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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그

포근함

by 박경민


저녁이 되자 조용히 어둠이 스며들더니 창문 밖 모든 것들의 색을 바꿔놓았다. 해가 있을 때는 온통 하얗고 눈부신 세상이었으나, 빛이 사라지고 나니 오로지 까맣고 어둡기만 하다. 만약 오늘 밖에 나가서 카스테라보다 폭신했던 눈을 만져보지 않았다면,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입 안으로 떨어지는 차가운 눈송이를 맛보지 않았더라면, 온 세상을 덮고 있는 하얀 눈은 실제가 아니라 빛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저 바깥에 아직 흰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어둡고 추운 겨울밤에 감사하게도 온기로 채워진 따뜻한 집 안에 존재하고 있다. 창밖에서 겨울밤 속 홀로 있는 존재들은 과연 추울까? 갑자기 깜깜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무섭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거실로 자리를 옮겨 집 안을 밝히고 있던 실내등을 껐다. 창 밖의 까만 어둠이 실내등이 꺼지자마자 순식간에 집 안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지만, 쉬지 않고 홀로 떠드는 티비가 있어 온 집안을 어둠으로 채우는 것에는 실패하고 만다. 늦은 밤 보지도 않는 티비를 켜놓는 경우가 많은데 잠들기 전까지는 어둠 속에 있기 싫은 '어떤 마음' 때문이려나 하고 생각해 본다. 불을 끈 후, 거실 한가운데로 가서 눈을 감고는 명상을 하듯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명상이라는 것이 이따금씩 궁금하기는 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시도해 본 적은 없다.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편인데, 과연 명상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평소 하나의 생각에 골몰하거나 반대로 별생각 없이 멍 때리며 자유로운 상태로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언젠가 듣기로 명상이란 잡생각을 떨쳐버리고 생각을 멈춘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받아들인 후에 흘려보내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평소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간이 명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건 섣부른 판단이겠지? 나는 아직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거나,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거나 하는 느낌까지는 못 받아 봤으니까…. 그런 모습을 상상해 보긴 했었다. 명상에 빠져있는 내가 조용히, 가만히 앉아 평화롭고, 자유롭게 존재하는 모습. 언젠가는 그런 날을 경험할 것만 같은 확신이 든다.


눈을 감고 있으니 그녀가 욕실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조심스레 내 앞을 지날 때 좋은 향도 함께 지나간다. 정수기로 가서 따뜻한 물을 컵에 받는 소리가 들린다. 물을 마시고는 컵을 들고 내 앞을 다시 지난다. 아직 사라지지 않았던 싱그러운 향기가 조금 짙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녀가 그녀의 물건들이 놓인 곳에 자리를 잡고는 작은 손가방에서 ‘나는 도저히 알지 못하는’ 화장품을 꺼내 바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화장품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난 보통의 경우 까먹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거나, 아이들이 쓰는 바디로션을 조금 짜내어 얼굴에 문지를 뿐이건만….

내가 피식 웃는 것을 눈치챈 그녀가 묻는다.

“왜요?”

“아무것도 아니야”

난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한다. 내게 떠올랐던 모습은 어느 날엔가 이런저런 용도의 화장품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던 그녀에게 ‘내 얼굴 한 번 만져봐 봐. 어때 탄력 있지?’라고 물었을 때, 내 뺨을 만지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던 그녀의 귀여운 표정이다. 난 그 표정을 보고는 화장품은 다 화학 제품이라 피부에 좋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말을 더했다가 한 동안 잔소리를 들어야 했었다. 지금 이 순간 다시 화학 제품 타령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일 것이므로 목구멍 속으로 다시 밀어 넣는다.


잠시 후 눈을 뜨고는 옆에 있던 리모컨을 잡아 여태껏 쉬지 않고 떠들고 있던 TV를 껐다. 순간 온 집안이 조용해지는 것을 느낀다. 내 주위에 머물며 호시탐탐 TV 앞 공간까지 노리던 어둠이 바로 그곳을 점령해 버리지만, 곧 그녀가 킨 작은 조명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금 창밖으로 물러난다. TV와는 다른 색깔의 빛이 은은하게 거실을 밝힌다. 저 조그마한 불빛 하나가 이 공간을 조금씩이나마 가득 채운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나는 가부좌를 풀지 않은 상태로 그녀의 이름을 살며시 부르며 양팔을 벌렸다. "상희야~" 내 부름을 들은 그녀는 옅어진 어둠 속에서 가볍게 웃음 지은 후 장난스럽게, 한껏 신이 난 걸음걸이로 다가와 나를 마주 본채 내 품에 안긴다. 안긴다기보단 가부좌를 튼 내 위에 올라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려나? 그녀는 두 다리로 내 허리를 감싸고, 두 팔로는 내 목을 감싼 채 머리를 내 오른쪽 어깨에 기댔다. 내 양쪽 허벅지와 엉덩이에 그녀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이 느껴지지만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 난 벌렸던 양팔을 오므리며 그녀의 등과 허리를 감싸 안는다. 이렇게 안았을 때, 혹은 안겼을 때 느껴지는 감정, 그 감정이 솟아올라 마음이 따뜻해지며 저절로 좋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좋다"

손바닥과 손끝으로 그녀의 체온이 느껴진다. 내 목덜미에 그녀의 숨결이 느껴진다. 내 코를 간지럽히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느껴진다. 나는 양쪽 어깨와 머리 그리고 양팔을 사용해 그녀를 좀 더 힘주어 안는다. 나를 감싸고 있는 그녀의 팔과 다리에도 조금 더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혼자가 아니라는 인식이 머리와 가슴속에서 피어올라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포근함?

이렇게 서로를 안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포근함이라고 하는 걸까?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에서 쭈쭈바를 함께 먹다가 손석구가 전혜진에게 말한다.

“안아줄까요?”

“뭐, 뭐라는 거야. 당신이 날 왜 안아!”

“힘드니까.”

“내가 힘들다 그랬어? 그리고 내가 힘든데 당신이 날 왜 안아!”

“안으면..... ", "포근해.”

“아이씨 아니 왜 말을 그렇게 해요? ‘안으면 포근해.’ 붙여서 말하면 되지 왜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그렇게 시간을 끄냐고."

“내가 그래요?”

그리고는 손석구가 근처에서 놀고 있던 아이를 불러서 안아준다. 아이도 폭하고 손석구에게 와서 안긴다. 손석구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티벳여우 눈빛으로 전혜진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더한다. (안으면...)

“포.. 해.”

그 장면, 내가 좋아하는 그 장면이 순간 떠오르며 지금 이 느낌이 포근함이구나라고 생각해 본다.




드라마 속 대화처럼 힘든 순간에는 정말 이 포근함이라는 것이 필요할 것만 같다. 이렇게 서로를 안고 있으니 무어라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항상 옆에서 응원하고 있다고, 힘든 일은 금방 지나가고 다시 웃을 수 있을 테니 괜찮다고 말해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이래서 사람들이 프리허그를 하는구나'라는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프리허그를 통해 기꺼이 자신의 품을 내어줬던 이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은 왜 누구든지 와서 안기라고 품을 내어주었던 걸까? 아마도 차갑고 어두운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들이 따뜻한 품에 안겼을 때 느꼈던 어떤 위로를 누군가에게 전해주기 위해... 길가에서 스쳐 지나가는 우리 모두는 빛나야 할 필요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품을 내어줬을 때 그것이 이 세상을 조금은 따뜻하게, 아주 조금은 더 밝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라 프리허그 해주는 사람을 봐도 절대로 다가가지 않을 부류의 사람이지만, 이렇게 포근함 가운데 있자니 '프리허그를 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 혹은 그녀에게 다가가 꼭 힘주어 안아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저 작은 조명처럼 이 세상을 조금은 따뜻하게, 조금은 밝게 해 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아 힘주어 안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함께 서로를 껴안고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네가 있어 고맙다고 말해줘야겠다.

근데 그전에 이제 다리가 슬슬 저리고 엉덩이가 아프니 우선 좀 내려가달라고 말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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