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시간과 거리의 관계(3)
필력 = 좋은 글 / 시간?
4월 15일
그녀가 선물로 사준 자전거를 배송받은 그다음 날부터,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매일 자전거를 이용해서 출퇴근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기쁠 일이 별로 없지만, 새 자전거 덕분에 회사와 관련된 시간 중 적어도 하루 두 번 기분 좋은 순간이 생겼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때 한번, 퇴근할 때 한번. 아, 퇴근할 때는 원래 기분이 좋으니 하루 한번 기분 좋은 순간이 늘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는 15분 정도의 출퇴근 시간은 내게 기분 좋음의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회사를 오가는 길에는 큰 고개가 하나 있는데 그곳을 오를 때 허벅지가 뻐근해지는 근력 운동 효과를 잠시 느끼고, 숨이 턱에 차려는 순간 자전거 타기가 끝나니 유산소 운동 효과도 살짝 경험하고 있다. 물론 무엇보다 좋은 점은 출퇴근 시간이 조금씩 줄었다는 것이다. 이른 출근은 이른 퇴근을 부르고 이른 퇴근은 좀 더 길고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장해 주니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걷는 것보단 속도가 빠르고, 차를 운전하고 다닐 때 신호나 주차 등에 낭비되는 시간이 없어지니 얻을 수 있는 이득이다.
집에서 나올 때 날이 흐리긴 했지만 분명 비 소식은 없었기에, 오늘도 어김없이 자전거에 올라타 선선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회사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출근하거나 지나다니는 사람이 꽤 많이 있기에 안장에서 내려와 자전거용 주차장까지 자전거를 끌고 이동한다. 천천히 걸으며 녹색 프레임에 까만색 앞/뒤 드레일러와 체인 그리고 베이지색 타이어가 감싸고 있는 하얀색 바큇살이 봄 볕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을 바라본다.
'자전거 예쁘네.'
역시 핸드폰으로 자전거를 검색했을 때 제일 처음 눈에 들어왔던 녀석, 화면으로 봤을 때 느껴졌던 그 느낌, 딱 마음에 들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녀도 지난 주말 새 자전거를 보러 와서 한번 타보고는 자전거 예쁘다며, '내가 타야 딱 어울리겠네~'라며 마음에 들어 했었다.
잠금장치를 채우며 눈앞에 자전거를 다시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지난 3월의 어느 일요일, 그녀와 함께 자전거를 사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날이 떠올랐다. 일요일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자전거는 직접 타보고 사야 한다'며 몇 군데 매장들을 돌아다녔으나 결국 허탕만 치고, 실제로 구매한 건 인터넷 검색으로 보자마자 딱 마음에 들었던 이 녀석이다.
'이럴 거면 굳이 일요일 내내 자전거를 보러 다닐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번뜩 스친다.
그러면서 그녀와 나의 다른 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지난번에도 적었지만 그녀는 무엇을 사든 신중 하다. 텀블러를 하나 살 때도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고 또 고른 후 거기에서 저렴한 가격을 찾고 또 찾는다. 몇 날, 며칠 동안 장바구니에 담긴 것들을 비교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정하고 주문해서 제품을 받았을 때, '역시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고르길 잘했다.'며 마음에 꼭 드는 이유를 100가지쯤 이야기해 준다.
반면 나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대충 쓱(?) 훑어보고 필요한 이유만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이면 적당히 마음에 당기는 것을 산다. 그리고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래저래 만족하면서 사용하는 타입이다. 만약 텀블러라면 '물을 담았을 때 새지만 않으면 어떤 제품이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물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장점이 많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다.
그러므로 나에게 그녀가 이야기하는 마음에 꼭 드는 이유 100가지는 확 와닿지 않는다. 다만 그 100가지 마음에 드는 이유를 말할 때 그녀의 표정을 좋아할 뿐이다.
'온도 유지가 정말 잘된다.', '크기와 모양이 너무 마음에 든다.', '들고 다니기가 좋다.', '작은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다.', '이게 원래 얼마인데 이번에 싸게 샀다.' 등등.
그런 것들을 이야기할 때 기뻐하는 표정이 보기 좋다.
그런데 그녀와 나의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분명 어떤 물건이든 그녀가 고르는 것이 내가 고르는 것보다 좋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을 살 때 그녀처럼 신중에 신중을 가하지 않는다. 왜일까?
'왜'라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하나의 가설이 머릿속에서 형성된다.
'나는 100가지의 합리적인 이유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난 나의 마음을 꼭 만족시키는 이유들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쓰는 것보다 일단 빠르게 결정하고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결정에 필요한 합리적인 이유,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 그리고 만족도.
이를 아래와 같은 수식으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
* 만족도 = 결정에 필요한 합리적인 이유 /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
어떤 결정에 만족도가 높기 위해서는 분자인 합리적인 이유가 많거나 확실할수록 좋다.
그녀의 경우다. 어떤 결정을 하기 위해 그 결정을 뒤받침하는 이유가 확실하거나 많을수록 만족도가 높아진다. 다만 이유를 찾고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만족도는 작아질 것이다.
(아마 중요하지 않은 작은 결정들마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진다면 정작 중요한 결정에 사용해야 할 시간이 줄어드니...)
또한, 어떤 결정에 만족도가 높기 위해서는 분모인 결정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나의 경우다. 어떤 결정이든 빠르게 결정하고 결과를 감당하는 것이 어중간한 상태에서 고민만 반복하는 스트레스보다 좋다. 다만 결정의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다면 만족도가 영이 되거나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만족도의 최대 값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정에 필요한 합리적인 이유는 확실하거나 많게 그리고 그 결정에 걸리는 시간은 짧게 하는 것이 필요한 걸까?
'왠지 그럴듯한데?', 이런 생각이 들며 슬며시 웃음이 지어진다.
'역시 mbti가 n이고 t라서 별생각을 다하네...'
그러고 보니 난 가끔 그녀를 보면서 '그렇게 고민하는 시간 동안 다른 많은 것들을 놓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녀도 언젠가 나에게 '그렇게 확실한 이유 없이 결정해 버리면 즐거움과 행복을 놓칠 수도 있어요.'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이건 마치 속도에 관한 공식이랑 같네...'
* 속도(v)= 거리(s) / 시간(t)
그리고 거리(s) = 속도(v) x 시간(t)
얼마 전 중 3이 된 딸에게 수학을 알려주며 스친 생각이 있었다.
'공부 속도(v)가 느린 사람이라면 남들과 비슷한 점수(s)를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시간(t)이겠다.'라는 생각.
그래서 수학 문제를 함께 풀다 말고 수학에 대한 공부 속도가 느린 딸에게 넌 수학 속도가 느리니 수학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을 많이 늘려야 남들이 하는 만큼 수학 점수가 나올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더랬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나는 냉정하게 딸에게 이야기했다.
"상대적으로 속도가 빠른 국어와 영어에 그 시간을 쓰는 게 어떻겠니?"
가만히 생각하던 따님은 수긍해 주었다.
그리고 공부하는 속도가 빠른 아이들은 똑같은 점수(거리)를 위해 더 작은 시간을 투자해도 되니 얼마나 유리한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필력 = 좋은 글 / 시간
그리고 좋은 글 = 필력 * 시간
필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더 적은 시간만 사용하고도 좋은 글이 나올 것이고, 필력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사람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나는 필력이 좋지 않은 거 같은데 그럼 좀 많이 불리한 거 아닌가? 아니다, 불리한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좋은 글을 쓸 수는 있을까?
여기까지가 자전거와 연관된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아래 기사는 내 절망적인(?) 능력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위의 수식에서도 시간이 엄청나게 큰 값이 된다면 속도(필력)가 어떤 값이든 간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좋은 글) 또한 엄청나게 큰 값이 된다.
[이현세의 만화경] 해 지기 전에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 서울신문
아래는 기사 본문.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에 한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작업실은 이층 다락방이었고 매일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잠자는 시간만큼 나는 더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그제서야 쌓인 원고지를 안고 잠들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있다가도 며칠 휘갈겨서 가져오는 원고로 내 원고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 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 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1년이면 3500장을 그리게 되고 10년이면 3만 5000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글도 쓰고 싶다면,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면 된다. 가장 정직하게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설득력과 온갖 상상의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갖게 된다.
자신만이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항상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 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든, 산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