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린세스'
** 영화에 대한 (누구나 추측 가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작가 필리스 체슬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어머니 없는 아이들이다.” 누군가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잠시 멈칫할 이 문장을 두고 에이드리언 리치는 이렇게 설명했다. “여성은 자신의 딸들에게 물려줄 권력도 부도 없다는 뜻이다.”(『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p.53) 유구한 가부장제의 역사 아래서, 한 가문의 권력과 부는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로 계승되었다. 아버지는 딸을 외면했고 어머니는 딸에게 내어줄 것이 없었다. 부부에게 아들이 없다면? 딸이 결혼을 통해 남편을 아버지의 후계자로 세우는 매개가 되었다. 전 생애가 아버지에서 남편에게로 삶을 의탁하도록 구획된 딸들은, 자신의 명예를 직접 쌓아 올릴 기회를 갖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HBO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하우스 오브 드래곤>(<왕좌의 게임> 시리즈의 프리퀄) 1화에는 아들인지 확실치 않은 아이와 산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왕 비세리스의 모습이 그려진다. 딸밖에 없었던 비세리스는 아들을 얻기 위해 왕비를 포기하고, 신하는 살아있는 여인의 배를 가른다. 드라마의 시대 배경 상, 산모에게 주입해줄 수 있는 마취제나 수혈 팩 따위는 없다. 아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포기하겠노라 말한 적 없던 왕비는 남편의 손을 쥔 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라 황망하다는 표정으로, 끝내 고통에 겨운 비명을 내지르다 피를 쏟고 죽는다. 그렇게 어머니의 배를 찢고 나온 아이는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품에 안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숨을 거둔다. 비세리스는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망나니 동생 다에몬을 내치기 위해 급하게 딸 라에니라를 후계자로 명한다. 왕의 한마디로 후계자는 간단히 정해지지만, 적법한 왕위 계승자가 없다는 불안은 더욱 들끓는다. 오래전 왕위 계승 싸움에서 밀려난 여인은 라에니라에게 말한다. “이 왕국은, 여인에게 왕의 자리를 내어주느니 차라리 나라를 불태울 거야.” 아버지 자리를 딸이 물려받을 수 없다는 확신. 즉, 여인의 능력에 대한 불신은 여성(들)을 죽이고 왕국에 전운이 감돌게 한다. 이처럼 이야기의 뼈대로 가부장적 요소들을 반영하는 몇몇 텍스트는 외려 가부장제의 자기 파괴적인 흠결을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몇몇 여성 캐릭터들은 그 흠결의 틈을 비집고 나와 반란을 일으킨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을 온전한 페미니즘 텍스트로 위치시키는 건 무리겠지만, 이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들은 정확히 체슬러가 말했던 가부장제 사회 속 어머니 없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이리저리 분투하며 자신을 둘러싼 제한적 환경에 구멍을 낼 때, 이들의 행동반경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던 독자/시청자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여성이라는 추상은 어쩔 수 없이 더욱 커지고 강해진다.
여기, 어머니가 있음에도 어머니가 없고, 아버지가 있음에도 아버지가 없는 딸의 이야기가 한 편 더 있다. 바로 훌루와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키엣 르-반 감독의 액션 영화 <프린세스>(2022)다. 이야기는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왕국에서 진행된다. 나라에 외국인은 수용할 수 있지만 여성을 후계자로 정할 수는 없다는, 인자하지만 동시에 가부장적인 모습을 지닌 왕은, 나라의 안정을 위해 두 명의 딸 중 첫째 공주(조이 킹)의 결혼을 서두른다. 왕비의 허락 아래 몰래 전사 훈련을 받아왔던 공주는 “낯선 남자에게 갈 수는 없”으니 자신이 직접 기사가 되어 후계자로 인정받겠다고 한다. 왕은 이를 단호히 물리친다. 결국 결혼식 날 제단 앞으로 불려 간 공주는 자신의 손에 들어오던 반지를 거부하고 식장을 뛰쳐나간다. 마침내 왕은 딸의 뜻에 따라 결혼을 취소하는데, 예비 사위였던 줄리어스(도미닉 쿠퍼)는 이에 크게 분노하여 사병들을 데려와 성을 점령한다. 평소 왕의 정책에 불만을 품었던 그는, 공주와의 결혼을 통해 합법적으로 왕위를 물려받은 뒤 공포 정책을 실시하려 한다. 그는 약물에 취해 기절한 공주를 가족과 분리해 탑에 가두라 명한다. 하지만 그가 잠재운 건 공주가 아닌 전사였으니, 몇 시간 뒤 성에는 또 한 번 피바람이 불게 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붉은 머리칼을 흩뜨린 채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 공주의 모습이다. 이 이미지는 얼핏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떠올리게 하지만, 베개 위 강렬한 붉은 머리칼은 무림의 고수였던 피오나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포로의 신분으로 전락한 공주를 가까이서 희롱하고 싶었던 병사들은 잠든 공주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번쩍 뜬 두 눈을 보고 기함한다. 일어나자마자 병사에게 박치기를 한 공주는 자신의 손을 직접 골절시켜 수갑을 빼내고 그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죽인다.
넷플릭스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 <키싱 부스>로 스타덤에 오른 조이 킹이 분한 공주는 극 중 ‘공주’로만 호명될 뿐 이름이 없다. 둘째 공주(바이올렛)에도, 그녀에게 무술을 가르친 여전사(린)에도, 심지어 악역(줄리어스)에도 이름이 있지만, 그녀는 그저 ‘공주’ 혹은 ‘멀쩡한 남자를 죽이는 미친 여자’로만 불린다. 이는 공주에게 고유한 개별성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영화의 선언이다. 이 영화는 <프린세스>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잠자는 숲 속의 공주나 백설공주, 혹은 인어공주처럼 특유의 서사를 지닌 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주라는 위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복자와의 결혼을 위해 사슬에 묶인 채 탑에 갇힌 공주는 사랑과 왕자가 있어야만 서사를 작동시킬 수 있는 삶에 구속되었던 다른 모든 공주를 대변한다. 요컨대 <프린세스>는 이 구속에서 탈주를 결심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포문이 탑에서 병사들을 죽이고 탈출하는 공주의 모습으로 열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영화는 철저하게 공주의 움직임을 따라 전진한다. 탑에서 나온 공주는 익숙한 성 안을 돌아다니며 은신하지만 내내 위험한(?) 적들을 맞닥뜨린다. 그녀가 적을 물리치고 숨고, 또 적을 물리치고 달아나는 일련의 과정들은 마치 하나씩 챌린지를 완수해나가는 게임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챌린지를 끝낼 때마다 보상으로 주어지는 건 과거에 대한 기억이다. 앞서 설명한 공주의 전사(前事)는 모두 공주가 적을 처치하고 상념에 젖을 때 플래시백으로 등장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회상 씬은 조금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론 챌린지에 대한 보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쉼 없는 탈주 속에서 일종의 쉼표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거에 대한 기억 속에서 공주가 길어 올리는 건 ‘전사’라는 자신의 정체성이다.
<프린세스>가 킬링타임용 영화 이상의 무언가를 해낸다,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서사는 거칠고 그래픽은 조악하며 액션은 예상을 뛰어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예고편을 통해 얼마간 불러일으킨 기대-즉, 피 튀기는 잔혹한 이미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외려 양껏 분출할 것이라는 기대-의 측면에서도 만족스럽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물론 이 영화가 충분히 ‘하드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란티노 식의 피의 향연을 예상한 사람, 혹은 <킹스맨>의 징그러운 장면쯤은 그러려니 넘긴 이들에게 <프린세스>는 충분히 쾌감을 선사하는 영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꽤 귀엽다고 생각한다. 더 솔직해지자면, 그동안 디즈니가 내보인 여타 실사 영화들과 비교해봐도 크게 뒤처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적인 디즈니 원작에 정치적 공정함(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한 줌 뿌려 넣은, 그렇다고 프로덕션이 아주 훌륭하지도 않은 영화들보다야 이렇게 뒤집어엎는 거친 이야기가 훨씬 흥미롭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B무비를 지향한다. 극 중 악역으로 등장한 도미닉 쿠퍼와 올가 쿠릴렌코는 시종 코믹한 연기 톤을 유지한다.
영화의 처음, 공주는 병사들과 싸우다 뒤로 크게 넘어진다. 억센 남성의 손아귀 때문이 아니라 치렁치렁한 드레스가 침대에 걸렸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장면에서 나는 이 영화를 애정 하기로 결심했다. 공주가 처음 넘어지는 원인이 누군가의 완력이 아니라 드레스 따위인 것이 좋았다. 이 영화가 귀엽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순간은 이외에도 많다. 흡사 터미네이터 같은 몸을 지닌 어떤 병사는 ‘그저’ 투구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서, 자신의 멋진 근육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숨어 있는 공주를 보지 못한다.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에 못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공주가 장정 넷을 해치우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왕의 휘둥그레진 눈과 그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화면 역시 익살스러웠다. 그뿐인가. 공주가 줄리어스를 죽이고 후계자로 인정받은 뒤 달려가 안기는 사람이,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 자신의 전우 린이라는 사실도 좋았다. 죽음을 가까스로 탈출한 두 여성은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는다. 가모장제 사회 아마존에서 태어난 원더우먼조차 못했던 일을 미친 공주가 해낸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건 영화 내내 끊임없이 움직이는 조이 킹의 모습이었다. 짧아진 교복 치마 때문에 절절매던 소녀. 그러나 그 부끄러움/수치가 섹시한 여고생의 이미지로 번역되어 뭇 남성들에게 유혹적 메시지를 보낸 모양새가 되었던 소녀(<키싱 부스>). 그런 소녀를 연기했던 조이 킹이 여기 <프린세스>에선 드레스를 죽죽 손으로 찢어 던지고 성벽 위를 가로지른다. 그녀의 옷차림은 마치 <다이하드> 1편 속 브루스 윌리스의 속옷이 하얀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던 것처럼 점점 여전사의 그것으로 변해간다. 총총거리던 발걸음의 조이 킹 옆에 허공에서 날아 차기를 하는 조이 킹의 모습을 둘 수 있는 건, 그녀를 바라보는 팬들에겐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혹여라도 이 작디작은 오락 영화가 어머니 없는 여자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있다면, 그건 이 영화의 스토리보다 열심히 운동하던 공주/프린세스의 모습 그 자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