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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속도, 시간과 거리의 관계(2)

by 박경민


전편 : 선물


INFP와 INTP


3월 16일 일요일

함께 여유롭고 편안한 아침 시간을 보낸 뒤,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먼저 밥을 먹고는 동네에 있는 자전거 매장으로 가서 어떤 제품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망포역까지 운전해서 간 뒤 뒷골목에 딱 한자리 남아있던 자리에 차를 세우고 근처 식당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배가 고픈 상황임에도 아점 메뉴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주변 골목을 돌며 스쳐 지나는 파스타, 돈가스, 냉면, 백반, 멸치국수 등의 메뉴를 모두 불합격시키고는 근처를 두 바퀴째 돈다. 난 보통 아침을 챙겨 먹지 않으므로 아직 배고픔이 심하진 않았으나, 아침을 꼭 챙겨 먹는 그리고 쉽게 체력이 떨어지는 그녀는 나와는 다르게 허기가 질 것인데도 꿋꿋하게 마음에 꼭 맞는 메뉴를 찾고 있다.


난 어디선가 읽어보았던 mbti 관련 글이 생각났다. mbti가 infp인 사람은 사고 싶은 것이 넘쳐 장바구니가 꽉 차있을 것이며, 장바구니가 비는 일은 결코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쌓아두기만 하고 사질 않아서 대부분의 물건이 품절되는 경우가 흔하다고도 했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마음에 꼭 들 때까지 비슷한 품목들을 다시 고르고 계속해서 비교하는 일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infp다. 그래서 그런가 여러 종류의 아침 메뉴들을 모두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할 뿐 쉽게 구매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mbti는 과학일까?

(참고로 난 intp으로 쇼핑에 3초 걸린다고 되어있었다. 3초... 맞는 것 같다.)


두 바퀴를 돌고 다시 골목 끝에 도착했을 때 구석에 추어탕 집이 보였다. 나는 "추어탕 어때?"라고 그녀에게 물었다. 추어탕은 평소에도 꽤나 자주 선택되는 메뉴였기에 "추어탕 먹자."라고 말하고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 추어탕 가게로 향했다. 그녀는 딱히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지.'라는 느낌으로 별말 없이 내가 이끄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가는 길에 그녀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다.

나는 '한 바퀴 더 돌아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녀를 돌아보니 그녀의 눈길이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다시 고개를 돌리니 시선의 끝이 닿는 곳에는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정육식당이 있었다.

"우리 갈비탕 먹을까?"

그녀가 말했다.

"그래. 갈비탕도 좋지."

우리는 마침내 그녀가 pick 한 식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직 점심이 되려면 시간이 꽤 남아서 그런지 식당은 한산했고 우리는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골랐다.

그녀는 갈비탕, 나는 빨간 국물의 내장탕.

나와 그녀는 메뉴를 시키고는 인터넷으로 자전거를 검색해서 살펴봤다. 접이식에 미니 벨로 스타일이 아니고 합리적인 가격의 자전거. 그녀와 나(?)의 니즈가 반영된 상품으로 품목을 정렬하여 쭉 둘러봤다. 나는 보자마자 마음에 드는 자전거가 있어 그녀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접이식이고, 미니 벨로도 아니며 가격도 저렴하고 색깔마저도 예뻤다.

그녀는 내가 고른 자전거에 대한 상품 설명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예쁘다며 '괜찮네.'라고 말했지만, 자전거는 실제로 눈으로 보고 타봐야 한다며 일단 매장에 가서 둘러보자고 했다.

나는 "이거 괜찮아 보이는데."라고 한번 더 말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녀의 장바구니에 상품이 하나 추가되었을 뿐이다.


주문한 메뉴가 나왔고 우리는 둘 다 만족스럽게 아침 겸 점심이었던 식사를 마쳤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갈비탕을 먹고 나서는 역시 무얼 먹을지 고민한 보람이 있었다며 '너무 잘 먹었네~'하고 만족해하며 웃었다. 그녀가 만족스러워하니 나도 좋았다.


우리는 식당에서 나와 바로 근처에 있던 자전거 대리점으로 향했다. 가게 앞에는 어린아이들이 타는 자전거부터 해서 수많은 자전거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천천히 가게 앞을 돌며 여러 자전거들을 눈으로 살펴보았지만 우리가 찾는 접이식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사장님에게 접이식 자전거를 좀 보러 왔다고 어떤 제품들이 있는지 묻기로 했다. 휴일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꽤나 많은 손님들이 가게 안과 밖에서 자전거를 둘러보고 있었으며 사장님도 꽤나 바빠 보였다.

"사장님, 접이식 자전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사장님은 가게 한쪽 2층 진열장에 있는 미니벨로 스타일의 접이식 자전거들과 반대쪽에 진열되어 있는 접이식 일반 자전거 두 개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가게 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우리를 떠났다.


그녀와 나는 사장님이 알려준 위치로 가서 촘촘하게 진열되어 있는 일반 자전거들 사이에 끼어있는 접이식 자전거 두 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자전거와는 다르게 프레임이 접힐 수 있게 중앙에 장치가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전거를 꺼내서 앉아보고, 접었다가 펴보면서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가게 내부가 일단 좁았고 사장님도 바쁘고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는 가격표를 한번 보고 괜히 안장도 한번 눌러보고는 가게에서 나왔다.

"생각했던 거보다 가격이 좀 비싸네."

그녀가 말했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아까 인터넷으로 봤던 자전거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인터넷으로 본건 거의 절반 가격이던데..."


그녀는 다시 차로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담아준 자전거를 살펴본다. 그녀의 미간에는 깊은 고민이 스며들어 있다. 나는 괜히 우스운 생각도 들고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여 웃었다. "괜찮을 것 같긴 한데..." 그녀는 말 끝을 흐렸다. 계속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던 그녀가 수원에 큰 자전가 매장이 있다면서 딱 거기만 가보자고 했다.

"괜히 인터넷으로 사고 맘에 안 들어서 후회하는 것보단 확실하게 보고 사는 게 좋아~"

그녀가 항상 하는 말이다.


그녀가 찾은 곳은 창고형 자전거 매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었고, 나도 한번 가볼 만할 것 같았다. 창고형 매장이면 거의 모든 모델들이 모여있을 테니 인터넷으로 봐둔 자전거와도 비교해 보면 되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내비게이션으로 그곳의 주소를 찍어보니 거리도 거리지만 시간이 꽤나 걸릴 듯했다. 우선 시동을 걸고 네비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 항상 차가 막히는 권선동과 수원역을 뚫고 약 1시간이 걸려 목적지에 도착해서 차를 세웠다. 창고형 할인 매장이니 저 앞에 보이는 공장 같은 커다란 건물이 매장인가 보다 싶었다. 근데 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가니 그 공장 같은 건물은 진짜 공장이었고, 그 옆에 망포역 자전거 매장과 비슷한 크기의 자전거 매장이 있을 뿐이었다.

나와 그녀는 모두 당황했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미지는 이게 아니었는데...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혹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안쪽으로 엄청 큰 건물이 이어지나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적지 않게 당황한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접이식 자전거를 보러 왔다고 주인아저씨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했다. 그는 정확히 우리가 망포역에서 눈으로 살펴봤던 그 모델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래도 이번엔 타보긴 하겠네."

나는 허탈한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표현하지는 않았다. 괜히 한번 자전거에 올라보고 접는 방법을 확인해 봤다. 이번에도 역시 짧게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차를 타고 다시 길이 많이 막히는 구간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오는 길에 말했다. '생각과 달라 실망스럽긴 했지만, 만약 와보지 않았으면 분명 자전거 사고 마음속에 계속 떠올랐을 거라고. 그때 거기 가서 한번 보고 샀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그리고는 내가 인터넷으로 마음에 든다고 말했던, 그녀도 '괜찮네.'라고 말했던 그 자전거를 선물로 사주었다.


운전을 하며 시계를 보니 이미 오후를 지나며 아직은 짧은 봄의 낮 시간이 슬슬 주황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 곧 어둠이 스며들 것이며 도로와 집들은 그 어둠을 밝히기 위해 밝은 전등을 켜기 시작하겠지.

그렇게 되면 이 도시는 낮과는 다른 색깔의 밝음으로 채워질 것이다.




며칠 후에 집으로 자전거가 배송되었고 나는 어렵지 않게 조립하여 그녀에게 완성된 자전거를 사진 찍어서 보냈다.

"딱 마음에 들어~ 내일부터 출퇴근은 자전거야!! ㅎㅎ 고마워요~~!"

그녀는 나중에 꼭 경치 좋은 곳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자고 말해주었다.

이제 곧 벚꽃이 분분히 휘날릴 때 우리는 따스한 햇살 아래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산천을 지날 수 있을 것이다.

꼭 그럴 수 있기를 바라본다.



다음 편 : 필력=좋은글/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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