 AI가 시나리오도 쓰고 작곡도 한다. 얼마 전에는 구글에서 개발한 챗봇 AI인 람다(LAMDA)의 관리자가, 람다와의 인터뷰 후 람다가 자의식이 있다고 보고서를 올렸다가 구글에서 해고절차를 밟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제는 영화도 필름이 아닌 디지털카메라로 찍고, CG로 배경과 배우까지 만들어내며, 영화감상도 극장보단 집에서 모니터로 감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디지털로 대체되어가고, 인간이, 아날로그가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36년 만에 나온 <탑건>의 후속작, <탑건:매버릭>은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 오래된 것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사실 왜 이 시기에, 케케묵은 항공 액션 영화의 후속편을 만드는 가에 대해 제작발표 즈음엔 의심을 했다. 요새 헐리우드에서, 소재 빈곤으로 지나간 영화들을 계속 끄집어내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인가. <매트릭스:리저랙션>처럼 속편을 만든다고 하면서 전작에 대한 추억까지 망가트려 버리기도 하니까. 그래도, 몸으로 때우는 액션으로 헐리우드의 '성룡'이 되어버린 톰 크루즈니까, 재미는 보장하겠지 정도였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가 원하던 것 이상의 '영화적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한마디로 최고였다. 전투기 항공 액션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촬영과 편집, 전작의 미온함을 완성시켜주는 단순하지만 깔끔하게 다듬어진 스토리라인, 캐릭터들 간의 감정선과 36년의 세월이 만들어 낸 배우들의 조합, 전작과 연결되는 훌륭한 OST, 가볍지 않은 메시지까지. 한마디로 코로나가 끝난 뒤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즐거움의 끝판왕을 본 기분이었다. 근래에는 정말 보기 드물었던, 전작을 훌쩍 뛰어넘는 속편의 등장.


탑건의 이야기

1986년 작 <탑건>은 그렇게까지 영화적으로 훌륭한 영화는 아니었다. 20대의 빛나는 톰 크루즈의 외모와 연기, 영화 OST, 진짜 전투기에 타고 촬영한 항공 액션이 화제가 되고 볼만해서 엄청난 흥행은 했다. 하지만 '해군 항공대 홍보영화'라는 딱지는 떼기 힘들었다. 당시는 냉전시대였고, 베트남전 패배 이후 의기소침해진 미군이 적으로부터 자유를 지켜준다는 메시지는 흔한 남녀의 러브스토리 안에서 조금 프로파간다적으로 보일만 했다.


하지만 <탑건:매버릭>은 전작의 유치함이나 프로파간다적 냄새는 덜어 내고, 전작에서 해결해주지 못한 감정선을 잇는 것에서 출발한다. 바로 후방 관제사이자 자신의 절친이었던 구스의 죽음, 그리고 그 아들인 루스터와의 일이다. 전작에서도 가볍게 다룬 것은 아니었다. 매버릭 자신의 성격대로 마음대로 종횡무진하다가 벌어진 사고의 연장선에서 구스는 죽음을 당했다. 그렇기에 후반부에 내내 죄책감을 가지긴 했지만 그걸 극복하고 다시 작전에 투입되어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게 전작의 스토리. 하지만 실제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 36년의 시간은 우연하게도 길게 이어지게 되었지만, 루스터와 매버릭의 엇갈린 감정을 쌓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구스(Goose)의 아들로 등장하는 루스터(Rooster). 위플래쉬의 주연이었던 마일스 텔러가 연기했다.

여기에 <탑건:매버릭>은 AI, 즉 무인전투기와 드론이 조종사들을 대체하게 되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직접 위험한 운전을 하는 것보다 군대의 입장에서는 훨씬 효율이 좋은 선택인 것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군대가 전환되는 교차점에 매버릭이 있다. 더 이상 매버릭 같은 탑건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조종사가 매버릭일 수는 없는 것이니까. 매버릭의 능력치가 100이라면 다른 조종사들은 60~90 사이일 텐데, 무인 전투기와 드론 조종사들은 90~95의 성능을 일관되게 내게 해 줄테니까. 훈련이나 작전 도중 무고하게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되고.


그런 스토리 속에서 매버릭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연결다리가 되어 과거의 자신에 대한 용서와 루스터와의 화해, 구형 전투기와 차세대 전투기의 대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전환에서의 역할을 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잇는 매버릭

영화의 시작에서, 매버릭은 앞으로 나올 극초음속 전투기의 테스트 비행을 하고 있다. 이 전투기의 스펙이나 조종하는 모습은 사실 1982년에 나온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 <화이어 폭스>를 연상시킨다. 마하 5로 나를 수 있는 능력에 생각으로 미사일 등을 쏠 수 있는 능력 등이다. 하지만 탑건 이전의 영화긴 하지만 비행기의 모습은 모두 어설픈 특수효과였고, 그 몇 년 뒤 나온 <탑건>과 비교하면 어린애 장난 같은 수준의 영화긴 하다. <탑건>은 대부분 실제 촬영된 화면이었으니까.

하지만 <탑건:매버릭>에서는 <화이어 폭스>를 연상시키는 극초음속 비행기인 '다크스타'를 테스트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투기의 과거와 미래, 항공 액션 영화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연결시켜버렸다. <화이어 폭스>에서처럼 우주복 같은 옷을 입은 매버릭은 마하 5 정도가 아닌 마하 10을 넘겨버린다. 재미있는 점은, <화이어 폭스> 영화 내의 '화이어 폭스'라는 전투기는 60년대에 록히드마틴에서 만들어진 마하 3의 SR-71이라는 초음속 전투기에 대항해서 만들어졌다는 설정인데, <탑건:매버릭>에 등장하는 '다크스타'는 실제 록히드마틴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SR-72가 모델이다. 물론 테스트 중이라 톰 크루즈가 실제로 운전할 수는 없고 목업으로 만들고 SR-72가 운항하는 모습에 CG를 입혔지만, 서로 묘하게 얽혀있는 셈이다. 물론, 탑건은 <화이어 폭스>는 우습게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사실적으로 극초음속 비행을 묘사한다.

영화 내의 작전을 위해 미 해군은 F-18을 몰지만, 적군은 최신형인 5세대 전투기를 가지고 있다. 계곡을 통해 레이더를 피해서 접근해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현대 공중전에서의 대공미사일과 차세대 전투기와 공중전으로 싸워서 이길 확률은 극히 적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전작에서 몰던 F-14부터 F-18, 적군의 5세대 전투기까지 모두 나와서 어떻게 비행하고 어떻게 전투하는지, 그 실제 모습을 아주 제대로 보여준다. 과거의 유물과도 같은 전투기와 현재의 전투기, 미래형 전투기가 같이 공중전을 하는 셈.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간 조종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한다.


아날로그의 의미, 한계에 도전하다

영화는 내내 '아날로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매버릭이 가지는 노장의 힘부터, F-14가 낼 수 있는 한계치의 능력, 영화 촬영 자체가 보여주는 CG가 아닌 진짜 항공 액션이 주는 힘까지. 마치 아날로그가 가진 힘은 바로 이것이라고 보여주려 작정을 하고 만든 영화 같다. 톰 크루즈조차 영화 내의 작전을 하기 위해 비행하는 모습에서는, 그 한계치로 다다르는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단순히 아날로그에 대한 찬사나, 레트로 한 향수에 머무르지 않는다. 디지털이 효율을 추구해 능력의 최고치까지 끌어내는 것이라면, 아날로그는 그 한계치를 넘어 도전하고 성공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F-14와 F-18의 한계치를 넘는 매버릭의 비행, 톰 크루즈와 배우들이 연기자라는 한계를 넘어 도전해 성공해낸 모습, <탑건:매버릭>이 집의 디지털 모니터가 아닌 영화관이라는 아날로그적 체험만이 줄 수 있는 것의 최대치를 끌어올린 그 모습들 말이다. 탑건은 영화 안에서 뿐 아니라, 영화 밖에서도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해냈고 성공했다. 이 영화는 톰 크루즈의 커리어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으며 또 그런 찬사도 받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결국엔 디지털이 많은 것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조종사도 사라져 갈 테고, 영화관도 언젠간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아날로그의 한계를 보여주지 않았다. <탑건:매버릭>이 도전하고 성공했듯이, 디지털이 아직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아날로그는 보여줄 수가 있다. 톰 크루즈 자신도 매 영화마다 한계에 도전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조종사가 없어질 것이라는 상사의 말에 대해 매버릭이 돌아보며 그렇게 말하지 않은가.

"Maybe so, sir, but not today."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매거진의 이전글 <세브란스:단절> 신과 인간의 단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