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

12월 28일의 기록

by 이희구

이틀 전 선생님,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고 출근하세요,

라는 학생의 연락을 받았다.

어린 친구가 어른인 나를 위하는 게

어이없고 제법 웃겼다.


오늘 먼지 쌓인 국어사전을 집어 올려 아무 데나 펼쳐보니

‘대수’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사전적 정의 : 주로 의문문으로 쓰이며 대수로운 일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예문 : 한 끼쯤 굶은들 대수냐?


대수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굴리며 여러 문장을 생성해 보았다.

자연히 내가 올해 실패한 것과 놓친 인연, 그리고 후회스러운 사건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학생의 안부도 같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2025년 나의 계획이 어그러졌어도

그게 대수인가?

내게 감사와 애정을 표하는 제자들이 생겼는데.


이상과 현실,

꿈과 실제 사이에서

좌절감과 무력감을 수없이 느낀 한 해였다.

하지만 꺾이지 않는 기이한 희망,

그리고 바란 적 없던 타인의 선의가

매번 나를 쓰러지지 않게 붙들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거창한 계획과 시간의 물리력 앞에서

나는 또 울고 슬퍼하고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기어코 내가,

더불어 귀엽고 소중한 짧은 순간의 행복들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그럼 나는 생각하겠지.

그래, 그게 대수야?


그렇게 생각하면, 다가오는 2026년이

아주 무섭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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