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개비와 맞바꾼 나의 유럽 첫날밤

로마 공항, 추억의 미련한 발걸음.

by Pepe

2019년 후덥덥했던 6월 어느 날.

인천공항에는 여느 때처럼 들뜬 가슴의 수많은 사람들로 번잡했다. 세계 정상급의 최고의 공항 중 한 곳이지만 그곳을 채운 사람들은 세계 어느 공항의 사람들과 큰 차이는 없으리라. 그토록 기다리고 원했던 유학길에 가슴 벅찬 나, 마치 예전에 군대 갈 때와 같은 얼굴로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 우리 엄마도 그곳에 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어느새 조금 더 내 기억 속 외할머니의 얼굴에 가까워졌다는 것.


그렇게 나는 외할머니와 엄마의 중간 정도 되는 듯한 나의 소중한 사람과 멀어지며 생이별의 눈물을 훔치고 게이트를 나섰다. 그리고 공항 직원분의 안내를 받으며 출국심사를 받으러 가는데 어찌나 친절한지. 사르르 녹아버린 내 모습에 눈물을 훔치던 내 소매가 머쓱했다. 아아,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미소였습니다.

인천공항 만세!


내 항공기는 이탈리아 항공이었고 좌석에 탑승하자 갑작스레 아름다운 미소 속에 녹아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도와줄 이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바짝 느껴졌다. 아직은 한국인도 많지만 중간중간 꽤 많은 좌석의 외국인들과 외국인 승무원들은 그것을 더욱 짜릿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이륙을 하며 긴장감은 더욱 나를 철저히 감싸 안았다. 그것은 곧 수많가지 잡스러운 걱정들로 연계되기 시작했고 첫 번째 큰 문제는 첫 장거리 비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나는 곧 ‘나 특전사야’ 하는 마음속 주문으로 푸른 창공의 긴장감을 해소하기로 했다. 검은 베레모, 하늘의 백장미가 아늑한 민간항공기에서 긴장이 웬 말이람? 몇 번이고 당당하게 뛰어내리던 게 비행기였다.

하지만... 민간항공기는 낙하산을 안 준다. 더 무서워!


스페인으로 가는 하늘길은 생각보다 평온했고 중간중간 기체 불안정이 있긴 했지만 문제 될 정도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작 문제는 다른 것이지, 12시간이라는 장거리 비행. 아무리 잠을 자도, 아무리 멍을 때려도, 자꾸만 주는 음료와 음식들을 먹어도 왜 내리라는 소리를 안 하는가. 다른 사람들은 왜 저렇게 별거 아닌 듯이 태연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가. 진심으로 말하건대 10시간 이후부터는 엉덩이 뼈가 너무 아려서 앉아 있지 못하겠어서 구석에 서있다가 착륙할 때 다시 저리로 돌아왔다. 뻐근한 수준이 아니고 뼈가 아려서 뭔가와 접촉할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을 포함해 몇 시간 이상 앉아서 시간을 보낸 적 없기에 발생한, 건강함에 자부심 넘치던 내 몸의 치명적 약점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결국 끝은 나더랍니다. 엉덩이를 부여잡고 비행기를 내리니 갑자기 펼쳐진 한국어 없는 세상. 당황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레 시선을 멀리 두고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사람들 가는 그대로 따라갔다. 절대 무엇이든 능숙하게 먼저 하지 않았고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나는 로마 공항을 만났고 유럽에 들어서게 되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마드리드에 들어가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는 아주 과도했다. 하지만 내 마음에 너무도 급한 게 한 가지 있으니 나는 흡연자였다.(지금은 전자담배와 함께 금연 지망생..) 그토록 긴 시간, 무지막지한 고통을 견뎌낸 나에게 얼른 보상을 해줘야 할 시간이다. 어차피 내 수화물은 알아서 마드리드 항공기로 옮겨진다고 했고, 그렇다면 나는 얼른 외부의 맑은 공기를 찾아 나서면 된다. 이태리어는 잘 모르겠고 EXIT 와 당장 뛰처나갈거 같은 마치 나와 같은 사람이 가리키는 화살표 방향만 보고 질주하다 보니 출구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유럽에서 첫 담뱃불을 붙이게 되었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물론 나의 역사서에.


연거푸 담배를 충분하게 피우고 나니 그제야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인천공항처럼 인종만 다르지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나처럼 담배 피며 좋아 죽는 사람들, 이리저리 둘러보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는 얼굴의 사람들, 집에 가는 건지 매우 능숙하게 갈길 가는 사람들까지. 이태원보다 더 많은 외국인을 만나서 좀 놀랍긴 하지만 행동이 공항이라서 그런지 다들 비슷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그래도 큰 차이를 하나 느꼈는데 택시 기사님들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이태리 남자의 그 모습을 그분들로 인해 만나볼 수 있었다. 6월의 여름에 넥타이까지 다 갖추고 모든 기사님들이 트렁크에 짐을 손수 다 내려주며 정말 환하게 웃어주며 손님들에게 작별 인사를 해주었다.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모르겠지만 몇몇은 볼뽀뽀를 하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영화에서 보던 그 장면 그대로다. 한국의 터미널 앞에서 특정지역을 00~~00가요~~ 하며 손님을 기다리던 바람막이 점퍼의 기사님만 익숙한 나에게는 그것이 꽤나 큰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게 실컷 사람 구경을 하고서 공항 내부로 다시 들어서며 뭣좀 먹을까 하다가 비행 내내 앉아서 먹고 자던 게 문제일까, 속이 더부룩해서 그냥 저녁은 넘기기로 했다. 그리곤 더 늦어지기 전에 좋은 자리 찾아서 좀 편하게 허리 펴고 쉬어야겠다고 결정했다. 사실은 공항 내 음식점들 가격보고 속이 더부룩해졌다는 게 조금 더 신빙성이 있다. 무튼, 티켓을 손에 쥐고 공항직원에게 보여주며 어디로 가서 기다릴까요 하며 짧은 영어로 방긋거리고 있으니 더욱 방긋 웃어주며 내일 아침 비행기니까 지금은 출국장으로 못 들어간단다. 이곳, 그러니까 호텔로 치면 로비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아무나 다 다니는 이곳에서 나는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거다. 맙소사..


무사 착륙의 안도감과 흡연의 만족감, 기사님들의 따뜻한 모습에 말랑말랑하게 녹아있던 나는 다시 바짝 굳어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누구나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즉 일반적인 비행 목적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의 비행 목적의 사람들도 이곳을 다닐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로마 공항은 유럽 내 가장 조심해야 할 장소로 손꼽히는 곳 아닌가! 출국 전 정보의 바다에서 나에게 파도처럼 쏟아 내린 정보들은 사람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인이지만 저 사람은 한국 터미널에서 많이 보던 부랑자의 느낌을 굉장히 흡사하게 주는 사람도 많았다. 갑작스레 내가 있는 이곳이 낭만 있던 유럽 공항이 아닌 마치 시가지 전투 훈련장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바뀐 상황에 맞게 나도 자세를 바꾸기로 했다.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와 양치를 하며 피곤함을 조금 씻어내고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임시 보금자리를 찾아다녔다. 벽을 등지고 유동인구가 적지만 많이 구석지지 않으며 시야가 가려지지 않는 최적의 장소를 찾아서. 가져온 배낭에는 별건 없지만 앞으로 나의 식사를 책임질 새로 산 든든한 미니 밥솥이 있고 환전해온 돈도 꽤나 들어있었다. 어느 하나 빼앗길 수 없는 자산들이다. 마침 적당한 자리를 발견하고 노숙 준비를 했다. 군에서 수도 없이 했던 노숙 포지션이다. 담요를 자리에 깔고 배낭을 벽에 붙여 등지게 하고 얇은 바람막이 점퍼로 배낭을 덮어 은폐하고 가지고 있던 생수통은 머리맡에 위치한다. 그리고 경계를 풀지 않은 채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한다. 완벽했다.


시간이 늦어지며 공항은 한산해졌고 핸드폰은 배터리를 위해 쓰지도 못하고 정말 멍하니 앞만 보며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경계한 보람도 없게 주변에는 다들 그냥 자빠져 코 골고 자는 사람들 투성이고 하나도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아앗..! 그렇다고 나까지 저럴 순 없지, 그러다가 사고 나는 거야 라며 스스로 부축이며 괜히 몇 번씩 짐을 싸서 나가서 담배 피우고 서성거리다 다시 돌아와서 자리 펴고 두세 시간 멍 때리기를 반복하다 두 번째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인내에 끊임없는 찬사를 보내며 온몸 구석구석 완벽하게 찌뿌둥한 몸을 끌고 다시 출국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비행기를 타러 사람들 따라서 걸어가다 발견했다. 내부에 흡연 부스가 있음을. 나는 어제 비행기에 내려서 출구로 나오지 않고 환승게이트를 이용해서 지금 있는 이곳으로 오게 되면 흡연부스도 있고 티켓 없이는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기에 훨씬 안전하게 밤을 보낼 수 있었던 사실을. 담배 한 대 피워볼 거라고 멧돼지마냥 씩씩거리며 출구로 뛰처나가지 않고 trans 어쩌고 저짜고 이것만 봤더라면 혼자 첩보 군사 영화는 찍을 필요 없었다는 것을.


제발 유학생활은 이렇게 몸빵으로 때우지 않고 조금은 더 영리하게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흡연부스에서 눈물 젖은 담배 한 대 시원하게 피우고 미련 없이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특전사 주문은 당분간 꼭꼭 접어서 마음 깊숙이 숨겨두기로 결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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