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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수나무숲 Jul 04. 2023

내 기분을 좌우하는 것

신비한 힘이 있는 신비복숭아.

    

1년에 한 번 어쩌다 연락이 와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친구가 있다,

이제 만 나이 적용으로 34살이 된 나에겐 고등학교 친구 S가 그러하다.

어여쁜 한글 이름을 가졌고 둥글 동글한 모습에 그렇지 않은 강단 있는 성격을 가진 그녀는 마음 터놓는 친구가 그리 많지 않은 나에게 일당백 같은 존재다.

막 서울로 상경하여 대학 생활과 서울의 모든 것이 낯설던 시절 전공 수업 가운데 가장 기대했던 수업의 준비물은 다양한 패턴의 스카프를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섬유예술 전공으로 그 당시엔 텍스타일 디자인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는 가장 점수를 잘 받고 싶었던 수업이기도 했었는데 갓 교복을 벗고 타지에 혼자 하숙하던 나에게 뜬금없이 스카프가 있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도 여대 앞이라 그런지 그 당시에는 먹거리뿐 만 아니라 스카프며 귀걸이까지 소품들이 많이 팔았기에 학교 앞 점포에서 팔던 스카프를 급하게 하나 사서 가져갔다.

푸른 끼가 도는 그레이색에 검은 바둑판무늬가 무난해 보여 과제로 가져간 후에도 내 옷에 휘뚜루마 뚜루 잘 어울릴 것 같았고 가격도 대학생 주머니에서 나올 수 있는 적당한 금액이었다.

그런데 수업시간 스카프를 꺼내보라는 교수님의 말에 친구들이 가져온 스카프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확연히 달랐다. 실크 소재에 고급스럽고 색상도 다양했으며 패턴도 일정한 것 자유로운 것 등 다채로워 보였다.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 내가 알지 못했던 명품 브랜드의 스카프도 사이사이에 껴있었고 본능적으로 값비싼 스카프들 사이에서 순간 나는 기가 팍 죽어버렸다.

 사실 내가 가져온 스카프를 꺼내어 보였어도 별 문제없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결국 스카프를 꺼내지 못하고 나는 준비물을 안 챙겨 왔다는 이유로 그 시간 감점을 받았다.

돌이켜 보면 그리 큰 일은 아니었지만 다만 그 시절 나에겐 꽤나 서러운 경험이었다.

“나는 돈 잘 벌면 명품 스카프부터 살 거야!”

이 이야기를 스치면서 S에게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늘 그러하듯 섭섭한 기억, 아쉬웠던 기억은 금방 잊어버린다.

.

.

.



시간은 잘 흘러갔다.

나는 늘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나만의 작업실 겸 화실을 오픈했고

나의 새로운 소식에 S가 부산에서 달려왔다.

S는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으로 대학교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을 정도로 실기 실력이 매우 우수했다.

나는 친한 친구 찬스로 S에게 화실 오픈기념 그림 한 점을 부탁했다. S는 바쁜 일정 속 틈틈이 그림을 그려 나에게 가져왔다.

그리고 그림과 함께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P사의 작은 박스를 꺼냈다.

“뭐야 악마는 P를 입는 다더니 내가 악마라서 P 박스를 가져온 거야?”

당연히 박스만 P고 안에는 다른 게 들었겠거니...

평소 재밌게 장난쳐온 사이였기에 S가 어떤 장난을 쳤을까 궁금해하며 박스를 열었는데

진짜 P사의 스카프가 들어있었다.

S가 말하길

“너는 옛날에 돈 잘 벌면 명품 스카프부터 살 거라더니 돈을 벌어도 안 사? 내가 대신 샀다!”

당시 예술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으로 돈을 잘 벌던 S였지만 지금까지 친구에게 받았던 선물 중 가장 고가의 선물이라 놀란 마음이 컸다.

무엇보다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기억하고 선물해 준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참 따뜻한 친구다.

괜히 멋쩍은 마음에

“아직 돈을 잘 못 벌어서 못 샀어”라고 웃어버렸다.

여전히 S가 선물한 스카프가 내가 가진 유일한 고가의 명품 스카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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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와 나는 분명 친하다 하지만 1년에 연락하는 날은 서로의 생일을 제외한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늘 연락하진 않아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엮어진 것 같은 S가 뜬금없이 “신비복숭아”를 보냈다.

신비복숭아?

이름도 참 예쁘고 신비롭다.

물론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복숭아이기도 했다.

S가 말하길

“내가 먹어봤는데 괜찮았어. 너랑 같이 먹고 싶은데 근데 네가 없잖아? 그래서 보낸다.”

맛있는 것을 먹고 나를 떠올리다니.

이런 존재가 내 주변에 있다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이름도 처음 들어본 신비 복숭아로 나의 마음이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최근 일과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로 조금 골머리를 앓던 나는 마법처럼 그녀가 보내온 신비 복숭아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예삐 스트레스받지 말고 열심히 살아.

나도 그래볼게”

34의 나는 S에게 종종 예삐로 불린다.

난 그녀에게 그다지 예쁜 친구가 아닐 텐데

결혼을 하고,

30대 중반이 넘어가고,

심지어 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 친구 사이가 소원해진다고 했는데 17살에 만난 그녀는 여전히 그 시절 말간 얼굴로 나를 바라봐준다.

"신비 복숭아"

정말 이름처럼 신비한 힘이 있나 보다.

신비 복숭아를 안 먹어 본 분들에게 "신비복숭아" 한 줄평을 하자면...

“배송된 날 다 먹음”

이 복숭아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있길래 나의 기분을 바꿔 놓았을까.

이제부터 나의 신비복숭아는 S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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