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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구 Aug 26. 2023

마리아와 이브의 화합

소설 '매트릭스'

작가: 로런 그로프 / 출판사: 문학동네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역사학자 거다 러너는 인류의 절반인 여성이 오랜 시간 가부장제의 억압을 받으면서도 페미니즘 사상을 더 빨리 싹 틔우지 못한 이유를 역사에서 찾았다. 위대한 혁명을 꿈꾼 여성들은 늘 존재했다. 다만 그들의 생각은 문장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을 뿐이다. 남성 철학자들의 사상이 계보를 이어가며 생각하는 자아를 남성형으로 만들어가는 동안, 뿌리조차 내리지 못한 여성의 시선은 늘,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러너는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통해 스토리(hestory)가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 사상가들을 발굴해 그들을 하나의 계보로 잇고자 했다. 그녀는 특히 중세에 수녀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여성 중심의 성서 비평에 주목했는데, 이는 당시 종교 교리가 여성의 종속적인 위치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강권하는 믿음과 반대되는 환시(여성에게 행동하라 명하는 여성적 신)를 보고 이를 기록한 여성 신비주의자들은 과연 그 존재 자체로 이교도적이며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러너가 책에서 다룬 바 없고 그 생애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12세기 시인 마리 드 프랑스는 <매트릭스>라는 소설을 통해 바로 그러한 이교도적이고 혁명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새로이 나타났다. 실존 인물에 기반하고 있는 까닭에 역사 소설로 분류되긴 하나 <매트릭스>의 살을 이루는 거의 모든 것은 작가 로런 그로프에 의해 상상되었다. 하지만 로런 그로프가 바꾸지 않은 핵심, 즉 이 소설의 출발점은 마리가 당시에 ‘감히’ 생각하는 여성이었다는 것이다(마리 드 프랑스는 첫 프랑스 여성 시인이라 알려져 있다).


마리의 어머니와 이모들은 모두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여장부였다. 하지만 마리의 어머니는 탐욕스러운 남성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렇게 마리는 잉글랜드 왕가의 사생아로 태어나게 되었다. 마리의 존재를 성가시게 여긴 알리에노르 왕비는 그를 어느 외딴 지역의 가난한 수녀원으로 보내버린다. 어차피 부모의 아름다움을 물려받지 못한 그 외모로는 누구와도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 조소하며. 수녀들이 말 그대로 굶어 죽어가는 곳에서, 마리는 얼마간 탈출을 꿈꾼다. 왕비를 향한 자신의 절절한 애정을 담은 서신을 보낸다면, 그가 자신을 다시 궁으로 불러들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마리는 한동안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은 그의 희망을 아프게 꺾고, 주위 수녀들의 고통은 그를 지도자의 자리로 떠민다. 어려서부터 “왜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죄가 있고, 왜 그녀는 보이지 않는 권능의 존재에게 기도를 올려야 하며, 왜 신은 삼위일체이고, 왜 자신의 핏속에서는 위대함이 뜨겁게 느껴지는데 단지 최초의 여자가 갈빗대에서 만들어지고 열매를 먹은 뒤 권태로운 에덴동산을 잃었다는 이유로 모자란 존재라 여겨져야 하는가?”(14)라고 생각했던 마리는 “신도 당연히, 당신이 모든 일을 좋게 해냈으니, 모든 일이 좋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80)라 여기며, 수녀원을 “두 번째 에덴 동산”(168)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수녀원에 들어갈 무렵부터 죽음 이후까지, 마리의 생애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주지했듯 이단적이다. 여성에게 교육을 허하지 않던 시기에 글을 쓰는 여성이 된다는 건 바로 그런 의미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로런 그로프는 마리를 통해 여성주의적 성서 비평을 시도한다. 책 곳곳에서, 마리의 생각과 환시는 기존 체계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여성에 대한 보호막을 제공한다. 특히 마리의 환시 속, 성모 마리아와 이브의 화합은 여성을 성녀 vs 악녀로 이분화한 오랜 관점을 무너뜨린다.     


여인들은 말없이 사랑 가득한 얼굴로 나를 그윽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마침내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들을 응시할 용기가 생겼을 때, 그들은 서로 맞잡은 손을 들고 키스했다. 두 여인이 입을 맞대어 키스하게 하라.

그렇게 그들은 둘 사이에 존재한다고 말해지던 전쟁이 세상에 분열과 갈등과 불행의 씨앗을 심으려는 뱀이 만들어낸 거짓말임을 보여주었다.

나는, 지혜가 생긴 것은 이브가 맛본 금지된 열매를 통해서이고, 그 자체로 성모마리아의 자궁에서 만들어진 열매와 세상에 주어진 선물의 완벽함을 이해할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브에게 그런 결점이 없었다면 성모마리아의 지극한 순수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집인 이브의 자궁이 없었다면, 생명의 집인 성모마리아의 자궁도 없었을 것이다. (151~152)     


수녀원장이 된 마리는 자신이 돌보는 어린 여성들을 위해 수녀원에 미로를 만들어 타락한 외부인의 침략을 막는다. “스스로 연애나 결혼 상대가 되기를 거부한” 것도 모자라 부를 쌓는 여성들에게 분노한 남성들은 그들을 벌하고자 하지만, 마리의 전략은 그들을 능가한다(162). 그뿐인가. 마리는 스스로 고해성사와 미사를 주관하여 아버지가 들어주지 않은 여성들의 죄를 경청, 그들이 짊어진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 하지만 로런 그로프는 절대 마리의 수녀원을 뱀이 나타나기 전의 에덴 동산마냥 그리지 않는다. 마리의 수녀원은 완벽한 여성들의 유토피아가 아니다. 필리스 체슬러가 <여자의 적은 여자다>에서 짚었듯, 여성은 선천적으로 여성에게 친절한 본성을 타고나지 않는다. 또한 벨 훅스를 위시한 여러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했듯,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정체성 하나로 온전히 화합할 수 없는 각자의 차이를 지닌다. 마리는 수녀원장으로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과 같은 총명함을 지닌 어린 여성을 희생시킨다. 수녀원의 체계가 아닌, 자신의 위대함을 스스로 인지한 자의 욕심을 위한 결정이었다. 마리는 자신이 수녀원에 있기에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 자유가 모든 수녀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닌, 오롯이 수녀원장인 자신의 특권이라는 걸 안다.     


수녀원은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라 프라이버시는 규정에 위배된다. 혼자 있는 시간은 사치이며, 필요한 모든 일과 묵상과 기도를 하다보면 생각할 시간은 언제나 너무 짧다. 수녀들에게는 글을 읽는다는 것조차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의미하고, 수녀들 사이에 내면의 목소리를 끄집어내 발전시킬 만한 사적인 대화는 없다. 마리는 사고력이 있는 수녀들이 몇 명 없다는 것이 놀랍지 않다. 이곳에 도착한 첫 순간부터 마리는 이것이 수녀원 생활의 설계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녀원장으로서 마리는 자유롭게 생각하는 수녀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여기 마리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재앙일 것이다. 그녀는 이따금 죄의식이 날카롭게 찌르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수녀들을 일과 기도를 통해 그들의 성스러운 어둠 속에 가둬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딸들을 순결하게 지키는 일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정당화한다. 그녀의 이곳이 두 번째 에덴동산이다. (168)


<매트릭스>의 성스러운 어두움은 샬럿 퍼킨스 길먼의 <허랜드>에 나타났던 디스토피아적 측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길먼의 허랜드를 끝내 부정할 수 없듯, 마리의 수도원이 결국 디스토피아적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마리의 인간적 욕심이 단 한순간도 드러나지 않았더라면 <매트릭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만일 마리가 조금의 권위도 욕심내지 않는 인물이었다면, 이브와 마리아의 화합에 대한 환시가 무슨 소용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결국 여성은 성스러울 존재로 수렴될 뿐인데. 로런 그로프의 <매트릭스>는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여성을 가운데로 옮기는 동시에, 세간의 주목을 받는 여성에 대한 전형을 부순다. 모체(matrix 매트릭스) 안에 있는 태아가 아직 무엇도 결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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