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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수나무숲 Jun 19. 2023

일곱 번째 결혼기념일.

Love Letter 아닌 Love Letter.



나는 프리랜서라 매일 일하고 출근하지 않는다.

말이 프리랜서지 때론 "백수"라 쓰고 어쩌다 정말 가끔은 "전문직"이라 쓴다.

내 직업의 특징이지만 일이 많을 때는

새벽방송-> 행사진행 -> 녹화/더빙처럼 하루에 3건 이상 일이 잡히기도 한다.


나는 이동하면서  입안에 쑤셔 넣듯한 먹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데 묘하게 시간이 맞지 않아 끼니를 잘 못 챙겼을 때는 정말 살기 위해 참치김밥을 우걱우걱 씹으면서 햇볕에 녹아가는 고무 같이 끈적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동한 적이 더러 있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힘듦을 가득 느꼈던 날은 그 순간에는 "다시는 이렇게는 일 안 해!"라고 외치지만 여유 있을 때 돌이켜보면 오히려 꽤나 행복했던 순간이 되는 아이러니함은 늘 나를 덮쳐온다.


일이 많을 때는 일이 많아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일이 적당히 없을 때는 자기 계발의 시간을 핑계로 집안일에 손을 안 댔던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남편과 나 누구 하나 서로에게 집안일을 미루거나 서로를 탓하진 않았기에

서로가 알아서 기분에 맞게 각자가 원하는 집안일을 선택해서 했다.

물론 둘 다 바빠 저절로 집안일이 쌓일 때도 있었으나 집이 눅눅하면 눅눅 한대로 뽀송하면 뽀송한 대로 우리 부부의 삶은 잘 흘러갔다.


그러다가 프리랜서로서 쉼이 길어질 때면 나는 본격적으로 집안일에 최선을 다했다.

매일 빨래를 하고 로봇청소기와 벗 삼아 집안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화장실을 광냈다.

그리고 늘 어떤 저녁을 만들어낼지 고민했지만 그래도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상을 매일 잘 챙겨줄 만큼 성실한 아내는 못되었다.


어쩌다 아침을 잘 챙겨 먹느냐는 지인의 질문에

“습관이 돼서 아침은 잘 안 먹습니다”라는 남편의 대답이 괜히 내가 게으른 아내가 되는 것 같아 남편에게 성을 낸 적이 있다.

사실 남편의 뜻은 “(대학시절부터) 습관이 돼서 아침은 잘 안 먹습니다.”라는 뜻이었는데...

괜히 내 마음이 불편했던 거다.


새벽 일찍 일어나 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구워서 나와 가족들을 착실하게 먹였던 엄마를 떠올리면 나는 정말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손이 많이 가는 한식보다 가벼운 서양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SNS에 떠서 미리미리 저장해 둔 예쁜 브런치 사진들이 떠올랐다. 꽤나 예쁘게 세팅된 브런치 사진이었는데 들어가는 재료도 꽤 간단했다.

요즘은 설명도 친절하게 잘해 준다,

나도 평소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레시피를 잘 참고하여 얼마든지 내 입맛대로 응용도 가능했다. 무엇보다 아침에는 만들기 간단한 게 최고다.

백설공주가 먹었을 지나치게 예쁜 빨간사과


아침에 먹는 사과는 황금 사과라고 하니까 괜히 아침 메뉴로  사과가 들어간 샌드위치에 눈길이 갔다. 


살짝 구워낸 호밀빵 위에 크림치즈를 발라준다.

그 위에 개성 있는 향을 뿜는 상큼한 루꼴라를 올린 후 브리치즈를 두툼하게 썰어 잔뜩 올려준다.

폭신하게 올려진 브리치즈 위에는 톡톡 씹히는 맛이 즐거운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올려주고 마지막에 빨간 사과를 썰어 치즈 위에 올려준다,

나는 후추를 좋아해서 마지막에 통후추를 꼭 갈아주고 꿀은 뿌리거나 생략한다.


빵 위에 바르고 올리면 끝인 요리라 요리라고 이름 붙이기엔 민망할 지경이지만

아침에 먹으면 황금이라는 사과가 올려졌으니 굉장히 건강한 아침을 만들어낸 센스 있는 굿와이프가 된 것 만 같다.

특히 간단하게 만들어냈지만 비주얼이 좋다는 점에서 더욱 더 나에게 큰 만족도를 준다.

사진으로 남기니 정말 파는 것 같다!

순간 브런치 가게를 열어봐도 좋을 것 같다는 건방진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한편으론 남편처럼 까탈스럽지 않고 무던한 손님들만 찾아와 준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 살짝 해본다. 


남편은 늘 바다 같았고 포근한 사람이다.

'불안' 그 자체가 삶이었던 나의 20대 후반,

 "늘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이 되어줄게" 라프러포즈했던 남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을 너무나 성실하게 지켜가고 있다.


무엇을 내어오든 투정 없는 남편은 언제나 내가 차린 아침을 맛있게 먹어줬다.

처음 사과 브리치즈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남편에게 먹일 때 난 꽤 호들갑을 떨었다

“이거 되게 되게 맛있지?! 엄청 간단하다?!”

사각사각 씹혔다가 말캉했다가 알갱이가 씹히는 다채로운 식감이 성실하게 출근하는 남편의 하루를 응원해 주는 것 같다.


15분 정도의 시간이지만 남편과 같이 아침 식사를 하는 시간은 짧은 데이트를 하는 것 같아서 신난다.

비록 나는 후줄근한 잠옷에 남편 홀로 출근준비를 마친 말끔한 차림이지만 출근 전 브런치메뉴를 함께 먹고 있자니 주말 아침 같기도 하다.


“오늘은 뭐 해?”

- 음 회의하고 실험하고...

“몇 시에 와?”

-“늦지 않게 올 거야”

“뭐 일찍 온다고?” “그럼 4시에 온다고?”

-“7시 30까지는 올 수 있을 거야”

라는 터무니없는 일상의 대화를 이어나가도 웃어넘기며 질려하지 않는 남편이 참 좋다


* 잘 다녀와

* 운전 조심해

* 카톡해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에다 던지는 나의 말들은 내 방식의 “사랑해”라는 말이다.


5년 연애 그리고 7년의 결혼생활.

오늘이 바로 일곱 번째 결혼기념일이다.

7 년동안 그는 요즘 자주 만들어내는 ‘사과 브리치즈 샌드위치’ 외에도 내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음식들을 참 맛있게 먹어주었다.


내일은 또 무엇을 먹여볼까?


남편의 입에 내가 만든 음식이 들어가고 맛있게 소화해 내는 모든 과정이 기쁘다.


누군가 “결혼생활 어때요?” 혹은

“결혼을 해야 할까요?”라고 물어본다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충분히 내 대답을 알려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7년 동안 재밌었어. 내년에도 잘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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