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 이제 공부해볼까?

Abrir una puerta.

by Pepe

“뭐라하노, 마! 내다, 내! 내 뻬뻬다!”


경남의 어느 한 꼬맹이가 늘상 외치며 자신의 패기를 드러내던 한 문장이다. 물론 뻬뻬는 지금 이 시간 내가 쓰고 있는 이름이며 당시에는 한국 이름이었을 거다.


영화 ‘친구’ 를 보았고 유명한 대사인 ‘니가 가라, 하와이!’를 최고 어색한 대사로 꼽으며 대신 마약에 취한 유오성 배우님의 “와? 복지가(....00이란 비속어 대체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유사한 단어를 떠올림)벌렁벌렁 하드나!?” 를 진짜 경상도 사투리라고 인정하며 떠벌리건 그 꼬마.


어느 날 만난 원피스라는 만화책으로 요리사의 꿈을 꾸게 되고 그 길을 걸어 나서기 시작했다. 새하얀 유니폼이 보통 무한한 책임감을 필요로 하다는 것은 전혀 모른 채로, 청춘의 시작점인 20살에 부산의 작은 대학교에서 그렇게 하얀색 속으로 까무잡잡한 팔뚝을 들이밀어 버렸다.


대학생활은 모든 대학, 모든 학과가 적어도 1학년은 대부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천 원짜리 소주병에 빠지든, 삼천 원짜리 학교 앞 두루치기에 빠지든(몰라, 지금은 최저시급이 다르잖아) 여하튼 십만 원 치 대학 교재 속에 빠지지는 않으리라. 그러다가 열혈남아들은 자연의 섭리처럼 자연을 닮은 얼룩무늬 군복 속에 몸을 맡기게 되는 거지.


당시 병무청의 여러 패션쇼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검은 베레모, 그 모자를 따라서 4년의 시간을 울고 웃으며 특전사로 거듭났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두려운 게 없는척한 작은 꼬마의 간댕이를 잘 다듬어 많은 것을 두려워할 줄 아는 조금은 커진 푸아그라를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물론 당시는 힘들다라는 기억뿐이다.


아니, 잠깐만. 나 이제 군대까지 끝내고 내가 하고 싶은 삶을 만들어 나갈 건데 벌써 20대 중반을 넘었다고? 20대가 제일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라 그랬잖아! 뭔 소중한 시간이 나는 시작도 안 했는데 반을 까먹으면 어쩌란 거야!! 이거 뭔가 잘못됐다, 군대 때매 늦은 만큼 뭔가 빨리 시작해야겠다. 특전사가 못할게 뭐 있어? 안되면! 되게하라!!

그렇게 나는 강남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주방보조의 조금은 누리끼리한, 하얗지 못한 조리복을 입게 되었다.


세전 110만 원, 주 6일, 일 12시간 근무.

뭐 어때? 나는 요리도 못하는데 일 시켜주는 게 감사한 거지. 돈 따위 벌어 들일수 있는 시점이 언젠가 찾아온다. 사나이 가슴에 큰 꿈을 품고 살리라. 충성 맹세를 한 지 1년 만에 다른 주군을 찾아 나섰다. 안 되겠더라. 나도 빈약한 종이포장 후라이드 시장 통닭에 하이트 캔맥주 말고 종이 박스에 치킨무랑 콜라랑 다 같이 세트로 깔끔하게 치즈가루도 뿌려주던 브랜드 치킨이랑 호가든 병맥주 마시고 싶었단 말이야.


다양한 요리의 세계에 궁금증도 있었고 또 적절한 주기로 이동하니까 꼴에 경력직이라고 월급도 조금씩 더 얹어 주었다. 돌아다니다 보니 알게 된 요리사 인맥으로 인해 소개받아 일을 하니 더욱 좋은 대접으로 일하게 되며 꽤나 고급 레스토랑에도 일을 하는데 이게 참 맘에 안 든다. 왠지 이 성장이 여기 까지라는 생각이 확신이 가득 찬다. 그동안 젊음의 열정과 패기로 선배들을 잡아먹고 커왔는데 막상 선배 라인으로 내가 들어서고 보니 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쌓아온 경력을 뒤돌아보니 나만 인정하는, 남들도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차별화되지 않는 내가 잡아먹은 선배들의 경력을 고스란히 들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선배들보다 저렴한 몸값으로 그들과 차별되어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거였다.


다른 길을 찾아서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화책 때문에 시작을 하긴 했!지만, 나는 이 길이 좋다. 돈도 별로 못 벌고 일도 진짜 뭣같이 오래 하고 비전도 외식업 분야 어떤 모양새인지 세상 사람 다들 알고 있는 판이지만 변태같이 새하얀 조리복에 까무잡잡한 내 팔뚝을 끼워 넣는 그 기분이 좋다. 두 번째 변태 취향은 손님이든 동료든 누군가 내 접시를 먹고 맛있어할 때 보람을 넘어서 스스로 우월감을 느껴버린다. 짜릿해.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깊이 있게 이 우월감속에서 헤엄치고 싶어 30살에 유학을 결심했다. 물론 적당히 자리 잡고 장가갔으면 엄마가 훨씬 좋아했겠지. 정말 미안하지만 그것은 조금 미뤄두고 나는 지금 스페인에서 언어를 공부하는 중이다. 서양요리를 전공으로 삼았기에 진짜 서양요리를 배우고자 프랑스를 가려했지만 너무 비쌋다. 어차피 요리라는 거 하다 보면 다 같은 방향,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고 스페인은 학비가 저렴하면서 현대 미식에서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문화국가이다. 아, 코로나에서도 엄청 큰 영향 중.


아마 한글을 편하게 사용하시는 분들은 내가 그리 크게 공부하던 캐릭터는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엄마도 내가 공부하러 간다니까 그토록 원하던 삶의 모습이라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그만큼 의심과 걱정을 하셨다. 그게 가능한 소리냐고. 나는 지금도 의심 중이다. 내가 한국어가 아닌 다른 글을 읽고 쓰며 듣기도 하고 말도 해보지만 지금 내가 언어를 공부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그저 맞다고 기도하며 오늘도 하루 24시간 중 책상에는 고작 3시간 버틴 게 전부다. 그 3시간이 엇나가지 말고 차곡차곡 모여주길 바라면서.


수많은 갈림길과 그중에 자리 잡은, 뒤를 꽁꽁 숨겨 놓은 몇 개의 문들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열고 나아가고자 이제서야 공부를 해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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