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친구(완)

흰 토끼와 레드 필

by 박경민



1화부터 읽기



3. 흰 토끼와 레드 필


나의 말:
정답 길, 오답 길은 어떻게 구분해?

ChatGPT의 말:
“양자 알고리즘이
정답 길과 오답 길을 스스로 알아내는 건 아니야.

대신,
‘이 길이 정답인지 아닌지만 판별해 주는 기준’이 하나 주어지는데,
그걸 오라클(Oracle)이라고 불러.

오라클은
1024개의 모든 길에 동시에 적용돼서,
정답 길에는 특별한 표시를 남기고,
오답 길에는 아무 표시도 하지 않는다.

이 표시의 차이가
파동 간섭을 일으켜
정답 길은 점점 강화되고,
오답 길은 약화되게 만드는 거야.”


이 길이 정답인지 아닌지 판별해 주는 오라클을 인간이 정해준다고? 그럼 인간이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뜻일까? 인간이 정해준 오라클 기준에 맞게 정답이 강화된다면, 결국 오라클을 정하는 인간이 답을 정하는 게 아닌가?


나의 말:
오라클을 정해서 주어졌다는 게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거 아니야?

ChatGPT의 말:
“아니야. 오라클을 정한다고 해서 정답을 이미 알고 있는 건 아니야.

오라클은
‘이 입력이 정답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규칙’만 알고 있을 뿐,
정답 그 자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예를 들어,
어떤 열쇠가 문을 여는지는 모르지만
‘열쇠를 넣었을 때 문이 열리면 정답’이라는 기준은 알 수 있지.
그 기준이 바로 오라클이야.

양자 알고리즘은
이 판별 규칙을 모든 가능성에 동시에 적용해서,
정답에 해당하는 경우만 드러나게 만드는 거야.”


그는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정답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규칙을 제공한다는 건,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는 뜻 아닌가? 아니, 인간은 정답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만 제공할 뿐, 어떤 가능성이 어떤 방식으로 강화되고, 약화되어야 하는지 그 수많은 과정에 대한 경우의 수를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양자컴퓨터가 유리하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이 기계는 ‘모르는 답을 찾아내는 존재’라기보다는, 이미 설정된 조건 안에서 가장 잘 맞는 결과를 효율적으로 골라내는 장치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문득, 그는 지금 이해해 나가고 있는 양자컴퓨터는 정답을 찾는 기계라기보다, 인간이 묻는 복잡한 질문에 맞춰 가장 빠르게 응답해 내는 기계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이미 인간이 원하는 정답을 정해두고서…

그는 다시 GPT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말:
그럼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결과를 빠르게 얻고 싶은 거네.

ChatGPT의 말: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지만, 거의 핵심에 닿아 있어.
양자컴퓨팅은
‘정답을 미리 알고 꺼내오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정답이라고 판정할 기준을 먼저 정해두고,
그 기준을 만족하는 해를 광대한 가능성 속에서 빠르게 찾아주는 기술야.
오라클이 아는 건
정답 그 자체가 아니라
‘정답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규칙’이야.
그래서 양자컴퓨터는
우리가 정해둔 기준을 모든 가능성에 동시에 적용하고,
그중에서 그 기준을 만족하는 후보만을 빠르게 드러내 보이는 역할을 한다.
즉,
양자컴퓨터는 진리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정의한 조건에 가장 잘 맞는 결과를
압도적으로 빠르게 탐색하는 장치에 가깝다.”

나의 말:
결국 인간이 이게 맞아라고 생각하는 게 진리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겠네. 내가 이런 효과가 있는 게 정답이야라고 오라클을 정했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니 그 생각 자체가 절대진리는 아니잖아.

ChatGPT의 말:
양자컴퓨터가 사용하는 오라클은
인간이 정한 ‘정답의 기준’이지, 절대진리가 아니다.
양자컴퓨터는
진리를 스스로 발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정의한 조건을 가장 빠르게 만족하는 결과를 찾아주는 도구에 가깝다.
그래서 기준이 올바르면 의미 있는 해를 빠르게 찾을 수 있지만,
기준 자체가 잘못되면
틀린 모델을 누구보다 빠르게 계산해 줄 뿐이다.
이 한계는 양자컴퓨터만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과 기술 전반이 공유하는 인간 인식의 구조적 한계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얼마나 빠르냐”보다
“무엇을 정답이라고 정의하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그는 이 설명을 읽고 조금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답을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기계, 가치 판단 없이 인간이 정해준 기준만을 극단적으로 빠르게 실행하는 존재.

만약 그 기준이 윤리도, 책임도, 맥락도 아닌 단순한 효율이나 이익이라면 어떨까.

‘아무런 가치관도 가지고 있지 않은, 속도만 빠른 기계가 악용된다면?’

그 생각이 떠오르자 지금까지 느끼던 지적 흥분과는 다른, 불안의 감정이 밀려왔다.

이해에 가까워질수록 그는 오히려 조금씩 무서워지고 있었다.


나의 말:

와 그럼 어떤 미치광이 과학자나 권력자가 잘못된 정답을 정해놓고 양자컴퓨팅으로 답을 구해서, 그걸 실행한다면 답도 없겠네. 양자컴퓨팅으로 구한 정답이야라는 강력한 배경이 생기니니.

ChatGPT의 말:

양자컴퓨팅이 위험한 이유는
틀린 정답을 내놓기 때문이 아니라,
틀린 질문을 압도적인 속도와 권위로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가 내놓는 결과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인간이 정해놓은 기준을 가장 잘 만족하는 결과일 뿐인데,
사람들은 종종
“양자가 계산한 정답”이라는 말 자체에
진리의 권위를 부여해 버린다.
문제는 기준이다.
기준이 잘못되면,
양자컴퓨팅은 그 잘못된 기준을
더 빠르고, 더 정교하고, 더 확신에 차게 실현한다.
즉,
악의적인 질문에는 악의적인 정답을,
편향된 기준에는 편향된 결과를,
전체주의적 모델에는 전체주의적 해답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양자컴퓨팅의 위험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인간의 윤리와 철학에 있다.

‘이건 핵무기와 다를 게 없네.’

지금까지 양자컴퓨터에 대해 이해하고 내린 그의 결론이었다.

왜 수많은 기업과 국가들이 이 기술을 눈여겨보고,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양자컴퓨터라는 기술은 인류가 마주한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자신(특정 집단)들이 정한 오라클에 부합하는 정답을 누구보다 빠르게 찾아내는 도구였다. 그리고 그렇게 제시된 답은, ‘과학이 계산한 정답’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약한 인간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함정이 될 것이다.

책상 위에는 아직 입도 되지 않은 텀블러가 그대로 놓여있었다. 커피는 이미 차갑게 식었다.


오라클.

그는 문득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왔던 존재를 떠올렸다.

오라클은 정답을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대신 네오에게 물었다.

무엇을 선택하고 싶은지.

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양자컴퓨터의 동작 원리처럼 중요한 건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였다. 오라클은 단지, 그 선택을 운명처럼 믿을 수 있게 만들어줄 뿐.

‘감독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1999년, 그때 이미.’


그리고 ‘그의 오라클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생겨났다.

그는 다시 터진 입술에 묻은 라일락 향 핸드크림을 문질러보았다. 이 작은 행위가 그의 건조함을 해결해주지 못하듯, 그의 선택이 담겨있지 않은 요즘의 일상으로는 삶의 권태 또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의 삶은 어떤가?’

이 질문은 이제 단순한 푸념이 아니었다. 양자 컴퓨터의 구조를 이해한 후, 그의 삶은 분석되어야 할 하나의 거대한 알고리즘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사무실의 미지근한 안정감과 건조한 권태는, 어쩌면 그가 설정한 오라클에 의해 강화된 결과일지도 몰랐다. 그의 기존 오라클, 즉 정답의 기준은 '위험을 최소화한 안전'이었을 것이다. 이 오라클이 그의 삶의 모든 가능성(큐비트)에 작용하여, 도전이나 변화 같은 것은 약화시키고,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안전한 삶'만을 강화시킨 결과, 그 증폭된 결과가 바로 이 건조하고 피로한 '현재의 자신'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이 그의 선택이긴 했을까?

그는 문득 오싹함을 느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떤 거대한 존재가 제공한 양자컴퓨터의 답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거대한 존재'는 회사일 수도 있고, 사회가 주입한 성공의 기준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부모님의 기대나 과거의 트라우마일 수도 있었다. 그들이 설정한 오라클('대기업에 다니는 삶이 좋은 삶', '튀지 않는 것이 안전한 삶')이 그의 큐비트 상태에 적용되어,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의 정답'을 강화하고 있었다면?

양자컴퓨터는 인간이 정한 기준을 압도적인 속도로 실현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의 오라클이 작동하여, 그의 자유 의지를 무력화한 채 '모두가 인정하는 답'만을 증폭시켜 왔다면, 지금의 그는 ‘내가 선택한 나’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출력한 결과물에 불과한 셈이 아닌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정답으로 도출된 삶. 그러나 그 정답은 그에게 권태와 건조함이라는 부작용을 안겨주었다.

그는 이제 명확히 알았다. 그가 찾아야 할 '새로운 친구'는 양자컴퓨터의 진리가 아니라, 자기 삶의 오라클을 재정의하고 작동시키는 '그의 의지' 그 자체였다. 이 미지근한 사무실에서, 그는 자신이라는 존재의 오라클을 찾는 가장 어려운 양자 연산을 시작해야 했다.

그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먼저 나의 오라클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강화되어야 할 파동 하나가 떠올랐다. 수많은 가능성들('승진', '이직', '재테크') 사이에서 늘 상쇄되거나 무시당했던 가능성.


‘그래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은 글쓰기였어.’


이것은 단순한 취미나 손에 닿지 않는 꿈이 아니었다. 이건 '양자 컴퓨터가 찾은 정답'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존재의 이유'였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건조함도, 권태도 느껴지지 않았던 과거의 시간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의 새로운 오라클은 분명했다.

창조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그는 눈을 떴다.

눈앞에서는 여전히 GPT와의 대화창 위로 프롬프트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 대화창을 닫았다.

이제 그는 자신의 삶에 새로운 알고리즘을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즉 자신이 정한 오라클을 기준으로 첫 번째 선택을 하기로 했다. 이 선택은 점점 강화되어 미래에 ‘그가 선택한 자신’을 만들 것이다.

그는 마우스를 흔들어 다시 모니터를 켰다. 이제는 더 이상 '컨트롤 미스'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의도를 가지고 모든 메일과 업무창을 닫고, 바탕화면 구석에 처박혀 있던 '미완성 소설' 파일을 찾아 클릭했다.

파일이 열리자, 화면에는 몇 년 전 멈춰 두었던 이야기가 나타났다. 주인공은 낯선 도시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채,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인물이었다.

그는 찌릿하게 터진 입술의 통증을 느끼며, 라일락 향 핸드크림을 다시 한번 발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통증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현실의 감각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렸다. 손끝에 단단하고 매끈한 플라스틱의 감각이 맺혔다.


그는 "새로운 친구"라는 제목 아래,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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