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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나무 2 - 나뭇잎과 책갈피

by 박경민


전편 : 나무 1 - 내성적인 아이


나무 2 - 나약함


나는 요즘 느끼고 있는 나의 나약함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괜찮은 직장, 좋은 급여, 안정적인 삶이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고마웠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마냥 지루하며 가끔씩은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답답하기만 한 현 상황에 대해 그녀에게 말하려 하고 있다. 과연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왜? 무슨 일 있어요?”

그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며 미간에 작은 주름이 잡혔다. 그녀의 두 눈이 작은 걱정이 깃든 눈망울로 변해있다. 이런 미묘한 표정의 변화만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나눌 수 있다는 게 순간 신기하게 느껴진다.

나는 크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듯이 한번 활짝 웃어주었다. 내가 웃는 얼굴을 하자 그녀도 같이 미소 짓는다. 그렇게 웃는 얼굴을 짓자, 웃는 얼굴을 보자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그리고 마침 그 순간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그녀와 나 사이를 지났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이 선선한 바람으로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하지만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로 인해 그 생각은 뻗어 나가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

“대학 때는, 모랄까, 확실히 모두가 좀 더 개인주의적으로 변했던 거 같아. 함께하고 있긴 하지만 20살 이전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성향이 커진 느낌. 하긴, 전과는 다르게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다음 단계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각자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본인에게 맞는 옷을 찾아야 하는 시기이긴 하지. '나'라는 개인으로, 한 명의 사회인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를 준비하는 기간이니까,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 시간표도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짜고, 수업도 내게 필요한 것들을 골라서 들어야 하고, 혼자서라도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맞는 친구들이 있어서 가끔 수업도 같이 듣고, 밥도 먹고, 웃고 떠들고 전혀 문제가 되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지금 있는 곳은 말이야.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무언가 좀 더, 아니 조금보단 많이 심해. 그동안 겪어 본 사람들보다 더 개인적이라기보단… 배타적이라고 해야 하나, 이기적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서로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서는 끈끈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맞지 않는 사람’으로 약간… 좀 힘들게 대하는 것 같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문제에 대한 원인이 나 스스로에게 있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결국 내 성격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저절로 씁쓸한 표정이 지어졌다. 아니 내 성격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버티고 있는 요즘의 시간들이 문제일 것이다.

“나는 말 수가 적고, 내성적이고, 약간 차가운 면이 있으니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경우에 ‘맞지 않는 사람’에 속하거든."

나는 내 나약함을 가리려 그럴듯한 변명들을 그녀에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도 원래 함께 일하면서 잘 지내던 사람들이 있었어.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서 몇 개월간 모여서 신입 사원 교육도 같이 받고, 부서 배치 후에 어리바리한 시절을 얼래벌래하면서 함께 적응하던 동기들. 그리고 신입 사원이라고 일이며, 회사 생활이며 조건 없이 챙겨주던 선배들. 그리고 일 배우면서, 또 이슈들을 함께 해결하면서 친해진 여러 사람들. 그렇게 나름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적응해서 잘 다니고 있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가 인수합병되면서 전배를 가게 된 거야. 새로운 곳에서 적응을 했지. 근데 또 일할만하다 싶어지면 조직이 합쳐졌다가 쪼개지고, 또 쪼개졌다가 다시 합쳐지고. 맡은 업무도 여러 번 바뀌고, 또 그럴 때마다 계속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지금은 예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는 다 흩어져버린 채 혼자가 되어버린 느낌? 물론 지금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몇 년 동안 함께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 거지”

이제 조금은 차가워진 커피를 들여다보았다. 한 모금을 입 안에 담자 커피가 뜨거웠을 때보다 조금 더 쓴 맛이 나는 것 같다. 뜨거울 때는 보이지 않았던 커피 찌꺼기들이 바닥에 동그랗게 모여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커피라는 것은 저 바닥에 쌓인 찌꺼기일까? 아니면 갈색빛이 나는 이 물인 걸까?

“어쨌든 회사라는 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일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거긴 한데. 근데 난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또 그들에게 나를 이해시켜야 한단 말이지. 말 수가 적고, 내성적이고, 약간 차가운 면이 있는 나를. 근데 이제는 그게 안 되는 거 같아.”

전처럼 내가 좀 모자란 모습이 있어도 웃어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는 건지, 내가 더 이상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는 상태인건지를 따져본다면 아마도 후자가 맞을 것이다. 제대 후 확률통계론 수업 시간에 마음먹었던 '엔지니어'라는 옷, 그 옷을 입기로 결정하고 난 후 20년이 흘렀다. 이제 나는옷이 해지고 남루해져 더 이상 입고 싶지 않게 된 것일까?

“지금 나에게 회사는 기본적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곳이거든. 내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그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종이 아닌, 명확히 주어진 일이 있고, 그걸 처리하면 되는 곳.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범위에서 적절하게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예나 지금이나. 근데 전에는 그런 나여도 충분히 괜찮았었는데, 내가 모난 부분이 있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내가 생각하고 있는 회사일, 문제를 해결하거나, 무언가가 제대로 동작하게 만드는 일, 그걸로는 부족한가 봐. 해야 하는 업무를 해내는 것 이외에 무언가 다른 것들을 요구하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어”

“음. 어떤 식으로요?”

그녀는 부드럽게 걱정을 담아 내게 다시 물었다.

“모르겠어. 막 대놓고 괴롭히거나 그러는 건 아니니까. ‘저 사람은 왜 저러지?’ 혹은 ‘네가 그렇지 모’ 이런 느낌이 들게 한다고나 할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 특정 몇 명만 실제로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고, 나머지는 그냥 방관하는 건지, 아님 모두가 나를 그런 식으로 여기고 있는 건지. 어쩌면 그런 감정들은 자격지심 같은 것일 수도 있지. 피해망상이거나. 어쨌든 그런 기분들 때문에 내 성격이 다시 문제가 된 거야. 내가 내성적이지 않고 남들과 쉽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기분이 드는 상황을 겪지 않았을까? 서로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혹은 가볍게 다가가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나는 내게 함께하자고 하는 이들에게 ‘??’ 이런 대응을 하는 사람이라 이제는 어디에도 '맞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안에서 정리되지 않았던 답답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조금씩 체계화되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나의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붙잡고 있던 생각과 감정들이 정리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무엇인지도 모르는 답답함을 가지고 계속해서 불행한 시간을 보내야 했을 테니까.

“그냥 내가 가진 모습만으로는 안 되는 걸까"

"그냥 나 말이야. 꼭 타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거나, 거기에 맞추는 노력 같은 걸 해야 하나? 그러면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그걸 정말로 원하나?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시간들을 나는 언제까지 버티어 낼 수 있을까? 어딘가에, 누군가는 그냥 내 모습 그대로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곳이 있지 않을까?”

그녀는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무 3 - 나뭇잎과 책갈피


나는 내 안에 있던, 가슴 한 구석에 답답하게 쌓여 있던 이야기를 끝냈다. 비록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진 듯했다. 그렇게 약간은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눈길을 밖으로 돌리니 캠핑카의 창문이 하나의 그림처럼 평화롭고 한가로운 주말의 한 때다. 나는 투명하고 따스한 가을의 햇살, 높고 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초록의 잔디밭과 그곳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러다 공원 한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를 바라보았을 때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눈길을 돌리고는 그 생각을 붙잡아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기 저 나무 말이야. 커다란 나무

나는 캠핑카 창 밖으로 보이는 가장 큰 나무를 가리켰다. 아주 커다란, 눈에 보이는 풍경 중에 가장 높고, 큰 은행나무였다.

“처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때 말이야. 뿌리는 땅 밑으로 단단히 다지면서 아래로 자라고, 줄기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으며 위로 자라면서 시작했겠지.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새로운 가지가 나고, 그곳에서 새 잎이 돋아 났겠지. 단단한 뿌리와 튼튼한 줄기는 여전히 전과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거야. 아주 성실하게 말이야. 뿌리는 땅을 단단하게 붙잡고서 밑으로, 밑으로 영양분을 찾아 자라나고, 줄기는 더 높이, 단단하게 자라기 위해 몸통을 더 튼튼하게 키우는 거지,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하지만 새로 돋아난 잎들은 다른 종류의 일을 해야 해. 최대한 빈 곳을 찾아서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야 하지.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받아야 하니까.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자기를 지탱하고 있는 곁가지에서도 멀어져야 하는 거지. 그리고 그런 나뭇잎들은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굉장히 독립적인 개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서로 멀리 떨어져서, 각자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내야 햇빛을 더 잘 받을 수 있으니,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것이 성장과 생존에 더 유리한 거지. 그리고 나는 그런 나뭇잎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나뭇잎이라면 난 내 할 일을 위해, 뿌리와 줄기와는 다른 성향을 가지고 그들에게서 멀어진 채 햇빛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지내야 하는 거잖아. 비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불안해 보일지 몰라도,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고, 결국 그게 나무라는 내가 속한 집단을 위해서도 맞는 일이 테니 말이야. 그런데 자꾸 뿌리와 줄기는 멀리 뻗어가지 말고, 위험하니까 안으로 뭉치라고만 하는 상황인 거 같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나는 나뭇잎인데 말이야.”


“내가 나무 제일 높은 곳에서 나를 뽐내고 싶거나, 뿌리나 줄기가 하는 일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고 싶은 건 아냐. 그냥 나뭇잎으로써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찾아 뻗어 나가고 싶은 거고, 그게 결과적으로 커다란 무리나 중심과는 멀어지는 결과를 낳는 것뿐이지. 그런데 자꾸 커다란 무리에 속해야 한다고, 가운데로 와서 좀 더 안정적이고 단단하게 있는 것이 옳다고 말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나는 나무 안쪽으로, 중심으로 갈수록 그늘에 가려지고, 햇빛을 못 받게 될 텐데 말이야.”

“내가 내 본모습을 버리고 다른 이들이 원하는 대로 커다란 뿌리나 단단한 줄기의 역할을 해야 하는 걸까?”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난 그녀의 얼굴을 한번 살펴보았다.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 나의 말과 나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나는 밖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달린 나뭇잎들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며 한번 더 생각해 보았다.

“음. 저 은행나무 말이야. 저렇게 커다랗게 자랄 수 있었던 건 각자가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 뿌리, 줄기, 잎사귀가 각자 자기의 역할과 다른 이의 역할을 충분히 서로 이해하고 인정해 줬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크고 아름답게 자랄 수 있었겠어? 뿌리는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땅을 꽉 붙잡고 버티면서 양분을 흡수하고, 줄기는 태양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도록 곧게, 그리고 바람에 부러지지 않을 수 있도록 단단하게 자라주고, 나뭇잎은 밝고 따사로운 햇살을 찾아서 조금의 햇빛이라도 더 받기 위해 넓게 또 높게 빈자리를 찾아 퍼져나갔으니 저렇게 멋진 나무가 된 거잖아. 뿌리, 줄기, 잎으로 나뉘어 있다 해도 결국 하나의 나무인 거야. 나무 입장에서 생각하면 뿌리와 줄기와 잎은 각자가 자기 역할에 맞는 일을 충실히 해내야 하는 거지. 저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너무 불안해 보여 나처럼 단단한 줄기가 되면 좋았을 것을. 저 뿌리는 땅속에서 얼마나 갑갑할까? 빛도 없이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이런 생각으로 중간에서 나뭇잎이 밖으로 뻗어 나가지 못하게 했다면 나무는 저렇게 크고 아름답게 자라지 못했을 거야. 중간에서 뿌리가 불쌍해 보인다고 땅 밖으로 나오게 했다면 저 나무는 금방 말라죽고 말았을 거고."


"어쩌면 중요한 건 나무가 되어서 생각하는 것이지 않을까?”

“나무가 되어서 생각하는 거요?”라고 내가 했던 말로 되물어왔다.

“응, 나무 입장에서 뿌리는 이렇고, 줄기는 저렇고 또 나뭇잎은 이런 것이다를 모두 알고 있다면 말이야. 각자의 역할이 다르니, 모두가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모습으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잘 해내야 결국 우리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아는 거지."

"..."

"좀 더 크고 넓게 시야를 가져갈 수 있다면 본인의 처지만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을 수 있잖아. 서로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뭇잎을 그냥 나뭇잎으로 존재하도록 인정해 줄 수 있는 거지”

그녀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야기했다.

“서로 간의 이해라면... 나와 다른 생각과 역할을 가지는 존재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의 생각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맞춰가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은데... 내 입장을 이야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이해해해 줄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다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음. 역시 말이 없고 내성적인 내 성격이 문제가 되는 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결론 있었으나 그녀를 통해 듣고 나니, 그리고 내 입으로 내뱉고 나니 몹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 순간 그녀가 손을 뻗어 내 오른손을 잡아주며 다시 이야기했다.

“아니지. 분명히 나무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을 거예요. 회사 안에서건, 오빠의 인생에서건. 그게 '신'일 수도 있는 거고. 난 오빠가 나뭇잎이라면, 나뭇잎으로 충실히 살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굳이 뿌리나 줄기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바라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요? 한 번뿐인 인생인데. 그냥 나뭇잎으로 그 역할에 충실하면 언젠가는 결국 저렇게 멋진 은행나무가 되어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꼭 저 나무에 달린 나뭇잎 이어야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가을이 깊어졌을 때 아름답고 노란 낙엽이 되어 누군가의 책갈피가 되어 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깐 그냥 나뭇잎으로 살아도 좋지 않을까요? 최대한 근사하게.”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조금 전 느껴졌던 답답함이 금세 사라지며 다시금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맞는 말이다.' 난 마음이 놓였다. 그녀가 나의 나약함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굳이 나무의 입장을 생각할 것도 없다. 난 그냥 내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나무에 매달려서 살아가는 나뭇잎이던 나무에서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나뭇잎이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뭇가지에서 시냇물로 떨어져 물길을 따라 큰 강으로 나가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아리따운 여고생이 가장 좋아하는 책의 근사한 구절을 기억하게 해주는 책갈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땅에 떨어져 추운 겨울을 견디다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한들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녀가 다시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너무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 내가 안아줄게요.”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감싸 나를 안아주었다. 그녀의 머리가 내 오른쪽 어깨 위에 닿았다. 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또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가, 그녀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가슴 한가운데서 피어난 안도감 같은 감정이 조금씩 퍼져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머리에 가볍게 입 맞추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래. 고마워. 누군가의 책갈피가 되는 것도 멋진 일이겠네."

회사에서 내내 우울하더라도 이렇게 주말에 만나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최대한 근사하게' 살려면 20년 전에 결심한 '엔지니어'가 아닌, 해야 하는 것을 해낸 후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미루고 미뤘던 그 일을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준비해야겠다는 결심도 섰다.


그렇게 나는 '확률통계론'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확률통계론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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