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Man (1)

피아노맨

by 박경민


1화. 피아노맨


토요일 밤 아홉 시, 바 벽면의 시계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숫자를 바꿨을 때 나는 비로소 그가 영영 오지 않을 것임을 실감했다. 그가 늘 앉던 자리에는 그가 남긴 유쾌한 웃음 대신, 손님들이 올려둔 형형색색의 꽃다발만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의 마지막 연주를 시작하려 한다.


​건반 위에 손을 올리자, 손끝에 닿는 차가운 상아의 감촉이 낯설게 느껴졌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여섯 달 동안 나는 이 바에서 같은 건반을 수없이 눌렀다. 술에 취해 박자를 놓치는 밤도 있었고, 손님들의 웃음과 싸움 소리에 묻혀 연주가 흩어지던 날도 있었다. 그래도 아무도 나를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았다. 틀린 음을 지적하는 사람도, 더 잘 치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그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술잔을 들어 나에게 손짓했고, 나는 그의 따뜻한 미소와 큐 사인을 시작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의 큐 싸인이 없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이 감촉이 끔찍하게 싫어졌던, 내 삶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한지 깨닫게 된 순간. 그때 절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이는 내 동기였던 '윤'이었다.


​윤은 내가 평생 벌어도 사지 못할 브랜드의 슈트를 입고 연습실에 나타났다. 그가 사용하는 악보집에는 흔한 연필 자국 하나 없었지만, 그가 건반을 누르는 순간 터져 나오는 선율은 내가 밤을 새워 분석하고 피를 토하듯 연습해 온 해석을 비웃듯, 완벽했다. 나는 곰팡이 냄새나는 자취방에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예술의 고결함을 붙들려 애썼지만, 윤은 수업이 끝나면 부모님이 보내준 차를 타고 조용히 사라졌다.

​결정적인 순간은 학기말 연주회였다. 무대 뒤에서 대기하던 나는, 내 앞 순서였던 윤의 연주를 들으며 깨달았다. 몇 날며칠 밤을 새워가며 가다듬은 손과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손은 같은 건반 위에 있어도 다른 곳을 향한다는 사실을. 가난한 나의 음악은 그저 비명에 불과했지만, 그의 음악은 찬란한 축복이었다.

그날 나는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번호가 불리고, 스태프가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뒷문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내 가난한 재능이 그의 화려함 곁에서 초라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피아노 덮개를 단두대처럼 닫아버렸다. 도망치듯 입대를 했고, 제대 후에도 음악과는 상관없는 공사 현장과 물류 창고를 전전했다. 스물일곱이 되던 해, 낯선 동네로 이사를 오고 짐을 풀던 날 밤, 먼지 쌓인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갈 곳 없는 마음을 이끌고 무작정 들어선 곳이 바로 이 바(Bar)였다.

동네 구석에 위치한 바는 조용한 재즈가 흐르고,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고독한 공간이 아니었다.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웃음, 서로의 말을 가로채는 대화들이 엉켜 있었다. 고단한 일과를 마친 후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 매일 같은 모습의 하루를 조금은 특별하게 흘려보내고 싶은 얼굴들이 테이블을 채우고 있었다.

바 뒤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 바텐더가 서 있었다. 그녀는 손님들의 말을 반쯤만 듣는 얼굴로 잔을 닦다가, 필요한 순간에만 정확한 질문을 던졌다. 어떤 사연에도 고개를 크게 끄덕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았다. 마치 이곳에서는 누구도 완전히 설명될 필요가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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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시작해봅니다. 하고 싶었던, 미루고 미뤘던. - 비판적인 시선, 따뜻한 마음으로 아니 어쩌면 비판적인 마음, 따뜻한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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