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마음 한 구석에는 '나는 어떤 어른이 되는 것일까?'라는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군대를 제대 후 복학하여 2학년 과정을 마치고 그다음 학기, 3학년 1학기에는 여러 학년의 수업을 동시에 들어야만 했다. 신입생 신분으로 군대 가기 전 2학년 1학기까지 대학생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으므로(첫 번째 받아 든 학점은 2.0으로 굉장히 훌륭한 방어율이라며 놀림을 받았었다.)결과적으로 3학년 1학기에는 1학년 과목부터 3학년 과목까지 한 학기에 몰아서 수강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해 버렸다.
그리고 앞선 네 번의 학기를 거치면서 같은 과목을 재수강하고, 계절 학기를 듣고, 삼수강을 해보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 있는데 해당 과목에 대한 나의 이해 정도와 학업 성취도는 내가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하는지 보다 가르치는 교수님이 누구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교수님의 강의는 수강신청부터가 쉽지 않아서 수강신청 날에는 수강신청 시스템 접속이 가장 중요하며(학교 근처 PC방이 명당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수강을 원하는 교수님들의 과목 신청 순서까지 전략을 잘 짜는 것이 또한 중요했다. 결국 그 하루, 수강 신청 첫날, '시스템에 접속하는 순서가 한 학기의 학점과 학업 성취도를 결정한다'라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맞이한 3학년 1학기에는 필수 전공과목 '확률통계론'이 있었다. 전자전기컴퓨터를 배우는데 왜 확률통계라는 과목이 필수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필수 과목이니 피해 갈 수는 없었고, 그렇다면 과연 어떤 교수님에게 수업을 들어야 좋을지파악하기위해 과 게시판을 살펴보았다. 관련 게시글을 찾아서 쭉 훑어보니 해당 과목은 어떤 교수님에게 수강을 하는지에 따라 결과의 차이가 극심한 과목으로 정평이 나있었으며, 결과적으로 교수님에 대한 호불호도 엄청 심했다. 그리고 난 확률통계 과목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호하는 교수님의 강의 수강에 실패했다. 똑같은 등록금을 내는데 내가 원하는 수업을 못 듣는다는 사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불호의 비율이 큰, 매우 큰 다른 교수님의 수업을 신청해서 학점을 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즈음 마음 한 구석에는 '나는 어떤 어른이 되는 것일까?'라는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졸업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난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무엇을 하면 좋을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그리고 정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그런 고민들을 안고 있다 보니 웬만한 명강의가 아니면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또한 쉽지 않았다.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인지 알 수 없었고, 집중을 해서 들어도 내용을 이해하면서 진도를 따라가기에는 기본적으로 난이도가 높고 속도도 빨랐다. 게다가 원하는 교수님으로 수강 신청에 실패한 확률통계 수업은 소문대로 집중도 어려웠고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다. 강의는 교재에 나와 있는 이론들을 그저 전달해 주는 것뿐이라 느껴졌으며 그마저도 교수님 본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섞어가면서 진행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내게는 전혀 흥미롭지 않았기 때문에 귀 기울이다가도 어느 순간 딴생각으로 빠지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5월의 어느 날, 수업 중 칠판에 예제를 풀어가면서 설명을 하고 계셨는데 문제 풀이가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썼다, 지웠다, 풀었다, 멈췄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나도 어느새 흥미를 잃고 교실 건너편 창 밖에 흔들거리는 푸르른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의 움직임, 창가에 드리워진 햇살과 그림자들을 살피고 있었다. 스무 명 조금 넘어 보이는 학생 중 칠판에 집중하며 교수님이 끙끙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는 한두 명 정도 되었을까?
`어떻게 교수가 수업 준비도 제대로 안 하고 강의를 하느냐?`라는 과 게시판의 비판 글이 떠올랐다. 그리고 댓글로 교수님의 무책임함과 무능력함을 성토하는 글들이 쭉 달려있었다. 몇 년 동안 같은 과목을 가르치면서 몇 번이나 풀어보았을 교재의 예제 문제 앞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런 비난을 받을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당 게시글에는 이런 댓글도있었다.
`그래도 교수님이 정말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으시고 걱정도 많이 해주시는 분이다. 정신 차릴 수 있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신다`
그리고 그 밑으로 `나는 대학에 수업을 듣고 배우러 오는 것이지 잔소리를 들으려고 다니는 게 아니다`라는 다른 이의 댓글도 달려있었다.
풀이를 하고 있던 문제가 영 풀리지 않는지 풀이를 포기하고 수강생들에게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에코폴리테크니크'를 다닐 때 거기 학생들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아냐며 본인이 다녔던 학교와 그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또 수업은 안 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나마 수업에 집중하고 있던 한두 명의 학생도 책상 위에 있는 책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차라리 교재를 보고 독학으로라도 이해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교수님은 그런 분위기에 더욱 답답하고 화가 나는지
"너네 지금 모 하고 있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다른 때보다 언성이 높고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다. 원래 목소리가 하이톤이긴 했지만...
"너희들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어?"
"너네 지금 공부 제대로 안 하고, 열심히 안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할 수가 없는 수업이라는 반발심이 가슴속에서 솟아올랐다. '도무지 집중과 이해가 되지 않는 강의입니다!'라고. 하지만 그건 속마음이었고 강의실은 조용하기만 했다.
교수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너네 지금 의대에 간 애들이 지금 너희들처럼 수업 시간에 딴짓하고 제대로 공부를 안 하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알아?", "사람이 죽는 거야. 너희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 갔을 때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고 죽을 수도 있게 되는 거란 말이야. 너희들 그거 이해해 줄 수 있겠어?"
얼마 전 기사에서 봤던 수술 가위를 몸속에 둔 상태로 봉합한 의사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법대 간 애들이 지금 수업도 제대로 안 듣고 공부도 엉망진창으로 하면 어떻게 되겠니? 억울한 사람들 제대로 된 재판도 못 받고 남의 인생 망하게 만드는 거야"
어떤 변호사가 공판기일에 불출석하여 억울하게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한 뉴스가 떠올랐다.
가만히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의사, 판사, 변호사, 검사 혹은 경찰이든 소방관이든, 은행원, 공무원, 운동선수... 등등.나는 그 사람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그들의 일을 당연히 잘 해내고 있을 것이라 여기면서 살고 있었다.그들이 본인들이 해야 하는 일들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나 혹은 내게 소중한 사람이 피해를 본다면? 내가 실제로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그런 종류의 상상만 해도 화가 나고 짜증이 몰려왔다.
"그런데 지금 너희들은 어떠니? 너희들 지금 똑바로 안 하면, 열심히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겠냐고", "너희들은 말이야 공대를 다니고 있으니까 의대 법대 다니는 애들이 의사 판사 되는 것처럼 결국 엔지니어가 되는 거야."
"근데 지금 제대로 공부 안 해가지고 나중에 엔지니어가 돼서 어쩌려고 그러니? 너희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피해를 보지 않겠느냐 그 말이야.",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엔지니어 일도 못하는 사람을 보면 주변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화가 나고 답답하겠어? 안 그래?"
이것도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한양공대 졸업해 가지고 기본적인 이론도 모르고 문제도 해결 못하고, 일 처리도 제대로 못하면 그게 얼마나 쪽 팔리는 일이겠냐고, 정신들 차려야 되지 않겠어?"
처음에 짜증 어렸던 목소리에서 걱정이 담겨 있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톤이 변한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한순간 머리로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엔지니어가 된다?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무난하게 학업을 마치고 졸업을 한다면 당연한 수순이다. 곰곰이 생각을 이어 가다 보니 사무실에 앉아 사람들과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아마도 전자회로, 전자기학 등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 배우고 있는 것들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덜컥 겁이 났다.
'그래 나는 졸업을 하게 되면 전공과 관련된 회사에 취직을 하겠지. 좋든 싫든 그곳에서 주어진 일들을 해내야만 할 거야. 그것도 제대로. 일을 제대로 못해서 쪽 팔릴 수는 없어. 지금까지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지 않아'
내게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지 못해서 끙끙되고 싶지는 않았다.오대수처럼 '오늘만 대충 수습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그 순간 내가 듣는 수업 시간에 좀 더 진지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앞으로 남아있는 3학년, 4학년의 대학 생활은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졸업하기 전까지 수업 시간에 좀 더 집중하고, 시험 기간에는 도서관 혹은 친구 하숙집에서 새벽까지 공부하면서 내가 배우는 내용들을 이해하고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해 두면 나중에 내가 엔지니어라는 것이 되었을 때 분명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때 그 순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해야 하는 것은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비록 수업은 엉망진창이지만 누구의 말처럼 진심 어린 잔소리를 통해 이후 20년의 내 삶을 지탱해 준 나의 직업과 그것을 잘 해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중 해야 하는 것을 먼저 하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 삶은 무난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