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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수나무숲 Jun 14. 2023

효녀 그 잡채

남은 재료로 효도하기



하루 약 4시간.
무릎을 다친 엄마의 상태를 살피러 엄마집에 머문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붕대를 감은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생소하고 불편해 보여서 매일 올 필요 없다는 엄마의 말에도 나는 계속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가 다치기 약 3주 전에는 내 몸이 아팠다.
한 번도 경험 못한 우주가 베이는 기분과 마치 시공간이 뒤틀리는 불안함을 느낀 때였는데
불행 속에서 배운 것은 이 불쾌한 아픔을 느끼기 전 경험했던 인간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그저 거친 자갈밭을 맨발로 거니는 정도의 가벼운 수준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었다.

여린 엄마는 나를 건강하게 잘 키웠다. 덕분에 나는 바다 같은 괴로움을 잘 접고 접어 작은 욕조 만한 사이즈로 작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나름 큰 일을 겪은 것에 반해 나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라는 엄마의 말에는 여러 가지 위로와 연민이 담겨있었다.
내가 아플 때 본 엄마의 표정은 ‘불효’를 잘 묘사해서 그려놓은 것 같았다.
먹고 싶은걸 마구 말해야 엄마 얼굴의 어두운 부분이 닦여질 것 같았다.

내가 먹어온 엄마의 음식들을 머릿속으로 쭉 나열해 보았다.
그러다가 뜬금없는 음식이 떠올랐다.
잡채.
엄마의 잡채를 먹어본 게 10년 전쯤 된 것 같았다.
잡채를 해달라는 나의 예상치 못한 요구에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잡채는 자신 없는데...”라고 고백했다.
요리를 잘하는 엄마의 입에서 잡채가 자신 없다는 말이 나오다니...
잡채가 엄청 먹고 싶지 않았음에도 괜히 오기가 생겨 나는 잡채를 만들어 달라고 떼를 썼다.
아쉽게도 3살, 5살이 아닌 35살 먹은 딸의 생떼는 먹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잡채를 얻어먹지 못했다.
하지만 대신 한우를 듬뿍 넣은 미역국, 제육 불고기와 두부 전 등 내가 좋아하는, 잡채보다 훨씬 영양이 넘치는 음식들을 잔뜩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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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에 5cm의 실금이 간 엄마는 평생 짚은 적 없는 목발을 짚으며
“아프고 나니 건강이 최고다라는 말을 알겠어...”라고 말했다.


평소 엄마는 굉장히 소식하는 사람이다.
바닥이 심하게 마모된 줄 모르고 신었던 신발 탓에 무릎을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내리꽂아버린 사람치고는 가벼운 부상이었다.

엄마의 가벼운 몸무게가 이때만큼 감사한 적이 없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갔다면 실금으로 끝나지 않을 부상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의 끼니를 걱정했다.

아빠는 해외 출장 중이었기에 엄마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부산에 사는 이모들이 엄마를 돌봐주겠다 했지만
이모들 역시 몸이 성치 않은 상태라 엄마는 극구 사양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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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어제 유부초밥과 김밥을 만들고 난 남은 재료들이 나에게 인사했다.
늘 요리에 다 쓰이지 못하고 홀로 남겨지는 양파.
정말 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산 당근. (나는 당근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1+1이라 함께 담겨온 시금치 한 단.
그리고 서랍 깊숙이 팽이버섯 한 묶음이 돌아다녔고
마침 소고기를 볶아놓은 것도 냄비 안에 있다!

여기에 당면만 더해지면 내가 그토록 엄마에게 졸라댔던 당면이 탄생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양파를 사각사각 썰어내고 단단해서 늘 툭툭 투박하게만 썰고야 마는 당근을 최대한 길게 채 썬 후 볶아놓은 소고기가 든 냄비에 함께 추가로 볶아버린다.

다른 냄비에 물을 끓여 한 곳에는 시금치를 삶고 한 곳에는 당면을 삶는다.

각각 조리한 재료들을 한데 모아 간장, 맛술, 스테비아 (나는 설탕대신 사용한다) 참기름에 통깨를 듬뿍 뿌려주면 잡채는 끝이다.

나에겐 꽤 간단한 음식인데 왜 엄마는 잡채가 자신 없다 했을까?

수월하게 만든 잡채를 작은 용기에 소분하여 차곡차곡 담아 엄마에게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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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게 왜 또 오니..”
아직 목발에 적응이 덜 되어 보이는 엄마는
미안한 얼굴로 어설프게 목발을 짚으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아픈 엄마 보러 딸이 오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엄마란 존재는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으면 그저 미안한 존재가 되는 것만 같았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나처럼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엄마가 되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했다.
쉽게 만든 잡채가 큰일이라도 한 것 인양 의기양양하게 엄마에게 보여줬다
“짠! 내가 만든 잡채야!”

엄마는 꽤 놀란 표정이었다
“잡채 만드는 거 손 정말 많이 가고 어려운데 이 걸해 왔어..!!”
“어제 만든 김밥 재료들이랑 겹치는 게 많아서 쉽게 만들었지 휘리릭 뚝딱~”

의성어로 대충 설명한 나의 잡채 레시피를 듣고 난 후 엄마는 맛있게 잡채를 먹었다.

쉽게 만들어진 잡채



그리고 엄마와 이야기를 하며 깨달은 것은 내가 생각하는 잡채요리법과 엄마가 생각하는 잡채요리법이 달랐다.
나는 웬만한 재료를 한 번에 다 볶아버리는데 엄마는 미리 간한 시금치 따로 당근 따로 양파 따로 소고기 따로 목이버섯 따로 파프리카 따로 각각의 재료의 맛을 잘 살릴 수 있도록 따로 볶아 조리한 후 마지막에 합쳐서 가볍게 팬에볶든 손으로 무치든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번거롭고 어려울 수밖에
게다가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파프리카, 목이버섯, 표고버섯 등 내가 만든 잡채에 추가로 더해지는 재료도 훨씬 많았다.
어쩐지 내 잡채가 유독 쉬웠다.
먼 기억 속 엄마의 잡채는 손이 많이 가고 훨씬 다채로웠던 것이다.

쉽게 만들었다고 해서 사랑과 정성이 안 들어갔겠냐 만은
남은 재료를 잘 활용했다는 뿌듯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도 엄마는 내가 만든 잡채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다음에는 나도 더 정성을 쏟아봐야지.

아침 일찍 내가 부지런 떨며 잡채 만드는 것을 보고 출근했던 남편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 효녀 그 잡채 -
그 한마디가 꽤 위로가 됐다.

왜 딸은 엄마의 사랑을 넘어서질 못할까?

나답지 않게 더 번거롭게 요리해야겠다고 생각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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