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험 날 아침, 책상에 앉아있는 학생들과 정적이 흐르는 교실. 갑자기 주리가 교실에 들어와 윤아를 찾는다. 둘은 함께 교실에서 나오다가 담임선생님과 마주친다.
시험을 보지 않고 가려는 윤아와 주리에게 "너희 그러다가 진짜 큰일 난다!"며 꾸짖는 선생님.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빤히 보더니 "거짓말.." 이 말을 툭 던지고 가던 길을 가는 아이들.
아! 이 장면에서 나는 이마를 탁 쳤다! 이렇게 통쾌할 수가! 왜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겐 저 단호함이 없었을까, 학교에 맺힌 한이 있다면 돌아봤을 때 말도 안 되는 온갖 겁을 주던 담임선생님께 "거짓말"이라고 단호하고 냉정하게 대꾸하지 못한 것이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게 인생의 전부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만 했고 정말 거짓말이다라고 확신하기까지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야자시간에 수능과 관련 없는 소설책을 읽으면서 이래도 되는 걸까 불안했고 밤새 기숙사에서 영화를 보면서도 마음 한편이 찝찝했다. 조금의 일탈을 하거나 대학 합격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와 활동을 할 땐 괜히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있는 힘껏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귓가엔 선생님의 말, 주변 친구들의 말, 부모님의 말이 맴돌았다. "너 이러다가 대학 못 간다. 나중에 더 열심히 할걸 후회한다." 그땐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선생님들이 보여주는 그 길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게 지금 와서 돌아보니 너무나 분명하다.
밤을 새워 영화를 보고 삶에 대해 토론하고 야자를 째며 전시회를 가고 수업시간에 글을 쓰고 있을 고등학생 나를 만난다면 너는 너대로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른들의 말을 꼭 들을 필요는 없어. 사실 그들은 너보다 더 바보거든!"
영화 속 주리와 윤아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용감하게 할 수 있는 어른들이었다. 세상은 변함없이 잔인하지만 그런 세상 앞에서 윤아는 아이를 키우겠다고 발악하고 주리는 무너지는 가정을 묵묵히 지켜본다. 어른들에게 상처 받고 좌절하면서 그럼에도 그들은 줏대 있게 살아간다. 나잇값을 못하는 어른들 때문에 너무 빨리 어른이 돼야 하는 아이들이 조금은 슬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