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이야기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행복" 찾기
창문 밖에 비가 쏟아지는 걸 보고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그래 오늘 학원 안 갈래!"하고 결심했다. 이불속은 너무 포근했고 밖에 비가 억수같이 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원을 간다면 그건 오로지 강제성 내지는 의무감 혹은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일 것이다. 나는 이 셋 중 어떤 것도 없었기 때문에 침대에 앉아 창밖에 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오늘도 순간의 행복이 이겼네...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려다가 순간의 행복이 이겼다는 말이 잘못된 표현인 것 같아서 이 글을 써본다.
순간의 행복이 이겼다기 보단 순간의 불행을 피해 갔다 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학원을 가지 않기로 한 이유는 학원을 안감으로써 집에서 내가 얻는 행복이 너무 크기 때문이 아니라 집 밖으로 나가는 과정의 귀찮음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나갈 준비를 하고 비를 뚫고 학원까지 가는 것이 귀찮아서 집에 있기로 결정한 것이니까 순간의 행복을 좇았다고 하기에 내 행동의 초점은 행복이 아닌 불행에 맞춰져 있었고, 행복을 향한 행동이 아닌 불행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결과만 봤을 때 불행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 행복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고 나는 비를 맞지 않았고 외출 준비를 하지 않아서 행복했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능동적인 행동으로 얻어내는 행복과 불행을 피하기 위한 행동에 따라오는 행복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중학교 때 내가 좋아하던 국어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인상 깊어 아직까지도 자주 생각나곤 한다. 선생님이 처음 두 발 자전거 타는 법을 연습을 하셨을 때의 이야기이다. 어린아이였던 선생님은 저 앞에 보이는 돌에 부딪히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전거를 타면 돌을 쳐다보다가 꼭 넘어지고 말았다고 하셨다. 점점 가까워지는 돌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오히려 제대로 자전거를 탈 수 없으셨다. 그 돌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불행과 같고 다가올 불행과 걱정에 집중한 인생은 행복할 수 없다고 하셨다.
살면서 어느 순간에 불행은 반드시 닥쳐온다. 길 위에 돌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 돌에 겁먹어 피하겠다고 땅만 보며 제대로 걷지 못한다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앞을 보며 걸었을 때 볼 수 있는 수많은 풍경들,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의 행복을 놓치게 된다. 오직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생에서는 넘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 왔을 때 다시 일어설 힘도 이유도 없다. 어차피 일어난다고 해도 앞에 펼쳐진 수많은 돌멩이들에 언젠가는 또 걸려 넘어질 텐데 일어나서 다시 걸어야 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도리어 넘어져서 얻게 되는 상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키운다. 넘어지는 아픔을 알게 되었으니 필히 닥쳐올 아픔이 더 두려워진다. 설사 땅만 보며 걷는 사람이 그 돌에 부딪히지 않고 잘 넘어간다고 할지라도 그 불행이 닥쳐올 것이라는 가능성에 지배당하는 삶에서 그 불행이 차지하는 부피는 너무나 크다.
반대로 돌멩이들이 바닥에 있음에도 주변을 충분히 만끽하며 달려 나갈 수도 있다. 그러다가 돌에 걸려 넘어지면 툭툭 털며 일어나면 된다. 다시 일어나서 걸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 테니까. 발 밑의 것에 걸려 넘어져 눈물을 찔끔 흘렸다 해도 눈 앞에는 사랑하는 많은 것들이 있기에 털고 일어나 다시 그것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나는 불행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불행을 피함으로써 얻는 행복보다는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행복을 좇고 싶다. 불행에 걸려 넘어졌을 때 나를 일으켜줄 여러 가지 행복들을 내 인생에서 만들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