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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민 Dec 24. 2024

스노우맨 2

눈사람(2)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겠어? 오늘 밤은 너와 함께 있고 싶다는 거야. 눈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https://youtu.be/uUt4lwddk8U?si=5bTElB9Ap8_-O9v2




그날 밤 모든 사람이 잠들고 난 후 눈사람은 조용히 문을 열고 난로가 켜져 있는 지하방으로 들어갔어. 난로는 이글거리는 붉은 불꽃을 품고 뜨겁게 타고 있었지. 눈사람은 한걸음 한걸음 난로에게 다가갔지. 가까이 다가갈수록 눈사람은 자신의 몸이 흐물흐물해지며 작아지는 걸 느꼈지만 붉게 빛나며 더운 기운을 내뿜는 난로에게 가는 것을 멈추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어. 늙은 개는 사납게 짖으며 눈사람에게 소리쳤지. '이제 그만 멈춰! 이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라고. 결국 눈사람은 난로 앞에 서서 그대로 녹아버리고 말았어. 늙은 개는 그 모습을 쭉 지켜보고 있었고 결국 서글프게 울었어. '어우~'하고. 그런데 그 순간 늙은 개는 눈사람이 사라진 자리에서 무언갈 발견했지. 그 자리에 모가 있었는지 알아?

- 그녀가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눈사람이 녹아 없어진 자리에는 기다란 쇠꼬챙이가 남아 있었어. 눈사람은 난로 부지깽이를 품고 있었던 거야.

- 그녀는 '아..'라고 말하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아이들이 부지깽이를 세워두고, 그 위에 눈사람을 만들었던 거야. 이야기가 끝나고 라디오에서 자이언티의 '눈'이 흘러나왔어. 아마도 항상 난로 옆에 함께 있던 부지깽이였기에 눈사람은 난로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을 거야. 원래 있던 그 자리로 계속 돌아가고 싶었던 거겠지.

- 나는 그녀를 향해 미소지었다.

그리고 말야, 이야기가 끝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들으면서 어떤 장면이 떠올랐는지 알아?


어느 겨울 조용한 숲 속 오두막에서 아침에 잠이 깨는 거야.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었더니 하얀 눈이 엄청 쌓여있고, 햇살도 너무 좋아서 눈이 부신 거야. 처마에서는 고드름이 조금씩 녹으면서 한 방울씩 방울져서 똑, 똑 떨어지고 있고. 나뭇가지에 핀 눈꽃들은 작은 새가 푸드덕거리면 하얗게 흩어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거야. 그리고 내가 일어난 침대에는 너가 아직 자고 있어. 따뜻한 이불 아래서 부드럽고, 하얀 등을 드러낸 채로.

- 그녀가 웃었다.

난 너가 자고 있는 모습을 한 동안 바라보다가 너를 깨우지 않고 조용히 커피를 내리는 거지. 온 방안에 향긋한 커피 향이 가득하게. 그리고는 자이언티의 '눈'을 트는 거야.


`눈이 올까요 우리 자는 동안에'


이렇게 노래가 흘러나오고 난 커피를 들고 너가 자고 있는 침대로 다가가지. 하얀 눈, 커피 향, 자이언티의 노래 그리고 너. 모든 것이 너무 좋은 거야. `상상만 해도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가슴 한쪽이 아련해지는 느낌이 나더라.` 그리고는 조용히 귓가에 노래를 부르며 너를 깨우는 거야. 너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미소 지으면서 나를 껴앉고 키스해 주지. 나는 눈이 왔다면서 너에게 커피잔을 내밀고는 창밖을 보라고 이야기해. 너가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난 너 뒤로 가서 너를 꼭 껴안고 이불을 둘러쓰고 함께 창밖을 바라보는 거야.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눈 내린 겨울 아침, 창밖에 펼쳐진 눈 덮인 하얀 세상과 눈부신 햇살을 계속 바라보는 거야. 하염없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 그런 날이.

- 나는 이야기를 마치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침에 상상했던 장면 속에 있던 그 얼굴이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겠어?


오늘 밤너와 함께 있고 싶다는 거야. 눈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커진 듯하더니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어떤 느낌의 웃음인지 잘 모르겠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긍정적인 생각일지 부정적인 생각일지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조마조마 해져온다. 마지막 말을 괜히 꺼냈을까?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끝-


모두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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