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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Aug 05. 2015

화폐와 기술

국제통화체제의 끊임없는 변천을 중심으로

현대 인류가 경제적 활동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까닭은 한 마디로 '노동에 대한 동기유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노동에 대한 동기는 사실 '재미'와 '적성' 등의 정성적 표현으로 기술되기도 하지만 지극히 차갑게 본다면 노동으로 인한 '경제적 가치교환'을 꾀하기 위함이다.


인류는 이러한 '경제적 가치교환'을 위해 아주 훌륭한 발명품을 만들어내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회시간에 배웠던 '화폐(Currency)'라는 것이다. 필자는 공학을 전공한 기술쟁이이자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술에 대한 가치 전달과 경제적 가치교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서 화폐의 역사와 국제통화체제 등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고 화폐와 기술의 가치교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본 텍스트 첫 시작으로 화폐와 국제 통화체제의 역사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화폐에 대한 정의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화폐(Currency)

1. 정의 : 교환 매개체(Medium of exchange), 회계의 단위(A unit of account)
2. 성질 : 휴대성(Portable), 내구성(Durable), 분할성(Divisible), 대체 가능성(Fungible)

화폐는 가치 교환의 매개체의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숫자로 표현되어 회계의 단위가 된다. 또한, 원활한 유동성을 위해 휴대성을 겸비함과 동시에 손상되지 않는 내구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동일 가치에 대해서 분할이 가능하고 서로 대체 가능해야 한다. 그렇다면 '돈'의 성질은 어떻게 될까?

일반적으로 돈이라고 칭하는 것은 화폐가 가진 네 가지의 성질을 만족함과 동시에 오랜 기간 가치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즉, 어느 사회가 인류의 생애에 비하여 긴 시간 동안 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 기간 내에 가치의 변화가 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화폐나 돈 모두 실용적인 의미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혼용해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국제적인 화폐 유통체계는 어떻게 발전되어 왔을까?


19세기 초에 영국을 필두로 서구 열강은 국가가 보유한 금의 양을 기준으로 화폐를 발행하는 금본위제를 채택하였다. 실물인 금과 통화를 바로 연계한 것인데, 금에 무게에 따라서 각국의 통화의 가치가 정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각국 화폐의 환율이 고정된 고정환율제도로 적용되어 왔다.

그런데, 1914년부터 시작된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 후 각국은 급한 전시비용 조달을 목적으로 급격한 통화증발을 감행하고 기존에 시행되고 있던 금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무작정 발행하게 되면서 통화 체계가 붕괴하였다. 이는 전후에 독일의 경우 엄청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일으켰고 영국의 경우 전시 전의 수준으로 파운드화 가치를 유지하였으나 수출 산업 정체와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대공황으로 결국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된다.

그 이후 각 국은 관세장벽을 높이고 파운드화 블록, 달러 블록 등 경제 블록 형식의 보호무역주의의 경제를 취하게 되면서 국제 유동성 및 외환 통제가 악화되어 1940년대에 새로운 통화 체제를 제안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44개국 대표가 모여 통화금융회의가 개최되었고 브레튼우즈 협정이 체결되 1945년 12월 30개국이 서명함으로써, 브레튼우즈 체제는 정식 출범하게 되었다.

사실, 이 당시 새로운 통화제도에 대한 논쟁에서 케인즈라는 학자는 어느 국가의 통화도 아닌 국제 통화로 방코르(Bankor)를 도입할 것을 지지하였으나,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패권국이 된 미국의 달러화를 통용할 것을 주장하였고, 결국 미국의 입장이 받아들여져 달러화를 기축으로 하는 금환본위제브레튼우즈(Bretton Woods) 체제가 성립되었다.

고전적 금본위제와 브레튼우즈 체제의 결정적인 차이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태환을 독자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만이 독점적으로 금태환을 실시하는 것으로써, 타국 통화는 모두 달러와의 환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과 연결되는 것이다. 즉 달러와 각국 통화는 고정환율로 적용되고 달러는 35달러당 1온스의 금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고정한 것이다. 전쟁 당시 유럽의 각국이 미국의 군수물자를 금으로 구입하고 패전국들이 전쟁배상금을 금으로 지불하면서, 종전 당시 미국이 전 세계 금의 무려 70%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런데, 이 체제 또한 오래가지 못하였다. 결정적으로 트리핀의 딜레마로 알려져있는 역설이 존재하였고 지속적로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였으며 1960년대 들어서는 해외의 달러 보유고가 미국 자국 내의 달러 보유고보다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당시 프랑스의 샤롤 드 골은 프랑스가 미국에 보유한 금에 대하여 한꺼번에 금태환을 요구하는 반 브레튼우즈 노선을 걷기도 하였다. 게다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고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되면서 각국의 금태환 요구가 빗발치게 되고 결국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고 얼마 있지 않아 국제 통화체제는 킹스턴 체제라고 불리기도 하는 오늘날의 변동환율제로 변화하였다.

국제 통화체제의 변화와 시기

화폐와 국제 통화체제를 살펴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건 세계는 화폐의 가치를 꾸준히 유지하는 명확한 기준을 위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체제를 강구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성공한 화폐는 금이 거의 유일하였으며 위의 그림에서도 나타나듯이 하나의 통화체제가 짧게는 30년 에서 길게는 40년 정도의 체제 존속기간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2015년 현재는 새로운 국제통화체제의 등장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이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의도적인 국채 매입을 통한 엄청난 양의 통화 발행을 통해 경 부양 꾀하는 양적완화를 보고 혹자는 '미래의 행복을 현재로 당겨 쓰는 최악의 이기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화폐의 역사와 국제통화체제를 진보적인 시각으로 그려낸 동영상

어쩌면 귀하디 귀한 금을 갖고 싶어 하는 욕심으로 시작한 것이 이를 보여주는 거울에 불과했던 지폐라는 종이에 묻어나기 시작했고 끝없는 인간의 욕심이 거울 너머에 있는 귀중한 것을 볼 수 없도록  완벽히 뒤덮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 . 그 다음으로 연재할 글은 '가치교환'을 수행하는 화폐와 기술의 관계 그리고 기술이 곧 화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참고문헌


[1] 쑨훤빙 저, [화폐전쟁 4 : 전국시대], 랜덤하우스


[2] '금본위제도', https://namu.wiki/w/%EA%B8%88%EB%B3%B8%EC%9C%84%EC%A0%9C%EB%8F%84?from=%EA%B8%88%EB%B3%B8%EC%9C%84%EC%A0%9C


[3] '브레튼우즈 체제', https://ko.wikipedia.org/wiki/%EB%B8%8C%EB%A0%88%ED%8A%BC_%EC%9A%B0%EC%A6%88_%EC%B2%B4%EC%A0%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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