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계수나무숲 Jul 18. 2023

여름의 맛

아삭아삭 콩나물

주말 내내 흐리다가 갑자기 해가 반짝 떴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탐스럽게 떠다니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단 언제 다시 비를 퍼붓고 흐려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은 불안했다.

언제부터인가 눈앞에 좋은 게 있어도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행복이 퇴색될걸 미리 예상하고 행복이 사라진 후 많이 섭섭해지고 싶지 않아서  늘 마음에 예방주사를 놓듯 들뜨는 마음은 눌러놨다. 그러다 보니 어리석게도 좋은 감정을 그때그때 즐기지 못하는 멍청한 어른으로 성장해 버렸다.

나는 몇 수 앞을 내다보며 걱정한다.

없는 일을 상상하며 화내거나 서글퍼하는 일도 다반사다.

안 그래도 걱정이 많은 나인데 10년 차 장롱면허를 탈피하고자 슬슬 운전대를 잡기 시작했더니 걱정이 배로 늘었다.

걱정만 늘었으면 다행인데 걱정은 두려움까지 손잡고 나를 물고 늘어졌다.

*괜히 차 끌고 나갔다가 안 좋은 일을 겪으면 어쩌지?

*주차를 잘할 수 있을까?

*초보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어떡하지?

굳이 할 필요 없는 걱정들을 몸에 휘감은 채 운전대에 앉아 엄마집으로 향했다.

운전해서 가면 고작 7분 거리.

'제발 무사히.'

운전하면서 가장 많이 바라는 말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주문처럼 되뇌이던 말처럼 무사히 주행하고 무사히 주차한다.

운전하는 내 모습이 늘 걱정인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내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 자체가 큰 효도를 한 것 같아서 재밌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무릎뼈가 완전히 붙지 못한 엄마와 점심을 먹기 위해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엄마와 시간을 보낸다.

오늘의 메뉴는 홈쇼핑에서 "국내산 도토리 100퍼센트 함유!"라는  말에 혹해서 구매한 도토리면 비빔국수다.


도토리면 안에 엄마가 손수 무친 콩나물을 가득 넣고 깻잎 쌈무를 함께 썰어 넣으니 양이 더 풍성해졌다. 거기에 삶은 달걀을 국수 맨 위에 올리니 정말 분식집에서 팔 것 같은 모양새가 갖춰졌다.

"엄마가 해주지 않으면 이런 콩나물은 먹을 일이 없어!" 신선한 콩나물에 반해 한 입 가득 도토리면과 콩나물을 둘둘 말아 입에 넣은 나는 입안 가득 퍼지는 아삭한 여름의 맛을 온전히 느꼈다. 이런 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엄마는 혼자서 먹으면 이렇게 정성스레 차려먹지 않는다고 했다.


깁스하지 않은 한 발로 겨우 지탱하며 다 큰 딸에게 점심을 먹이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엄마의 모습이 선했다.

 만 나이 도입으로 34살이 된 나는 한창 어른이어야 할 나이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인성이 안된 이와는 함께 일 못한다며 떨쳐낸 일터에서 내가 필요하다는 마음 복잡한 전화를 받은 일.

...

*열심히 만든 영상이 조회수가 잘 안 나오고 구독자가 늘지 않아 서글픈 마음.

...

*내 그림에서  어떤 특징도 매력도 느껴지지 않았을 때의 한심함.

...

*몸과 마음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아서 허공에 분풀이하고 싶어 지는 마음까지.


아삭아삭.

.

..

...

아삭아삭!


엄마가  가득 만들어준 콩나물 소리에 묻힐 정도의 작은 먹구름 같은 마음이라 다행이었다.


경쾌하고 포만감 가득한 식사였다.


엄마집에 있는 그 몇 시간 사이 해가 쨍했다가 다시 흐렸다가  비가 올 듯했다가 다시 무더워짐을 반복했다.

내 기분이 딱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큰 걸 바라지 않는다.

내 삶의 모든 먹구름들이

딱 콩나물 소리에 가려질만한 크기면 좋겠다.







이전 04화 내 기분을 좌우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